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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사이버 호부호형을 허하라”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
 
남북 정상이 지난 4월 27일에 서명한 판문점 선언의 2조 1항이다. 한반도에 평화를 부르는 조항이라고 정부는 강조한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의 ‘모든 공간’에 빠진 공간이 있다. 사이버 공간이다.
 
복수의 사이버 보안 실무자에 따르면 북한의 사이버 공격은 판문점 선언 직후 지난 5월 초까진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금세 예년 수준을 회복하더니 하반기 더 거세졌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달부터 국정감사 관련 문서를 사칭한 e메일이 돌았다. 첨부파일을 열면 PC를 감염하는 악성코드가 든 e메일들이다.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정감사 사칭 악성코드 e메일은 북한의 수법이다.
 
국방부와 군 당국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공격은 2013년 1434회에서 지난해 3986회로 부쩍 늘었다. 올해 8월까진 3587회였다. 2013년부터 지난 8월까지 북한의 명백한 사이버 공격은 244회였다. 제3국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하더라도 상당수가 북한발(發)로 의심이 간다. 북한의 사이버 인력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국가로 나가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북한의 해킹조직 라자루스는 지난해부터 전 세계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해킹해 5억7100만 달러(약 6470억원)을 빼돌렸다. 빗썸 등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도 피해자였다. 라자루스는 북한 정찰총국 소속이다. 정찰총국은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의 주범이다. 손영동 한양대 융합국방학과 초빙교수는 “국내 인프라를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 공격은 전쟁에 가까운 도발 행위”라며 “정부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다. 북한 소행의 사이버 공격 사례를 보고하면 상부에선 “다시 한번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이버 보안 실무자들 사이에선 『홍길동전』을 빗대 “북한의 소행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버 ‘호부호형’을 허(許)하라”는 농담마저 떠돈다.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4일 미국의 북한 해킹 주의보에 대해 “조미(북·미)관계의 진전에 제동을 걸려는 불순세력들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적반하장은 사이버 호부호형을 금한 우리가 만든 게 아닐까.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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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