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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해석’대로 해도 ‘고발’…한국은 빅데이터 후진국

미국의 대출업체 ‘렌도’는 통신사 데이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 등을 신용평가에 반영한다. 주간 통화량이 심야 통화량보다 많은 사람,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이메일을 확인하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나서는 것으로 보고 후한 신용 점수를 준다. 독일의 핀테크 기업 ‘크레디테크’는 은행 거래정보 외에 이베이ㆍ아마존 등에서 수집한 정보를 반영한다. 주기적으로 온라인 쇼핑을 한다면 소득이 일정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식이다. 중국의 인터넷 은행인 마이뱅크ㆍ위뱅크는 통신 요금을 얼마만큼 내고 밀리지는 않는지, 온라인 쇼핑 등을 얼마나 하는지 등을 분석해 신용등급을 매기고 대출을 제공한다. 
 
안미소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예전에는 대출이 아예 안 되거나 높은 금리의 대출을 받아야 했던 사회 초년생이나 주부 등이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금융회사는 추가로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다”며 “빅데이터의 활용을 통해 '윈윈 효과'를 누리게 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세계 주요 국가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지만 한국은 이제서야 걸음마를 떼고 있다. 나우콤ㆍ아프리카TV 대표를 역임한 문용식 한국정보화진흥원장은 “빅데이터 축적ㆍ활용을 위한 정보기술(IT) 인프라는 최고 수준이지만, 규제에 막혀 이를 이용한 혁신에는 뒤처져 있다”며 “지금 상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선진국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이 꼽는 문제는 개인 정보 활용과 관련한 일관된 법적 기준이 없고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에는 성명ㆍ주민등록번호ㆍ영상뿐만 아니라,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알아볼 수 있는 정보까지 포함된다.  ‘쉽게 결합해’라는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개인정보에 포함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예컨대 한 신용카드사의 회원인 30대 A씨가 특정 지역의 한 제과점을 자주 이용한다는 정보가 관점에 따라 개인정보가 될 수도 있고, 활용이 가능한 ‘비식별 정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불명확한 정의로 개인정보보호법 적용대상이 과도하게 넓어졌다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2016년 일종의 행정 해석인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당장 법을 고치기 어려우니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풀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지난해 11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업을 추진한 한국신용정보원 등 4개 기관과 현대자동차ㆍSK텔레콤 등 기업 20곳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다. 서로 다른 기관ㆍ기업이 보유한 3억4000만건의 비식별 개인정보를 결합해 활용하는 게 여전히 불법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후 기업 대부분은 관련 서비스 개발을 중단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지켜도 법 위반으로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판단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반면 글로벌 기업들은 비식별 개인정보를 활용해 유통ㆍ의료ㆍ금융ㆍ교육 등의 분야에서 혁신을 꾀하고 있다. 볼보 등 자동차 업체는 운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결함을 예측하고, 제품 개발에 활용한다. 아마존ㆍ타깃 등 유통업체는 빅데이터를 통해 고객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고, 할인쿠폰을 발송해 준다. 월트디즈니는 입장객 수, 예약된 호텔 객실 수, 올랜도 지역 날씨 등을 분석해 향후 6주간 필요한 직원 수와 업무 분량을 예측한다. IBM은 의학 빅데이터를 이용해 암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고, 일본 라쿠텐은  전자상거래 회원의 건강 빅데이터와 결합한 의료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한국과 다른 주요 국가 간 두드러진 제도적 차이는 ‘비식별 정보’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다. 미국은 빅데이터 이용 및 분석 과정에 개인정보처리를 제한하는 일반법이 없어 이용자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개인정보를 수집ㆍ분석ㆍ활용할 수 있다. 대신 사후 거부제(opt-out)를 통해 이용자가 원하면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 유럽연합(EU)ㆍ일본 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가명정보(가명을 사용한 정보)ㆍ익명정보(통계ㆍ분석 형태의 정보) 등으로 정보를 구분하고 익명정보는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허용했다. 가명정보에 대해서도 일정 조건만 지킨다면 활용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줬다.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KAIST 교수)는 "4차산업 혁명의 핵심이 빅데이터인데, 한국에선 활용에 제한이 있다 보니 인공지능 같은 신산업들이 말라 비틀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시민단체에서 반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커지고, 자칫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데이터는 미래 산업의 원유”라고 언급하며 빅데이터 산업 육성 의지를 밝힐 정도로 개인정보 활용의 필요성은 커지는 추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형사 처벌이 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규정을 갖췄다”며 “데이터 활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안별로 정부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던지, 불명확한 비식별화 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빅데이터 시장은 급성장하는데, 활용도는 뒤처지는 한국 
시장조사기관 ‘위키본’에 따르면 세계 빅데이터 시장 규모는 올해 408억 달러에서 2026년에는 922억 달러(약 104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2014년(183억 달러)에서 5배 이상으로 커진 규모다. 하지만 한국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평가한 올해 ‘빅데이터 사용 및 분석’ 순위에서 63개국 중 31위다. 56위였던 지난해보다는 순위가 많이 올랐지만 중국(12위)ㆍ인도네시아(29위) 등에 밀리는 중위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 디지털 경제 아웃룩’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빅데이터 분석 활용 비율은 4%로 주요국 가운데 꼴찌였다. 한국정보화진흥원 ‘빅데이터 통합과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데이터 규제 강도가 미국ㆍ유럽ㆍ일본보다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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