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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거기까지가 행복이었나 봅니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죄짓고 산 건 우린데, 왜 먼저들 쓰러지는지….”
 
상주(喪主)의 한스러운 말에 문상객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지었다. 부인상을 당한 민주평화당 박지원(76) 의원은 조문 온 정대철(74) 상임고문과 독백 같은 대화를 나눴다. 박 의원의 부인 고(故) 이선자 여사는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지난 15일 세상을 떠났다(향년 74세). 정 고문의 부인도 병으로 쓰러진 뒤 재활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라고 했다.
 
반백 년 반려자를 떠나보낸 정치 9단은 ‘죄’라는 말로 미안함을 표현하는 듯했다. 지난 16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을 밤늦게 찾은 정치인들도 그 말에 굳이 반론하지 않았다. 백전노장의 정치인은 고인이 된 부인 앞에 ‘유죄’였고, 과거 또는 현재의 동지들은 공범인 양 고개를 숙였다. 빈소를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고인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내조하셨다. 누구보다 활동이 왕성했던 박 의원 곁에서 마음고생은 오죽했겠는가”라고 애도했다.
 
박 의원의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차분한 목소리와 유려한 말솜씨로 조문객을 대접했다. 틈틈이 페이스북에 조문 감사 글도 올렸고, 부인과의 추억도 적었다.
 
“아내는 제가 머리를 짧게 커트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발 열흘 후면 이발하라고 성화였습니다. 어제 위급하지만 저는 아내를 보고 이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내에게 마지막 충성스러운 사랑을 보였습니다.…병원에서 밥 먹여 주고 눈을 부라리며 운동을 시켰건만 거기까지가 제 행복이었나 봅니다.”
 
지난 6월 타계한 고 김종필 전 총리도 2015년 부인 고 박영옥 여사를 먼저 떠나보내면서 쓸쓸한 뒷모습을 보였다. 당시 김 전 총리는 “정성 어린 조문에 아내가 기뻐할 것이다. 국민이 우리 부부를 많이 아껴 오늘에 이르렀다”고 인사를 했다. 그즈음 공개한 김 전 총리의 묘비 글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다한 물음에는 소이부답(笑而不答) 하던 자 -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박지원 의원은 발인식을 앞두고 “저는 지금 아리랑을 부릅니다. 가장 애처롭지만, 미성으로 부릅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내일 아내에게 불러주고 싶습니다”고 적었다.
 
시대를 호령했던 정치인의 ‘사부곡(思婦曲)’이 필부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오히려 애잔하다. 부귀와 영화도 있었겠지만, 정치인 본인보다 더 노심초사한 반려의 삶이었을 것이기에 더 착잡해진다. 짠해진 대중의 마음이 홀로 남은 정치인을 위로하고 있으니 ‘영세반려’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조하며 떠난 셈이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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