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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르네상스’ 일군 예술경영 … ‘gucci하다’로 신세대와 소통해 매출 껑충

지난 9월 24일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르 팔라스에서 공개된 구찌의 2019 봄/여름 컬렉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이번 행사로 올해 프랑스 오마주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사진 구찌]

지난 9월 24일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르 팔라스에서 공개된 구찌의 2019 봄/여름 컬렉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이번 행사로 올해 프랑스 오마주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사진 구찌]

지난 10일 저녁 중국 상하이 유즈(Yuz) 뮤지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가 주최한 현대미술 전시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The Artist is Present·10월 11일~12월 16일)’의 VIP 오프닝은 대성황을 이뤘다. 현란한 용 무늬 자수 장식이 가득한 재킷, 반짝이는 벌 문양이 붙어있는 스니커즈, 그린-레드-그린(GRG)이라는 브랜드의 시그니처 컬러가 커다란 로고와 함께 드러난 핸드백 차림의 국내외 ‘구찌 신상 스타일’ 남녀들로 미술관 로비는 발디딜 틈이 없었다.
 
구찌의 현대미술전 'The Artist is Present' 포스터

구찌의 현대미술전 'The Artist is Present' 포스터

전시의 주제는 바로 ‘카피(copy)’. 구찌 측은 “현대 예술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원칙인 독창성·의도·표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라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중국산 모조품을 뜻하는 ‘산자이(山寨)’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로 불법복제 악명이 높은 중국에서 이같은 주제를 정면으로 치고 나왔다는 것이 눈길을 끄는데, 전시는 단순한 힐난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각국 37명/팀의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주제는 가짜·표절·모방·패러디·오마주·미니어처·원형복원·세포분열·쌍둥이·닮은꼴·흉내내기 등으로 변주되며 묵직한 담론을 던진다.
 
구찌의 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는 중국 상하이 유즈 뮤지엄

구찌의 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는 중국 상하이 유즈 뮤지엄

 
상하이 유즈 뮤지엄서 ‘가짜’ 주제 전시회
 
구찌와 협업하고 있는 스페인의 젊은 예술가 이그나시 몬레알이 지난 2월 이탈리아 밀라노 건물 벽에 그려넣은 ‘아트월(Art Walls) 프로젝트’. [사진 구찌]

구찌와 협업하고 있는 스페인의 젊은 예술가 이그나시 몬레알이 지난 2월 이탈리아 밀라노 건물 벽에 그려넣은 ‘아트월(Art Walls) 프로젝트’. [사진 구찌]

주제와 포스터부터 패러디다. ‘The Artist is Present’는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벌인 퍼포먼스의 제목으로, 작가의 얼굴까지 빌려와 고스란히 베꼈다. ‘예술가가 존재한다’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 쯤으로 해석되는 제목의 의미는 다의적이다. 전시장 초입에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빗댄 ‘나는 카피한다, 고로 존재한다(I copy therefore I am)’라는 슬로건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를 기획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사진 왼쪽)이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함께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사진 왼쪽)이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함께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운데가 비어있는 직육면체 가구들을 벽에 붙인 도널드 저드의 유명한 작품은 멕시코 작가 호세 다빌라에 의해 종이 박스로 재현됐다. 벨기에 작가 빔 델보예는 먹고 마시고 싸는 인간의 생체구조를 기계장치로 똑같이 만들어 기계가 배변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의 마준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색칠까지 한 도자기 TV를 내놨다. 전시장 마지막에는 뉴욕타임스가 들어있는 빨간 우체통 같은 것이 설치돼 있는데, 자세히 보면 ‘The New Work Times’다. 전시 도록을 가짜 신문 형태로 만들어 관람객을 끝까지 웃음 짓게 한 것이다.
구찌의 상하이 현대미술전 'The Artist is Present'에 전시된 짝퉁 뉴욕타임스 신문을 전시한 'The New Work Times'

구찌의 상하이 현대미술전 'The Artist is Present'에 전시된 짝퉁 뉴욕타임스 신문을 전시한 'The New Work Times'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나오며 ‘도대체 오리지널이란, 독창적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복제는 일종의 신성모독이다. 신을 모욕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신의 존재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행위”라고 전시를 기획한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은 말한다.
 
