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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 해외송금 5초 … 같은 기술 갖고도 놀리는 한국

산업 성장 막는 ‘붉은 깃발’ 규제 ② 
중국 소비자가 QR코드를 찍으면 결제되는 알리페이를 사용하는 모습. 중국은 지난해 온라인 이용자의 69%가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한국은 32%에 불과하다. [EPA=연합뉴스]

중국 소비자가 QR코드를 찍으면 결제되는 알리페이를 사용하는 모습. 중국은 지난해 온라인 이용자의 69%가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한국은 32%에 불과하다. [EPA=연합뉴스]

스마트폰의 해외 송금 앱 ‘페이팔’을 이용해 싱가포르에 있는 지인에게 송금하는 데 채 5초가 걸리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눌러 로그인한 뒤 지인의 이름·e메일을 찾아 보낼 돈을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통장에 돈이 없으면 신용카드 한도를 이용해 송금할 수도 있다. 한국이라면 카드사에 연 20% 고액 이자를 내고 현금서비스를 받아 송금해야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송금 수수료도 저렴하다. 국내 은행에서 외화 100만원을 송금하면 3만~4만원의 수수료가 붙지만 페이팔을 이용하면 1만원(송금액의 1%)만 내면 된다. 23개국 통화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지만 원화 송금은 불가능하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한국은 외환관리법 등의 규제가 엄격하다 보니 이미 다른 나라에선 널리 활용하는 저렴한 송금 서비스마저 이용할 수 없다”며 “국내 핀테크 산업 전체가 규제로 막혀 있다 보니 소비자보다 은행·카드사만 배를 불려주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중국의 핀테크 산업 규제 방식 비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경제원]

한국과 중국의 핀테크 산업 규제 방식 비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경제원]

한국 핀테크산업의 성장판이 닫히고 있다. 해외에선 되는 일이 국내에선 안 되는 ‘갈라파고스식 규제’ 탓이다. 핀테크 신기술에 한해 일단 진입을 허용하는 ‘금융혁신 지원 특별법’은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정무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금융당국도 핀테크 활성화를 위한 기본 방향은 세웠지만 여전히 당국이 허가한 사업만 할 수 있도록 하는 ‘소극 행정’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온라인 핀테크 시장에선 ‘후진국’이다. 언스트앤영(EY)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이용자 중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중은 중국 69%, 인도가 52%에 달한 반면 한국은 32%에 불과했다. 전 세계 평균인 33%에도 밑도는 수준이다.
 
핀테크 신사업이 법적 문제는 없는지를 검토해 알려주는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 회신 기간이 길게는 426일이 걸린 경우도 있었다. 평균 회신 기간은 69일이다. 간발의 차로 사업을 선점당할 수 있는 신기술 전쟁에서 정부의 굼뜬 행정이 방해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이 이렇게 주춤하는 사이 해외 주요국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지난해 독일의 핀테크 벤처기업이 받은 총투자금은 5억4000만 유로(7000억원)로 2015년에 비해 3.4배 성장했다. 나라별 경제상황에 맞는 핀테크 서비스들도 출현하고 있다. 일본에선 가난한 청년층을 위한 일명 ‘빈(貧)테크’ 열풍도 분다. 신용카드를 만들기 어려운 저소득 청년들이 지인들에게 십시일반 자금을 모으는 앱(폴카), 급료를 미리 당겨 지급받을 수 있는 앱(페이미) 등이 대표적이다. 인도에는 소상공인을 위한 온라인 대출 전용 앱(렌딩카르트)도 생겨났다.
 
국내 핀테크 산업 규제가 좀처럼 완화되지 않는 것에는 신기술 도입으로 입지가 줄어들 수 있는 금융사와 노동조합의 반발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까지 ‘규제완화 반대 동맹’을 형성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 진보 성향 시민단체와 정의당·금융노조 등은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도 강조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금지) 완화 방침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신기술 진입을 위해 계류 중인 규제 샌드박스에도 반대한다. “대기업이 은행을 사금고처럼 쓸 수 있고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개인정보 보호 등 공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들 단체가 직접적으로 핀테크 활성화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핀테크가 상용화하려면 규제 샌드박스 도입이 필수적이고,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핀테크 기업이 출현하기 위해선 대기업의 금융시장 진입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중국 핀테크의 대표 기업인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는 모두 금융산업 복합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강력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보니 결국 핀테크 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관료들도 이 같은 반대 여론을 이유로 규제 완화에 소극적이다. 문제가 생기면 감사원 등 사정기관까지 나서 책임을 묻는 과정이 반복돼 왔기 때문에 관료집단 특유의 ‘보신주의’가 형성되는 것이다. 또 금융산업엔 특히 정부가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관치 금융’의 논리도 작동하기 때문에 중국처럼 ‘안 되는 것 빼곤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가 도입되지 못한다.
 
서강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인 박수용 교수는 “새로운 시도에는 시행착오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한국에선 규제완화 이후 조금의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모두 담당 공무원을 비난한다”며 “‘부작용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되다 보니 관료집단에선 ‘일단 규제로 막고 보자’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감독규정·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규제할 때 적어도 혁신 역량을 갖춘 핀테크 스타트업이 진입하는 길은 열어둬야 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핀테크의 물꼬를 틀 최소한의 요건이다. 가령 금융위는 최근 로보 어드바이저 규제를 일부 완화했지만 자본금이 40억원 이상인 법인만 할 수 있도록 최소 요건을 정해 놨다. 아무리 실력 있는 자산운용 전문가와 알고리즘 역량을 갖추고 있어도 초기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진입하기 힘든 것이다. 또 현재 대출·카드 모집인은 금융회사당 한 곳으로만 전속계약을 할 수 있는 규제가 있어 핀테크 기업이 여러 금융상품의 장단점을 비교해 추천·판매하는 서비스를 내놓을 수도 없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핀테크는 업종 간 경계를 허물어 혁신을 이루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은행·보험·카드사 등 업권별로 나눠 규제하는 체계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작년 핀테크 거래 3조 달러 … 2020년 5조 달러 될 듯
◆페이팔=1998년 미국에서 설립된 온라인 송금 전문회사다. 2000년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온라인 은행 엑스닷컴과 합병한 뒤 2002년 이베이 자회사로 편입해 2015년 분사했다. 전 세계 가입자는 2억 명 이상으로 미국 달러부터 태국 바트 등 총 23개 통화로 송금할 수 있다.
 
◆핀테크=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금융·IT 융합을 통한 서비스와 산업의 변화를 의미한다. 결제와 송금, 자산 관리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핀테크 거래 금액은 2조9000억 달러로 2020년에는 5조33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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