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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이 간다]직장에선 일만하고, 여가는 커뮤니티에서 보낸다



네오사피엔스 NeoSapiens | 100세 시대가 바꾼 사회 풍경
100세 시대가 되면서 동호회 활동이 많아지고 있다. 주말 자전거타기 모임이 서울~판교 간 탄천을 달리고 있다. 김동호 기자

100세 시대가 되면서 동호회 활동이 많아지고 있다. 주말 자전거타기 모임이 서울~판교 간 탄천을 달리고 있다. 김동호 기자

 
 
산업혁명 이후 현대인에게 직장은 곧 삶의 전부였다. 출근해서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 퇴근해서도 밤 늦게까지 2차도 부족해 3차까지 가면서 어울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100세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회사보다는 밖에서 더 많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특히 주 52시간제 도입은 ‘100세 시대의 신인류’ 네오 사피엔스의 생존 방식을 더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회사에서 더 짧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나타나는 변화다. 퇴직 후 소속할 수 있는 집단이 필요해지면서다. 그 중심은 ‘소셜 커뮤니티’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동호회를 만들어 평생을 함께 어울린다. 직장 인연이 상대적으로 짧아지면서 사적인 ‘호연(好緣)사회’로의 이동이다. 가장 대표적인 모임은 대학동문이다. 개인주의가 강하다는 연세대조차 ‘586세대’를 중심으로 모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의 활동을 석 달 간 들여다봤다.

 
 
주 52시간제 시행은 커뮤니티 활동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김동호 기자

주 52시간제 시행은 커뮤니티 활동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김동호 기자

지난 8월 이른 아침 서울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에는 50대 초반의 중년 남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산행을 위한 배낭을 메고 얼굴에는 선글라스를 끼거나 모자를 눌러쓴 차림이었다. 참가자들은 1980년대 중반 함께 입학했다. 하지만 재학 중에는 대부분 서로 모르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이들은 오랜 친구처럼 보자마자 말을 놓는다. 처음 나온 사람도 예외가 없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커뮤니티에 들어온 이상 서로 말을 놓기로 했기 때문이다.

미리 ‘밴드’를 통해 참가를 약속한 인원이 확인되자 모임의 리더를 맡은 산행대장이 선두에 나섰다. 대열은 바로 삼삼오오로 형성됐다. 전달 산행 이후의 안부를 묻거나 이날 산행 코스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총무는 작곡을 전공한 여성이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그는 산 입구 수퍼로 뛰어가더니 수박 2개를 사 들고 왔다. 당연히 운반책은 건장한 산행대장에게 맡겨졌다. ‘산타회’라는 이름의 이 모임을 이끄는 회장의 솔선수범이었다.

산은 생각보다 험했다. 쉬운 코스를 제쳐놓고 경치 좋다는 돌산 코스를 이용하다 보니 더욱 힘들었다. 유격훈련에 딱 좋은 코스였다. 일부 여성 참가자는 하산해야 했다. 이 대목에서도 역시 건장한 남성 회원 한두 명이 호위를 자처해 하산을 도왔다. 나머지는 모두 정상으로 향했고 2시간의 산행 끝에 태극기 휘날리는 정상에 도착했다. 바로 간식 보따리를 풀자 화려한 산중 파티가 벌어졌다. 몇몇 여성 회원은 맛깔스런 음식을 준비해 와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산해서는 지하철 근처 음식점에서 본격적인 뒤풀이가 열려 한참을 마시고 떠드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이 이 모임을 만든 계기는 3년 전 졸업 25주년을 맞아 학교에서 홈커밍 데이를 가지면서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과 대표들이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전체 동문을 대상으로 모임을 만든 것이다. 학과에는 구분이 없다. 대다수가 학창 시절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같은 학교에 다녔을 뿐 50년 넘는 인생을 일면식도 없이 지낸 사람들이지만 전혀 불편함이 없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오로지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여서다.  
 50대 중년들이 주말을 이용해 산을 타기 위해 지하철역 입구에 모여 있다. 김동호 기자

