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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우는 사람이 많아진다, 왜 그럴까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 읽기(19)
가을을 손님에 비유하자면 문밖까지 왔다가 기별만 남기고 금세 가 버리는 수줍은 손님이 아닐까. [중앙포토]

가을을 손님에 비유하자면 문밖까지 왔다가 기별만 남기고 금세 가 버리는 수줍은 손님이 아닐까. [중앙포토]

 
길 위에 낙엽들을 보니 아무래도 계절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은 가을에 대해 써본다.
 
계절마다 특색 있지만 가장 독특한 건 역시 가을이 아닐까 싶다. 처음으로 기온이 꺾이기 시작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기온이 꺾인다는 것은 충만했던 생명력이 돌연 자취를 감춘다는 얘기다. 쓸쓸함이 밀려든다는 뜻이다.
 
손님에 비유하자면 여름은 현관문을 열어주자마자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서는 거실 한가운데 눌러앉는 느낌이다. 그만큼 거침없고,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다. 겨울은 어떤가. 겨울은 아예 드러눕는 쪽이다. 더욱 거침없고, 지겹도록 안 간다. 그러나 다행히 지겨운 겨울 가면 새 손님이 온다. 그리고 이 새 손님, 퀴퀴해진 집 구석구석에 방향제를 잔뜩 뿌려주고 가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가을은 이 계절들과 다르다. 결코 우리 곁으로 바투 다가오지 않는다. 늘 데면데면하게 스쳐 지나간다. 가을은 문밖까지 왔다는 기별만 남기고 금세 가 버리는 수줍은 손님이다.
 
국제무역 일을 하는 나는 평소 선박에 관련된 용어를 쓸 일이 많다. 그런 내가 보기에 가을은 ‘터그보트(tugboat)’와 닮았다. 겨울라는 본선(本船)을 끌고 오는 작은 예인선(曳引船), 그게 가을이다.
 
가을은 유독 '타다'라는 동사와 많이 묶여 쓰인다. 계절이나 기후의 영향을 쉽게 받다 라는 뜻인데 그만큼 가을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준다. [사진 pixabay]

가을은 유독 '타다'라는 동사와 많이 묶여 쓰인다. 계절이나 기후의 영향을 쉽게 받다 라는 뜻인데 그만큼 가을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준다. [사진 pixabay]

 
가을은 유독 ‘타다’라는 동사와 많이 묶여 쓰인다. 겨울에는 ‘추위를 탄다,’ 여름에는 ‘더위를 탄다’고 하면서도 유독 가을에는 ‘가을을 탄다’고 말한다. 여기서 ‘타다’는 ‘계절이나 기후의 영향을 쉽게 받다’라는 뜻인데 그만큼 가을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준다.
 
계절에 대해 궁리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단체채팅방에 의견을 물으니 한 친구 왈, 가을은 ‘삼투현상(滲透現象)’처럼 온단다. 나는 그 말을 언뜻 이해하지 못해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리고 가을 길을 걷다가 어떤 상상을 해보게 됐다. 가을이 오면 서정성이 짙어지는 이유, 가을이 늘 멜랑콜리한 기분과 연결되는 이유, 가을이면 조금씩 아픈 이유를.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을이란 애잔함의 덩어리 같은 것이 틀림없다. 가을이 오면 대기 중에 애잔함이 넘실댄다.
 
물론 우리의 마음속에도 애잔함은 있다. 그런데 가을이 내뿜는 애잔함의 농도는 우리 마음속의 그것보다 훨씬 짙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농도가 짙은 쪽으로 수분이 이동하는 현상, 체내의 수분이 바깥으로 흐르는 현상이. 가을철에 종종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는 까닭이다.
 
-거기
그 자리.
봉선화 주먹으로 피는데
피는데
 
밖에 서서 우는 사람
건듯 갈바람 때문인가,
 
밖에 서서 우는 사람
스치는 한점 바람 때문인가,
 
정말?


가을이 오면 눈물이 나는 이유  
박용래 시인(1925~1980)

박용래 시인(1925~1980)

박용래 시인(1925~1980)의 ‘육십의 가을’이란 시다. 짧은 시에 담긴 시어들이 가을의 애잔한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시의 어디에도, 슬픈 사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시의 슬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얼핏 보기에 시의 슬픔은 ‘밖에 서서 우는 사람’이란 행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 우는 사람이란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독자의 마음이 그 사람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곱씹다 보면 이 슬픔의 수원지(水源地)는 ‘거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봉선화가 주먹처럼 피는 곳. 어쩌면 고향, 어쩌면 좋아하던 여자아이의 집 앞. 그 어느 쪽이든 봉선화가 피는 그곳. 그곳 생각에 밖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서 있다. 슬픈 것은 운다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운 그곳 생각’이다.
 
그런데 왜 시의 제목 ‘거기’나 ‘봉선화 피는 데’가 아니라 ‘육십의 가을’일까. 그것은 필시 시 속 울고 있는 사람의 슬픔을 끄집어낸 것이 가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은 왜 그런 작용을 할까. 어쩌면 겨울은 더 혹독하기 때문에 미리 눈물을 빼주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가을은 우리를 강렬하게 짓누르기도 한다. 눈물을 빼내기 위해 우리를 짓누르는 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손길, 그것을 가을의 삼투압(渗透壓)이라고 한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jeonjun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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