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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가짜뉴스 많다”가 가짜뉴스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경찰청이 최근 국회에 16건의 가짜뉴스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중 하나는 “남북 관통 철도 사업추진은 북한의 기습 남침을 도우려는 것이다”는 주장과 관련돼 있다. 한 시민이 인터넷을 통해 글을 올렸고, 여러 곳으로 옮겨졌다. 그의 주장은 북한이 남침할 때 군수품 조달을 쉽게 하기 위해 철도망 연결을 요구하고 있는데, 한국의 일부 정치인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북한의 전시 철도망 이용 계획 문서나 한국 주사파 정치인들의 대화 녹취록 등의 증거를 내놓지 않는 한 자신의 주장이 진실임을 입증할 수가 없다. 반대로 ‘북한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또는 ‘북한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 정치인이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를 경찰이 확인할 방법도 없다. 진위를 가릴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문제가 된 주장이 추측 수준의 의견 표현이기 때문이다.
 
16건 중 다른 하나는 “(청와대가) 트럼프 사진을 모방해 연출한 사진을 게시했다”는 주장에 대한 것이다. 두 달 전에 한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청와대에서 백악관 사진을 본떠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 직원들에 둘러싸인 모습의 사진을 촬영했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사진 게시 시점이 청와대 사진이 앞선다는 것이 증명돼 이 일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런데 누군가가 고발을 했고, 수사가 착수됐다. 이런 것에까지 경찰이 나선다면 착각·오류에 따른 허위 주장들을 일일이 단속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경찰은 16건의 목록에 ‘국민 생활 침해 허위사실 생산·유포 사범’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았다.
 
가짜뉴스가 많다는 얘기를 연일 듣는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가짜뉴스 퇴출 운동에 앞장선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법원·선거관리위원회·언론중재위원회가 허위 사실로 판정한 것들이 가짜뉴스라는 나름의 ‘명쾌한’ 기준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동안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다스(DAS)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것이 아니다’는 취지로 보도해 온 모든 기사가 가짜뉴스가 된다. 최근 법원이 MB 것이라고 예전과는 다른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광우병 관련 MBC ‘PD수첩’ 보도도 가짜뉴스가 된다. 법원은 미국인 여성 사망 원인 관련 등 3개 내용이 허위라고 판정했다. 박 의원 기준으로는 가짜뉴스를 만든 이들이 지금 그의 친정인 MBC의 사장을 비롯한 간부 자리를 맡고 있다.
 
가짜뉴스 논란을 촉발한 이낙연 국무총리와 수사를 독려 중인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제시한 ‘허위조작정보’라는 기준도 있다. 허위는 거짓이라는 것이고, 조작은 의도적으로 거짓을 진짜처럼 꾸몄다는 뜻이다. 이 기준을 따르면 허위 사실을 전했지만 진실이라고 믿고 그렇게 한 경우에는 가짜뉴스 유포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검찰과 경찰은 의도적 조작이냐 아니냐를 가려내야 한다. 모르고 한 실수인지, 알고도 한 거짓말인지를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면 그는 신(神)의 동기동창쯤 될 것이다.
 
유튜브·페이스북에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주장·억측이 널려 있다. 예전에는 공중 화장실 문에, 골목길 담벼락에 그런 게 많았다. 가짜뉴스가 넘쳐난다고 하지만 그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그러니 많은지 적은지 따져보기가 어렵다. ‘많다’는 그저 각자의 주관적 기준에 따른 추측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가짜뉴스 중 최악은 ‘5·18은 내란음모에 부화뇌동한 폭도들의 무장폭동’이라는 보도다. 중학생 때 신문과 방송에서 그렇게 보고 들었다. 머리가 좀 굵어진 뒤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얘기를 접했는데 어른들은 ‘유언비어’라며 그런 말 옮기면 큰일 난다고 했다. 당시엔 유언비어 유포죄가 있었다(1988년에 폐지). 대학에 가서 영상을 보고 내가 믿었던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1988년 5·18 국회 청문회를 통해 진실과 허위가 뒤바뀌는 순간을 목도했다. 또 내일 무엇이 진짜에서 가짜로, 가짜에서 진짜로 바뀔지 모르는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권력이 언론에 재갈을 물려도 군의 잔혹 행위가 실시간으로 전국에, 전 세계에 알려질 것이다. 유튜브·페이스북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다고 하지만 이것들 때문에 시위대를 겨냥한 군대의 총격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됐다.
 
유언비어 유포죄라는 독재의 칼에 맞서 싸우고, 권력의 폭압과 자기검열 때문에 제도권 언론이 보도하지 못한 진실을 알리겠다며 밤새 유인물을 만들고, 신새벽에 남몰래 담벼락에 민주주의 만세를 쓴다고 노래했던 그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권력의 폭압에 치를 떨며 사상의 자유를 외쳤던 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사람들 맞는가.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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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