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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율 2.3%의 직권남용죄, 현 정부 적폐청산 ‘무기’ 됐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화이트리스트 사건 선고 공판에 출석했다. 법원은 전경련에 보수단체 지원을 요청한 행위가 직권남용죄가 되지는 않지만 강요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그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연합뉴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화이트리스트 사건 선고 공판에 출석했다. 법원은 전경련에 보수단체 지원을 요청한 행위가 직권남용죄가 되지는 않지만 강요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그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연합뉴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자유한국당 권성동·염동열 의원, 조현오 전 경찰청장….
 
문재인 정부 들어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인사들이다. 박 전 대통령을 포함해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38명 중 15명에게 이 혐의가 적용됐고, 진행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및 재판 거래 의혹(이하 재판 거래 의혹) 수사가 마무리되면 10명 안팎의 전·현직 고위 법관들이 이 혐의로 기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권교체 이후 검찰이 주도해 온 적폐청산의 결과 ‘직권남용죄’가 법조계의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직권남용죄는 사실상 버려진 상태였다.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고발된 공무원 숫자는 10년 전인 2008년 2474명에서 지난해 7879명으로 3배 이상 늘었지만 실제 처벌되는 숫자는 극히 적었다. 2016년 검찰이 처리한 직권남용 사건 1049건 중 기소된 사람은 24명(약 2.29%)에 그쳤고, 이 중 구속기소는 4명에 불과했다. 같은 해 이 혐의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12명의 피고인 중 9명은 무죄, 1명은 벌금형 선고를 받았다. 실형이 확정된 사람은 2명이 전부였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입증하는 데 드는 노력에 비해 형량도 낮아 검사들이 적용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권교체기마다 떠오른 직권남용
 
2006년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형법 123조의 위헌성을 주장하면서 “정권교체의 경우 전임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들춰내거나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낸 헌법소원 결정문에 쓴 소수의견이었다.
 
결국 헌법소원은 기각됐고, 박 의원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대북송금 특검에 의해 직권남용죄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기호 당시 경제수석과 함께 산업은행이 현대그룹에 4000억원의 대출을 하도록 했다는 혐의였다. 권 전 재판관의 지적대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직권남용 혐의 수사는 대부분 정권 교체기에 진행됐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씨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진도그룹이 시중은행으로부터 특혜성 대출을 받는 데 개입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에는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요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 신정아씨가 일하던 성곡미술관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 제3자 뇌물제공 혐의와 함께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 고검장 출신의 변호사는 “정권 교체기에 직권남용 수사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대개 뇌물 등 다른 주된 혐의에 부수적인 혐의로 기소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직권남용죄를 전 정부 관계자 처벌의 전면에 내세우는 건 국정농단 수사 이후 새로운 트렌드”라고 말했다.
 
 
희비 갈린 재판 … 결국 전원합의체서 결론
 
최근 직권남용 재판의 결과는 숨가쁘게 엇갈렸다. 1심을 기준으로 박 전 대통령과 우 전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혐의는 ‘일부 유죄, 일부 무죄’였고, 이 전 대통령과 최 의원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최 의원과 우 전 수석 재판에서 무죄 이유는 ‘증거 부족’ 또는 ‘남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판단 때문이었지만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 재판 등 대부분의 재판에서 ‘직무권한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가 쟁점이 됐다. 정치적으로는 쌍둥이 사건인 블랙리스트 사건과 화이트리스트 사건의 유·무죄가 엇갈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정무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공모자’로 지목된 블랙리스트 사건에선 2심까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지난 5일 화이트리스트 사건 1심 재판에선 무죄 선고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를 순차적으로 움직여 특정 성향의 문화예술인 지원을 배제한 것은 대통령이 직무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판단된 반면, 전경련이 특정 시민단체를 지원하도록 만든 것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실의 직무권한 밖의 일이라고 평가된 결과다. 고위 공직자들의 직무권한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자 대법원은 지난 7월 블랙리스트 사건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전원합의체가 직권남용죄의 여러 쟁점에 대해 언제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가 기소가 예정된 재판 거래 의혹 사건과 현재 진행 중인 각종 직권남용 재판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법원이 ‘직무권한’의 개념을 지나치게 좁게 보는 경향이 있다. 고위 공직자가 지위와 지휘체계를 이용해 위법 부당한 행위를 지시하는 것을 폭넓게 처벌할 수 있도록 해석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다른 공무원 범죄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애매한 사안들에 규정이 추상적이고 경계가 모호한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고 있어 해석론을 넓히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이유정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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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