11일 중국 상하이 유즈 뮤지엄서 시작된 현대미술전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에 출품된 레고로 만든 실비백(Sylvie Bag·왼쪽 사진)과 미켈레가 화려한 자수 장식을 첨가한 신상 실비백. [사진 구찌]

11일 중국 상하이 유즈 뮤지엄서 시작된 현대미술전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에 출품된 레고로 만든 실비백(Sylvie Bag·왼쪽 사진)과 미켈레가 화려한 자수 장식을 첨가한 신상 실비백. [사진 구찌]

이번 현대미술전을 주도한 인물은 2015년 1월 구찌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46)다. 로마의 명문 패션스쿨인 아카데미 오브 코스튬&패션을 졸업하고 펜디에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입문, 2002년 당시 구찌를 이끌던 톰 포드에 발탁돼 구찌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상하이 전시를 기획한 마우리치오 카텔란

상하이 전시를 기획한 마우리치오 카텔란

새로 ‘병권’을 잡은 그는 기존의 우아하고 고상한 이미지를 버리고 호랑이·뱀·너구리·딱정벌레·엉겅퀴·붓꽃·작약·양귀비 등 남들이 잘 쓰지 않던 독특한 동식물 문양을 화려한 색상의 프린트와 커다란 자수로 선보이며 맥시멀리즘을 구현했다. GG 로고 역시 부각하며 브랜드의 비주얼 이미지를 완전히 새로 구축했다. 이런 이미지들은 젊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에서 나온 것이 적지 않다.
 
형이상학 회화의 대가 데 키리코(De Chirico)의 화풍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스페인 화가 이그나시 몬레알(Ignasi Monreal·28)은 2015년 ‘#구찌그램’ 프로젝트부터 함께 일을 시작했는데, 뉴욕과 밀라노의 널직한 건물 벽면에 구찌의 이미지를 초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아트월(Art Wall)’ 작업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2018 크루즈 런웨이 티셔츠에도 사용됐다. 현재 대림미술관에서도 전시를 하고 있는 스페인 출신의 코코 카피탄(Coco Capitan·26)은 원래 사진 작가였으나 통찰력 있는 문구와 개성 있는 글씨체가 구찌의 눈에 띄어 발탁된 케이스.
구찌의 상하이 현대미술전 'The Artist is Present' 의 아트월 작업

구찌의 상하이 현대미술전 'The Artist is Present' 의 아트월 작업

 
눈이 약간 사시인 사람들의 오묘한 표정과 알록달록한 오브제를 그려내는 영국의 40대 작가 언스킬드 워커(Unskilled Worker·본명 Helen Downie)는 2014년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패션전에 내놓은 초상화 작업이 계기가 되어 구찌와 콜라보레이션 라인을 출시할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 “핸드백 팔지 않고 감성을 판다”
 
구찌는 지난 4월 피렌체에 브랜드의 미래를 책임질 연구센터 ‘구찌 아트랩(ArtLab)’을 설립했다. 3만 7000㎡가 넘는 공간에 800명이 넘는 직원이 미켈레의 혁신적 미학을 반영한 제품을 연구·개발 중이다. 연내 900명을 더 뽑을 예정이다. 6월에는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아이슬란드 출신 가수 비요크(Björk)에게 미켈레가 만들어준 드레스 등을 피렌체 ‘구찌 가든’에 새로 전시하며 동시대 대중예술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젊고 개성 강한 스트리트 감성으로 충만한 이런 제품들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2000년 태생)의 마음을 얻었다. 유튜브에서 ‘구찌하다(gucci)’는 단어는 ‘쿨하다’와 같은 뜻이 됐다. 특히 젠더·성적 정체성·인종·민족에 대한 미켈레의 열린 마음은 ‘시대정신’과 부합하며 명품의 정의를 새로 썼다.
 
그의 옷은 남성용과 여성용의 구분이 모호하다. 미켈레의 첫 향수 ‘구찌 블룸’의 모델로 여성을 위한 성애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다코타 존슨, 트랜스젠더 여배우 겸 모델인 해리 네프를 내세운 것 역시 이를 방증한다. 15일자 뉴욕타임스 T매거진은 “그는 슬리퍼나 핸드백을 팔지 않는다. 그가 파는 것은 괴짜스러운, 모든 것이 집약된, ‘감성’”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특히 공식 온라인 스토어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 채널을 이용해 특정 시공간에서만 가능한 리미티드 에디션 판매 등으로 디지털 소비자를 대거 끌여들였다는 것이 ‘구찌 르네상스’의 핵심이다. 지난 2월 ‘라 리퍼블리카’는 온라인 매출이 80% 성장했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구찌 소비자의 절반이 35세 미만”이라는 설명에 브랜드는 가장 흐뭇해 한다.
 
미켈레를 발탁한 새 CEO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i·56)가 2015년 1월 이후 선보인 ‘숫자’들은 패션계의 전설이 됐다. 2014년 35억 유로였던 매출은 지난해 62억 유로로 2배 가까이 뛰었다. 덕분에 구찌는 모기업인 케어링(Kering) 그룹이 루이 비통을 보유한 명품 라이벌 LVMH 그룹을 크게 앞서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그래픽 참조). 비자리 회장은 지난 6월 7일 피렌체에서 열린 투자자의 날 행사에서 “연내 100억 유로 매출을 달성하겠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또 “영업 이익률도 지난해 34.5%에서 40%로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상하이=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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