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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의 시선] 수사인지, 법률 세미나인지 알쏭달쏭한 …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 거래 의혹의 발원지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속 자료들이다. 오지랖 넓게도 워낙 기록을 좋아하고 정리를 좋아해 둔필승총(鈍筆勝聰·둔필의 기록이 총명한 기억보다 낫다는 뜻)의 믿음으로 꼼꼼히 적어놨던 게 드러나면서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시발점이 됐다. 사법부의 최대 재앙이 밤낮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던 그의 손가락 끝에서 나온 것이다. 검찰이 수사 착수 넉 달여 만에 지난 15일 사건의 ‘키맨’으로 지목된 임 전 차장을 소환조사하면서 윗선 사법처리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웬일? 임 전 차장이 20일 네 번째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게 수사인지, 법률 세미나인지 잠시 헛갈렸다. 아무리 조사할 분량이 많다고는 하지만 첫 소환에서 19시간을 조사하고 돌려보낸 이후 거의 매일 불러서 따지고 있다니 드는 생각이다. 이쯤 되면 검찰청사로 출퇴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국정농단 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도 확연히 구분된다.
 
검찰이 이러는 첫째 이유는 조사량이 방대해서다. 임 전 차장을 상대로 추궁한 불법 행위만 4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다른 이유도 있다. 임 전 차장이 기억하건 안 하건, 못하건 간에 이 사건의 사실관계(팩트)는 넉달간 80여명의 판사 조사를 통해 거의 파악이 됐다. 다만 직권남용이라는 적용 법조문은 다툼의 여지가 많다. 더욱이 재판 거래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사건 당사자가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판사 출신 법률 전문가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검사들이 기소한 사건의 재판을 맡아 유·무죄를 갈랐던 ‘큰 망치(판사봉)’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중히 처리할 수밖에 없다. 40여 가지 행위도 숫자의 함정일 수 있다. 일전에 이미 직권남용 등 다수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건에서 보듯 가랑비에 옷깃 젖는다는 식으로 혐의를 모아 놨으나 결정적 한 방이 없어 보이기는 매한가지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예를 들어 보자. 2015년 서울남부지법 재판부의 한정위헌 제청 철회 사건 등에 대해 검찰은 재판 관여로 직권 남용이라고 본다. 하지만 피의자 측은 그대로 뒀다면 법원 조직이 부담을 안게 될 수 있기에 의견을 낸 것이라고 항변한다.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견책 징계를 받은 프로야구 선수 벌금형 선고 건도 비슷하다. 판사는 오류가 없고 설사 오류가 발견돼도 재판 독립의 원칙상 완전히 언터처블(Untouchable) 한 존재여야 하느냐는 본질적 고민과 관련돼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 네 차례 조사를 통해 검찰은 임 전 차장의 진술이 담긴 수백 쪽 분량의 조서를 작성했다. 검찰의 공격적 질문에 임 전 차장은 팩트는 ‘예스’, 범죄는 ‘노’라고 진술했다. 업무상 오버한 건 잘못이지만 징계나 탄핵 사안은 될지언정 형사처벌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검찰이 기소하면 재판 역시 문건에 적힌 팩트를 갖고 한 가지씩 따지는 법률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짠 수사 프레임의 정점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있다. 이 프레임에 따르면 임 전 차장에겐 금명간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이다.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에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은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기각 때문이라는 프레임도 공고히 구축돼 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주 국정감사장에서 “압수수색영장 기각 사유를 검찰이 공개하는 것은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 이유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힌 것도 그런 맥락이다.
 
예전에 영장이 기각되면 반성부터 하던 검찰이 언제부턴가 반박을 먼저 한다. 검찰은 국가수사기관이지 사법부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기본을 망각한 듯하다. 선수(검찰)가 승복을 못 하는데 관객(시민)이 판결을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요즘 검찰 원로들 사이에선 “검찰에 자기 무오류의 착각에 빠진 새로운 종족이 출현한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법원이 검찰의 쓴소리를 듣게 된 데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 스스로 검찰에 칼을 쥐어주고선 증거를 달라니 나 몰라라 하고 있어서다. 법원행정처가 가진 자료조차 내주지도 못할 거면서 검찰을 끌어들인 리더십은 양승태 사법부의 일탈에 대한 법적 단죄와는 별도로 사법부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끝으로 드는 단상 하나. 법원이 이번 사건에서처럼 다른 사건에서도 압수수색영장 발부 심사를 신중하고 엄격히 했더라면 마녀사냥식 ‘갑질 수사’로 인한 인권 침해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모르긴 해도 수사 대상임과 동시에 수사 통제권을 갖고 있는 이중성의 법원이 이번 수사로 얻는 교훈은 크고 뼈저릴 것이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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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