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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도 모델도 사이버시대…런웨이 사라지나

올가을 패션업계에 놀라운 광고 모델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바로 '슈두' '마고' '지'라는 이름의 세 명의 여성. 프랑스 럭셔리 패션 브랜드 '발망'이 새로운 가방 'B 박스'를 알리기 위해 등장시킨 이들의 정체는 바로 ‘버추얼 모델’(Virtual model)이다. 1990년대 후반 등장했던 사이버 가수 ‘아담’처럼 실존하는 사람이 아닌,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낸 가상의 패션모델들이다.

발망 2018 가을 시즌 광고 모델로 등장한 세 명의 버추얼 모델. (왼쪽부터) 이들의 이름은 '마고' '슈두' '지'다. 셋 다 사진가 카메론 제임스 윌슨이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다. [사진 발망]

발망 2018 가을 시즌 광고 모델로 등장한 세 명의 버추얼 모델. (왼쪽부터) 이들의 이름은 '마고' '슈두' '지'다. 셋 다 사진가 카메론 제임스 윌슨이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다. [사진 발망]

 
지난 8월 발망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올리비에 루스테인은 SNS 등에서 패션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흑인 버추얼 모델 '슈두'를 만든 사진작가 카메론 제임스 윌슨과 협업해 마고와 지를 만들어냈다. 마고는 그의 어린 시절 상상 속 뮤즈였던 프랑스 소녀를 형상화한 여성이다. 지는 2016년 사망한 영국 가수 데이빗 보위로부터 영감을 받은 중국인 여성이다. 그는 슈두를 포함한 이 세 명에게 '버추얼 아미'(가상 군대)란 이름을 붙이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광고를 제작·발표했다. 
디자이너가 새로운 옷과 가방을 디자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물까지도 디자인한 셈이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광고는 디지털 기반의 패션 매체 'BOF'와 'WWD'에 실렸고, 광고가 나오자마자 '인디펜던트' 'BBC' 등 많은 매체가 앞다퉈 소식을 보도할 만큼 화제가 됐다.  
이에 앞서 가상 인물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이다. 최초의 버추얼 모델인 슈두 외에도 많은 가상 인물이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계정을 운영하며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인기가 높은 대표적인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릴 미켈라'이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 프라다는 2018년 가을겨울시즌 컬렉션 쇼에 미켈라가 참석한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 프라다는 2018년 가을겨울시즌 컬렉션 쇼에 미켈라가 참석한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브라질-미국계, LA에 살고 있는 19살 가수'라고 밝힌 미켈라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현재 148만명에 달한다. 3D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지만 친구와 브런치를 먹고, 실존 인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모습(물론 이 역시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다)에 게시물마다 '좋아요'가 3만~10만개씩 달린다. 미국 IT 회사 브러드가 만든 가상 인물이지만, 이같은 인스타그램에서의 인기를 배경으로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다.   
미우미우의 2019년 봄여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버추얼 인플루언서 '누누리'.

미우미우의 2019년 봄여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버추얼 인플루언서 '누누리'.

사실 따져보면 이들 가상 인물들은 패션업계가 좋아할만한 요소를 다 갖췄다.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인스타그램이 패션업계의 중요한 소통 창구가 돼버린 지금, 수많은 팔로워를 가진 데다 완벽한 외모에 어떤 옷도 잘 소화해낸다. 이들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은 그가 실제 사람인지 아닌지 개의치 않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단다. ‘가짜’인 줄 알면서도 이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이미지에 열광하는 것이다.
최근 많은 패션 브랜드가 가상 인물을 활용한 마케팅 홍보 활동에 푹 빠졌다. 발망 외에도 프라다는 릴 미켈라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가 2018년 가을·겨울 컬렉션 쇼에 참석한(?) 디지털 영상을 제작해 배포했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누누리'는 디올·베르사체·미우미우 등의 럭셔리 브랜드와 작업 중이다.     
2019년 봄여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디지털 영상만으로 컬렉션 쇼를 연 몽클레르.

2019년 봄여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디지털 영상만으로 컬렉션 쇼를 연 몽클레르.

가상 모델뿐만이 아니다. 패션업계에선 지금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도들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월 19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에서 열린 밀라노 패션위크에선 모델과 옷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몽클레르'의 패션쇼가 열렸다. 밀라노 외곽에 위치한 큰 창고형 갤러리를 5개의 방으로 나누고, 새로운 컬렉션 의상을 주제로 한 영상이 상영됐다. 관객은 런웨이 위를 걷는 모델 대신 미디어 아트에 가까운 영상물을 관람했다. 각각의 영상은 의상의 컨셉트에 맞춰 제작된 것으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런웨이를 걷는 모델만으로는 전달하기 부족했던 디자이너의 메시지를 조금 더 인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로 사용됐다. 영상을 통해 선보인 실제 의상은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공개됐다.  
지난 10월 18일엔 '더 스튜디오 케이'를 전개하는 홍혜진 디자이너가 이와 비슷한 시도를 했다. 홍 디자이너는 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패션쇼 대신 모델을 찍은 사진과 그가 사랑하는 서울의 장소들을 찍은 영상을 결합한 미디어 아트 형식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지난 2017년 10월에 개최된 2018년 봄·여름 컬렉션 쇼에서 AR(증강현실)을 접목한 실험적인 시도로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홍 디자이너는 "일반적인 패션쇼에서 보여지는 런웨이는 200년 전 유럽에서 만들어진 형식"이라며 "서울을 주제로 한 쇼를 기획하면서 서울이라는 공간과 서울에 사는 사람, 둘 다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사진과 영상을 결합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기로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지난해 열린 더 스튜디오 케이의 2018 봄·여름 컬렉션 쇼에서 런웨이를 걷는 모델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실제로는 텅 빈 런웨이지만 AR(증강현실)을 이용해 타니스장 등 화려한 무대 배경이 나타났다.

지난해 열린 더 스튜디오 케이의 2018 봄·여름 컬렉션 쇼에서 런웨이를 걷는 모델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실제로는 텅 빈 런웨이지만 AR(증강현실)을 이용해 타니스장 등 화려한 무대 배경이 나타났다.

디지털 기술은 이처럼 패션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 참석차 방한한 패션지 보그 영국판의 앤더스 크리스티안 마센 패션 크리에이터는 멘토링 세미나에서 “다양한 실험정신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재창조 작업이 향후 패션산업 발전에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서비스디자인공학과)는 "패션계는 가장 혁신수용이 빠르고 소비자 역시 새로움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적은 업계"라며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많은 시도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앞으로 이 같은 방식이 얼마나 확대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이 교수는 "패션에서 보여지는 디지털 기술들은 어디까지나 마케팅의 일환이지 패션업계 판도나 패러다임을 바꾸는 목적은 아닐 것”이라며 “가상 모델 역시 새로운 미디어 콘텐트로서의 역할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홍 디자이너 역시 “주변의 많은 디자이너가 디지털 기술 도입에 대해 부정적”이라며 “아날로그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업계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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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