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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김주원 종법사 "죽기로 작정하고 나를 던지다 보면 길이 열린다."

원망하는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리자.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가 보리다’하는 뜻과 통한다. 그런데 ‘번뇌가 보리다’보다 훨씬 쉽지 않나.”
 
18일 전북 익산의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전산(田山) 김주원(70) 신임 종법사를 만났다. 그는 지난달 임기 6년의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제15대 종법사로 선출됐다. 전주고를 졸업할 때 학교에선 “서울대 지원하면 무조건 합격”이라고 말할 만큼 그는 수재였다. 그런데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지원한 뒤 출가해 교무가 됐다. 학교에서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산 종법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전산 김주원 종법사는 "진리를 품은 스승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우리는 진리를 모르니까. 진리가 어디서 나오나. 법이 어디서 나오나. 스승에게서 나온다. 그러니 스승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산 김주원 종법사는 "진리를 품은 스승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우리는 진리를 모르니까. 진리가 어디서 나오나. 법이 어디서 나오나. 스승에게서 나온다. 그러니 스승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생 살면서 항상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다. 출가 전에는 더했다. 남을 용납하는 마음이 좁았고, 내성적이라 사람들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와 고등학생 때의 나를 보면 180도 달라졌다.”
전산 종법사는 그게 ‘출가의 힘’이라고 했다. 그런 힘의 뿌리, 사람을 바꾸는 이치의 뿌리가 소태산(少太山ㆍ본명 박중빈, 1891~1943) 대종사의 가르침에 있다고 했다.  
 
원불교는 창립 100년 만에 국내 4대 종단으로 성장했다. 탄탄하고 모범적이라는 외부의 호평이 많다. 동시에 교역자들은 다소 노령화됐고, 교단이 침체했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 100년은 어떻게 보나.
원불교 역사는 이제 100년이다. 400~500년까지는 창립기라고 본다. 그러니 ‘침체했다’‘발전했다’는 평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대신 대종사께서 원불교를 세우신 본래의 뜻이 있다. 그게 창립정신이다. 그걸 살려서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교단 운영을 법에 맞게 원칙적으로 하자는 입장이다.”
 
원불교의 창립정신이 뭔가.
원불교 초기에 대종사께서 제자 아홉 명에게 자기 목숨을 던지라고 했다. 실제 죽지는 않았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왜 그랬을까. 이 세상에 자기 제자들에게 죽으라고 한 종교적 스승이 또 있었을까. 대종사의 가르침은 ‘무아(無我)’를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전북 익산의 원불교 총부에서 만난 김주원 새 종법사는 "체세포 복제를 해서 대종사님과 똑같은 사람이 나왔다고 치자. 그럼 그게 대종사인가. 아니다. 그건 겉모습만 같을 뿐이다. 그분이 깨친 마음이 바로 '대종사'다"라고 말했다.

전북 익산의 원불교 총부에서 만난 김주원 새 종법사는 "체세포 복제를 해서 대종사님과 똑같은 사람이 나왔다고 치자. 그럼 그게 대종사인가. 아니다. 그건 겉모습만 같을 뿐이다. 그분이 깨친 마음이 바로 '대종사'다"라고 말했다.

 
그 가르침을 실생활에는 어떻게 대입할 수 있나.
 ‘무아봉공(無我奉公)’이다. 결국 ‘공(公)’을 위해서 바치는 거다. 세상을 위해서 바치는 거다. 그럼 ‘무아(無我)’가 된다. 그렇게 ‘나’를 싹 없애고 나면, 거기로 법(法)이 들어간다.”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달라.
내가 젊었을 때다. 3대 종법사였던 대산(大山ㆍ본명 김대거, 1914~1998) 종사께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평생의 신조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남을 나로 알고 산다’. 그 말이 내 가슴에 아주 깊이 박혔다. 그 다음부터 나의 신조가 됐다.”
 
전산 종법사는 그게 바로 ‘무아봉공’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아봉공’을 할 때 우리의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또 상대방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걸까.  
 
사람을 만날 때 다르더라. ‘나’라는 것이 딱 있으면 뭔가 벽이 끼더라. 나와 상대방 사이에 장벽이 생기더라. 그래서 소통이 안 되더라. 그런데 그게 없으면 소통이 되더라. 상대방의 마음도 느껴지더라.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정이랄까, 이해랄까, 배려랄까, 그런 게 생겨난다.”
 
전산 종법사는 오래전에 교단의 총무부장으로 일했다. 그때는 아주 엄정하게 법대로 일을 처리했다.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다. “그런데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더라. 지금까지도 나를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됐다. 법을 세우되, 사람을 살리면서 법을 세워야 함을 말이다.”
 
김주원 종법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물질이 개벽한다. 그냥 두면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만다. 그 물질을 활용하는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 그게 정신개벽이다"고 말했다.

김주원 종법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물질이 개벽한다. 그냥 두면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만다. 그 물질을 활용하는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 그게 정신개벽이다"고 말했다.

 
왜 사람을 살리면서 법을 세워야 하나.
법을 세우는 목적이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니까. 요즘 후배들 보면 법만 딱 세우는 사람도 있다. 그걸 보면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더라.”
 
우리 사회에 ‘적폐청산’이 큰 이슈다. 사람마다 바라보는 입장도 다르다. 진정한 정의(正義)란 뭔가.
정의를 세울 때, 불의(不義)를 쳐서 세우는 정의는 오래가지 못한다. 불의를 안고서 펼치는 정의가 오래간다.”
 
요즘 청년들의 삶이 고달프다. 취업난에다, 결혼과 출산도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참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그럼에도 ‘절처봉생(絶處逢生)’이란 말이 있다. ‘끊어지는 곳에서 생을 만난다’는 뜻이다. 나의 처지, 내가 당하는 일에 원망심을 내지 말고, 그걸 수용하면서 미래를 위해 노력해보라. 그럼 반드시 길이 열린다.”
 
그래도 살다 보면 길이 없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럴 때도 참고 기다려보라. 어떤 어려움에도 길은 열린다. 그리고 죽기로 작정하고 나 자신을 던져보라. 그렇게 노력하고, 애를 써보라. 그게 정당한 일이라면, 죽기로 작정하고 나를 던지다 보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
 
익산=글·사진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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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