50대 중년들이 주말을 이용해 산을 타기 위해 지하철역 입구에 모여 있다. 김동호 기자

80년대 대학 총학생회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운동권이 중심이었다. 다양한 학생들이 다양한 생각을 갖고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졸업 후 50세가 넘어 꾸려진 대학 커뮤니티는 모든 게 자발적이고 수평적이다. 집행부는 봉사하는 자리일 뿐이다. 변재덕 한국대학홍보협의회 회장(동국대 홍보실장)은 “인생이 길어지면서 요즘엔 대다수 대학에서 중년 졸업생들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며 “졸업 25주년 행사를 계기로 다양한 모임이 구성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이런 모임을 주도하는 세대는 586세대가 처음이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은 지금 막내 격인 88학번(69년생)까지 모두 50대로 진입했다. 이들에겐 세 가지 특징이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시대에 대학을 다닌 뒤 지식정보화시대에 사회생활을 하고 퇴직 후 30년을 살아가야 하는 100세 시대의 ‘네오 사피엔스’들이다.

이들의 앞 세대는 대학을 졸업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조우하는 경우를 빼면 커뮤니티 활동이 없었다. 반면 이들 586세대는 쉰을 넘기면서 적극적으로 동문을 찾는다. 연세대의 경우 자타회, 산타회, 시공초월, 지식공유 등 다양한 모임이 있다. 자타회는 자전거를 타고, 산타회는 산을 탄다. 시공초월은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모임이다.

사실 이 같은 사회는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 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일본의 사회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는 꼭 15년 전인 2003년 『고령화대호기(大好機)』라는 책을 통해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직연(職緣)사회가 차츰 옅어지고 호연(好緣)사회가 온다”고 예측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직장은 상하 관계로 맺어져 있어 정년 뒤 퇴사하면 상당수는 만나기 어려워진다. 일을 이끌고 따르는 상하 관계가 사회에 나가서도 바뀌지 않아서다. 아무리 수평적인 리더십을 발휘해도 아랫사람은 편하지 않다. 퇴사 후에는 경조사에 참석해 잠시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묻는 관계로 남는 게 고작이다.

이들을 결정적으로 묶어주는 장치는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이 낳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이 같은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순식간에 정보가 공유되면서 모임이 활성화된다. 여기에 적합한 매체로는 밴드가 독보적이다. 수시로 열어보게 되는 카톡과 달리 밴드는 열고 싶을 때 들어가 메시지를 확인하는 특성이 있다. SNS가 커뮤니티 활성화의 엔진인 셈이다.  
한국은 도심 가까운 곳에 산이 많아 부담없고 쉽게 동호회 활동을 하기 좋다. 김동호 기자

한국은 도심 가까운 곳에 산이 많아 부담없고 쉽게 동호회 활동을 하기 좋다. 김동호 기자

다만 이들은 구시대의 유물인 학연ㆍ지연ㆍ혈연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모임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밴드에는 규약이 정해져 있다. 직접 작성한 일상적인 이야기와 정보 및 콘텐트를 밴드에 올리는 활동 외에는 금지돼 있다. 연세대 커뮤니티 관계자는 “이념적ㆍ정치적ㆍ당파적 주장과 종교는 물론이고, 개인 사업과 외부 비즈니스와 관련된 글도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SNS를 통해 이렇게 연결이 쉽게 되면서 이들 모임은 입학 동기를 뛰어넘기도 한다. 자전거 모임인 자타회의 경우 84년 입학한 의사와 86년 입학생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봄가을엔 80학번대가 특정 학번을 초월해 연합 산행을 가기도 한다. SNS를 통해 글로벌로 외연을 넓히기도 한다. ‘시공초월’ 참가자들은 “해외 체류 경험자는 별도의 밴드 방을 만들어 해외 소식을 주고받는다”며 “국내에 귀임하거나 출장을 오면 번개팅도 연다”고 말했다.

물론 다양한 커뮤니티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정모만 찾아다니거나 정모는 한두 개만 다니고 다른 커뮤니티에는 번개팅에만 참여할 수도 있다. 주말만 되면 자전거를 타든 산에 가든, 골프를 치든, 테니스를 하든 뭐든지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산타회는 이달 중 전세버스를 타고 무박2일 일정으로 ‘영남알프스’를 다녀올 예정이다. 이들은 나아가 밴드 방을 통해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인생 상담을 구하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다양한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네오사피엔스 NeoSapiens 계속 읽기 
①100세 시대의 네오사피엔스는 계속 일하고 싶다
②도서관으로 몰려드는 중장년은 꼰대 아닌 지식정보형
③협동조합으로 갈아타는 인생환승…퇴직자들 돌아온다 
④퇴직자의 블루오션 '제4섹터' 청년에 경험·지식 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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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