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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만들고 목소리 좋아지고…1석2조 낭송 독서 모임"

책 읽는 마을 13- 함께 자라는 나무  
모인 자리에서 주로 고전을 낭송하는 독서 모임인 함께 자라는 나무 회원들. 왼쪽부터 강경규, 이명희, 신현진, 남정희, 정영희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모인 자리에서 주로 고전을 낭송하는 독서 모임인 함께 자라는 나무 회원들. 왼쪽부터 강경규, 이명희, 신현진, 남정희, 정영희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내가 우크바르를 발견한 것은 거울 하나와 어느 백과사전을 연관시킨 덕분이다. 그 거울은 라모스 메히아 지역의 가오나 거리에 있는…."

정영희(51)씨가 낭랑한 목소리로 소설의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한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소설집 『픽션들』에 실린 첫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의 첫 문장들이다. 2, 3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옆자리의 신현진(52)씨가 나선다. 정영희씨가 읽기를 마친 다음 문장부터 읽어 나간다. "일인칭 화자는 사실을 생략하거나 왜곡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모순에 개입하기 때문에…."
 
16일 서울 독립문역 근처, 나무와 열매 어린이도서관(독립문교회 부설)에서 열린 '함께 자라는 나무' 회원들의 독서모임 장면이다. 이들은 독서모임 전에 책을 미리 읽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만난 자리에서 돌아가며 책을 읽는다. 윤독(輪讀) 모임이다. 만나서 읽으니 책을 미처 못 읽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모임에 빠지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윤독 예찬론, 정확하게는 낭독 예찬론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함께 자라는 나무 회원들과 이들이 지금까지 읽은 책들. 주로 고전소설을 읽는다.

함께 자라는 나무 회원들과 이들이 지금까지 읽은 책들. 주로 고전소설을 읽는다.

 "경험이 없으면 잘 모르실 텐데 남이 읽어주는 책을 듣는 묘한 행복감이 있다. 내가 읽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와 다른 사람이 읽어줄 때 와 닿는 느낌이 다르다. 그게 좋아서 가능하면 모임에 빠지지 않는다."(이명희)
 
 "낭독을 많이 하면 폐활량이 커진다고 들었다. 노래 모임에 소속돼 활동하다 보니 목소리 내는 걸 좋아하는데 독서 모임에 나온 이후 폐활량이 좋아진 것 같고 노래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정영희)
 
 낭독의 좋은 점은 알겠다. 그런데 만나서 읽으면 독서 토론은 어떻게 하는 걸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30분쯤 수다 떨고 한 시간 반쯤 읽는다. 그 시간이면 읽기 쉬운 소설의 경우 70쪽쯤 읽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 달에 한 권쯤 읽을 수 있다. 토론은 낭독이 끝난 다음 한 시간가량 돌아가며 소감을 말하는 식으로 진행한다."(남정희 도서관장)
 
 모임의 회원은 모두 7명. 절반가량이 50대 주부다. 주로 고전을 읽는 모임이다 보니 지금까지 읽은 책 목록이 묵직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모비딕』『한중록』『징비록』…. 심지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내용이 어려워 읽는 데 다섯 달이나 걸렸다고 했다. 혼자서는 읽을 엄두를 내기 어려운 책들이다.
 
 하지만 회원들에게는 '독서'도 중요하지만 '모임'의 의미 역시 비중이 큰 듯했다. 친한 독서 친구 만나 수다 떠는 재미로 나온다는 회원이 있었고, 큰 부담 없이 자신의 삶과 관련지어 소감을 말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모임은 2015년 시작됐다. 당시 남정희 관장은 도서관 활성화가 고민이었다고 했다.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에 매달렸지만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지지 않았다. 경기도 고양시 윤독 독서모임의 아이디어를 빌려 모임을 만들었다. 이날 모임에 빠진 동화작가 정혜원씨가 큰 도움을 줬다.
 
 강경규(59)씨는 모임의 청일점이다. 강씨는 천주교 무악동 선교 본당에 소속돼 폐지 줍는 노인 등 무악동 일대 저소득층을 돕는 일을 한다. "하루 종일 주민들을 상대하다 보니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모임에 나온 후 1년에 몇 권씩이라도 읽는다"고 말했다. 정영희씨는 "책을 읽다가 마음을 녹여주는 문장을 만나면 빗장이 풀려 옛날 남자친구 얘기도 하고 남편 흉도 본다"고 '파격' 발언을 했다. "예전에는 내가 혼자 등산 다니며 고독을 씹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독서 모임에 나와 보니 사람들이랑 어울릴 때 기쁨을 느끼는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아줌마들의 책 수다는 아닌 것이다. 
 
이명희(49)씨는 "앞으로 시를 써볼 생각으로 배우는 중인데, 『차라투스트라…』가 어려웠지만 책 전체가 은유로 가득해 모임에서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책 읽는 마을’은 제보를 받습니다. 본지 지식팀(02-751-5389) e메일(won.minji@joongang.co.kr) 또는 2018 책의 해 e메일(bookyear2018@gmail.com)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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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