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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나간다는 英 발목잡았다, 기네스·체다치즈의 유혹

갈라서기로 해놓고 합의금까지 정산했는데 아직도 담판 지을 게 많은가 봅니다. 40년 넘게 동고동락했으니 이혼 절차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겠죠.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 얘기입니다. 최근까지도 타결 임박설이 나오며 기대감을 높였다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죠. 이러다 자칫 아무런 협정 없이 영국이 EU를 떠나는 ‘노딜(no deal)’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것이란 전망도 힘을 받고 있습니다. 
 
양측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막판 진통을 겪는 배경에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보더(엄격한 통제 하의 물리적 국경)’라는 핵심 쟁점이 있지요.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드보더를 피하려는 백스톱(backstop·안전장치)을 포함해 몇 가지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14일 트위터에 밝힌 것처럼 말입니다. 
 
‘하루 4만명 통행’ 국경에 검문소 부활하나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간에는 254개의 교차점이 존재한다. [사진 더타임스 캡처]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간에는 254개의 교차점이 존재한다. [사진 더타임스 캡처]

영국 본토 서쪽에 위치한 섬나라 아일랜드는 남북으로 쪼개져 있습니다. 남쪽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공화국), 북쪽은 영국령 북아일랜드입니다. 224마일(약 358㎞)의 국경을 사이에 둔 양국은 200개 넘는 이동 통로로 연결돼 있죠. 두 나라를 왕래하는 건 옆 동네 가듯 자유롭습니다. 직장과 학교가 국경 너머에 있어 양국을 오가는 이들만 하루 4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하나의 생활권이라 봐도 무방할텐데요. 
 
300여 개의 군 초소가 국경을 지키던 수십 년 전만 해도 양국을 잇는 작은 도로들이 폐쇄됐었습니다. 영국 더타임스는 “북아일랜드 농부와 상인들은 아일랜드로 가려면 50마일(약 80㎞)을 돌아 메인 도로를 통해야 했고, 검문을 위한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고 전합니다. 
1980년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 국경에 경찰들의 모습이 보인다.[사진 아이리시 미러 캡처]

1980년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 국경에 경찰들의 모습이 보인다.[사진 아이리시 미러 캡처]

양측은 하드보더가 부활해 검문소와 세관이 들어서는 상황을 피하자는 데 동의합니다. 지금처럼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자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영국과 아일랜드 간 오랜 싸움을 끝내기 위해 어렵게 맺은 1998년의 평화협정을 깨는 꼴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EU를 떠나는 영국 입장에선 그렇다고 한몸으로 지냈던 북아일랜드만 따로 떼어낼 수도 없는 문제라 골치 아픈 겁니다. 
 
브렉시트가 기네스 맥주값을 올린다?
하드보더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경제적 이익에 직간접적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도 현재의 ‘투명한’ 국경 상태가 유지돼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섬 전체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인 두 나라는 그간 상대국으로 수출품을 보내며 경제 규모를 키워왔습니다. 그 비중은 아일랜드(28%)보다 북아일랜드(81%)가 월등히 큰데요. 이 때문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북아일랜드는 왜 하드보더를 피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하드보더가 생기면 7300개 넘는 북아일랜드 수출업체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죠.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양조장.[AP=연합뉴스]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양조장.[AP=연합뉴스]

특히 FT는 맥주나 유제품 등의 제조공정이 국경을 넘나들며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주목했습니다. 아일랜드 대표 맥주인 기네스 사례를 볼까요. 기네스는 아일랜드 더블린 양조장에서 상품 포장을 위해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로 이동했다 또다시 수출을 위한 종착지, 영국 웨일스로 향하는 제조 공정을 거칩니다. 이 때문에 기네스 제조 물품을 운반하는 트럭이 매년 1만3000번이나 국경을 넘나든다고 하죠. 하드보더 탓에 통관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 기네스 상품의 이동이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까지 지연되고 이로 인해 연간 130만 유로(약 17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게 기네스를 제조하는 디아지오 측의 설명입니다. 

 
기네스 맥주가 상품으로 나오기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제조 공정을 보여주는 사진.[사진 가디언 캡처]

기네스 맥주가 상품으로 나오기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제조 공정을 보여주는 사진.[사진 가디언 캡처]

결국 “맥주 파인트(약 570㎖)의 값을 올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죠. 브렉시트 이후 기네스 맥주 가격 인상설이 여러 외신에 보도된 이유입니다. 영국 가디언은 기네스를 “브렉시트의 예기치 않은 희생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커피를 베이스로 한 세계 판매 1위 리퀴르 베일리스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아일랜드 체다치즈의 운명이 갈린다” 
브렉시트로 인해 희비가 갈릴 치즈의 예를 들어 또 다른 후폭풍을 짚어볼까요. 불확실성이 큰 지금 같은 상황에선 ‘하드 브렉시트’(영국의 EU 완전 탈퇴)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데요. EU 회원국인 아일랜드는 그 경우 체다치즈 관세 문제에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 체다치즈.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캡처]

아일랜드 체다치즈.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캡처]

체다는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치즈입니다. 그런데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아일랜드에서 매년 생산되는 20만t의 치즈 가운데 90%에 해당하는 체다가 곧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죠. 현재 미국을 빼면 아일랜드로부터 체다를 많이 사들이는 나라는 바로 영국입니다. 액수로 따지면 연간 2억5000만 유로(약 3253억원) 상당이라고 하죠. 
 
그런데 하드 브렉시트가 실행되면 아일랜드 치즈 생산업체들이 당장 막대한 관세 부담을 떠안게 될 수도 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전망입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세계무역기구(WTO)의 기준을 적용받게 되면 최악의 상황에서 체다 100㎏당 약 167 유로(약 21만원)의 관세를 감당해야 한다고 미국 폴리티코는 분석했죠. ‘악몽 같은 시나리오’라는 겁니다. 체다는 마진이 낮은 상품이라 “영국에 체다가 공급되지 않을 것”이며 “업체들이 남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코너 멀비힐 아일랜드 낙농산업협회 이사의 말이지요. 심지어 노딜로 될 경우 관세율이 정해지지 않아 무역 중단까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으로 업체들은 영국이 아닌 다른 EU 회원국에서 관세 부담 없이 잘 팔 수 있는 모짜렐라 등으로 생산을 전환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요.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시위자가 영국 의회 건물 밖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시위자가 영국 의회 건물 밖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기네스와 체다치즈만 놓고 봐도 양측의 이혼 문제가 술술 풀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정치적 상황까지 겹쳐 양측의 협상은 더 난항을 겪고 있는데요. 영국에선 집권 보수당 내에서도 브렉시트 수위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강경 브렉시트파 의원 50명 가량이 테리사 메이 총리를 낙마시키기 위한 쿠데타 논의를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죠. 그런가 하면 메이 총리의 연정 파트너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은 ‘노딜 브렉시트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일각에선 수세에 몰린 메이가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탓에 혼란을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결국 브렉시트에 얽힌 기네스와 체다치즈의 운명은 영국이 EU를 떠나게 되는 내년 3월이 돼봐야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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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메이 총리의 고민은
테리사 메이 총리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당초 하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듯하더니 피해가 너무 크다는 걸 알고는 한발 물러선 것이죠. 
 
지난 7월 총리의 별장이 있는 체커스에서 EU를 탈퇴한 이후에도 공산품과 농산물 등의 교역에는 지금의 규제체계를 유지하자는 내용의 ‘체커스안’을 내놓으면서입니다. 이른바 ‘소프트 브렉시트’ 전략인 셈이죠. 그런데 이는 안팎의 공격을 불렀습니다.
 
영국 내 브렉시트 강경파는 EU와의 확실한 단절이 아니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는데요. 항의의 표시로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장관,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 등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존슨 전 장관은 메이 총리의 제안이 “유권자에 대한 사기”라며 강도높게 비난했습니다. 사실상 현재와 다를 바 없이 EU와 긴밀한 통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영국 경제에 대한 정치적 모욕이라고까지 주장했죠. 
 
EU 측에서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에 유리한 규정만 적용하는 ‘체리피킹’을 용납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죠. 체커스안을 고집하다가는 낙마할 수도 있는 상황에 몰리자 메이 총리는 또 전략을 수정합니다. 2020년 말인 브렉시트 전환 기간이 끝나더라도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가 한시적으로 EU 관세동맹에 남는다는 방안을 정한 겁니다. 하지만 또 다시 내각 각료 여러 명의 반발에 직면해 있죠.
 
결국 아름다운 이별은 불가능한 걸까요.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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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