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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전차의 낭만? 꿈꾸던 리스본은 거기 없었다

기자
박재희 사진 박재희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3)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 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편집자>
 
첫 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 포르투갈 루트는 리스본의 대성당에서 시작된다. 지난 며칠 동안 수없이 오르내렸던 산타 주스타 골목과 바이후 알투 언덕을 지나고 미구엘에서 바라보던 테주 강을 뒤로했다. 이제 리스본을 떠나도 좋다는 확인 도장을 받은 것이다. 행복한 여행자는 등 뒤로 그리움을 남기는 법이라고 스스로 토닥이며 걸음을 옮겼다.
 
코르메시우스 광장에서 관광 열차 운영이 끝나고 나면 테주 강을 바라보곤 했다. [사진 박재희]

코르메시우스 광장에서 관광 열차 운영이 끝나고 나면 테주 강을 바라보곤 했다. [사진 박재희]

 
단 한 번의 기적 같은 여행. 꿈꾸던 삶을 살고 있느냐고 질문을 던졌던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의 원작인 책을 읽은 것이 시작이었다. 나도 모르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대한 조급증을 동반한 ‘리스본 앓이’를 하게 만든 것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난 동명의 영화를 몇 번이나 되감고 멈추며 돌려봤는지 모른다. 뇌가 가장 섹시한 신체 부위라고, 평소 사피오섹슈얼(Saphio Sexual)임을 자처하는 사람에게는 절대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함께 리스본을 헤맸다. 매일 매일 구글어스로 리스본을 찾아가는 버릇까지 생겼다. 아마데우의 집과 병원이 있던 바이후 알투 언덕을 오르고 모니터 속 아우구스타 대로를 더듬더듬 걸어볼 만큼 병이 깊어졌다. 리스본은 그렇게 내 가슴 속 열망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슴속의 열망을 따라 ‘우리가 떠나온 생의 특정한 장소로 갈 때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이 시작된다’는 책 속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오랫동안 나를 리스본으로 불렀다.
 
비록 리스본에 도착하고 스무 시간 만에 소매치기를 당해 알거지가 되었지만,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한 순간 세차게 뺨을 맞은 꼴이었지만, 내 눈에 낀 콩깍지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노란 겨자색 28번 전차는 리스본의 상징이자 모든 주요 관광지를 관통하는 교통수단이라 언제나 만원이고 대기 줄이 길다. 관광이 거의 끝날 무렵 저녁 시간을 이용해야 그나마 탑승이 용이하다. [사진 박재희]

노란 겨자색 28번 전차는 리스본의 상징이자 모든 주요 관광지를 관통하는 교통수단이라 언제나 만원이고 대기 줄이 길다. 관광이 거의 끝날 무렵 저녁 시간을 이용해야 그나마 탑승이 용이하다. [사진 박재희]

 
상상 속에서 노란 겨자색 28번 전차는 곡예를 하듯 알파마의 좁은 길을 빠져나갔다. 전차를 타고 손을 뻗어 좁은 골목을 만지는 상상을 얼마나 오래 해왔던가! 질리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전차에 올라 똑같이 그리고 매번 다른 모습에 탄성을 지르고 놀라며 즐거울 줄 알았는데, 불행히도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정거장마다 가이드북을 들고 길게 줄 선 각국의 관광객이 인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줄을 서기는커녕 그 무리를 헤치며 지나가기도 힘들었다. 매번 푸시맨이 필요할 지경으로 만원인 전차 타기는 솔직히 말하건대 즐기기 힘들었다. 여행지란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를 때가 많다. 광고주가 비용을 지불해서 여행하는 TV 속 여행자 연예인은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대화 따위를 즐기지만 현실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낭만의 28번 노란색 트램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필사적으로 관광객 무리를 피하고 전차 앞 자신의 모습을 남긴다. 절박하게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라피티는 리스본뿐 아니라 포르투갈 거리 예술의 하나다. 비어있는 벽이 없이 독특하고 자유로운 그라피티가 채워져 있다. [사진 박재희]

그라피티는 리스본뿐 아니라 포르투갈 거리 예술의 하나다. 비어있는 벽이 없이 독특하고 자유로운 그라피티가 채워져 있다. [사진 박재희]

 
1990년대 팝송 중에 ‘From a distance’라는 노래가 있었다. 멀리서 보면 세상에는 전쟁도 없고 나라도 없고 모두 평화롭게만 보인다는 가사였다. 그 당시 한창이던 걸프전 때문에 인상에 깊이 남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TV 프로그램에서 보는 드론으로 촬영한 여행지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연예인의 경험이란 실제 여행지에서 일어나기 거의 힘들다.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거의 다 연출된 가짜 환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사진은 나처럼 셀카봉을 든 관광객이 배경이 될 확률이 높고 TV에서 봤던 우연한 만남도 실제에서는 좀처럼 없다. 다르다. 불행히도 한마디로 리스본도 그랬다. 꿈꾸던 리스본은 없었다.
 
‘낮고 붉은 지붕의 일곱 개 언덕에 노을이라도 지는 시간이면 테주 강을 바라보며 공연히 눈물이 났다’고 말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일주일을 머문 리스본은 진짜 삶을 살아가는 사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관광객을 위한, 관광객에 의한, 관광객의 도시였다. 오랜 사랑에 배신당한 것처럼 뼈아픈 실망이었다.
 
작은 상점, 작은 술집, 작은 골목이 이어지는 리스본의 언덕에서 파두가 흐르고 사람들은 낭만에 젖는다. [사진 박재희]

작은 상점, 작은 술집, 작은 골목이 이어지는 리스본의 언덕에서 파두가 흐르고 사람들은 낭만에 젖는다. [사진 박재희]

 
완벽하게 멋진 교회 오빠를 오랫동안 흠모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는걸 알게 된 열다섯살 소녀의 심정이었다고 할까? 그 오빠가 그럴 리가 없다고 도리질을 하는 것처럼 리스본이 그럴 리가 없다고, 실망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찾아 매일 언덕을 오르고 강가에 나가고 파두(Fado)를 들었다.
 
포르투갈 음악 파두는 숙명이라는 뜻의 라틴어 ‘Fatum’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6세기 드넓은 대서양을 배로 건너야 했던 포르투갈 사람들이 품었던 그리움과 고난, 좌절과 숙명이었을 거다. 떠나간 이의 그것이 남미의 정서와 섞여 다시 19세기 이후 포르투갈로 돌아온 것에서 자랐다고 들었다.
 
파두의 그 여정 어디에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근원이 한 자락도 닿아있지 않다. 그런데 아주 한국의 어떤 주말 드라마에서 처음 들어 알게 된 그 울림이 잊히지 않고 되돌이표를 찍으니 별일이었다. 다행히 리스본에서 들은 파두는 그대로였다. 어딘가 이미자 선생의 트로트, 엔카의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파두만은 더는 리스본에 실망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당신과 함께면서도 난 당신이 그립다’ 그렇게 노래했던 시인이 있던가? 나야말로 리스본에 있으면서도 리스본이 그리웠다. 미련한 사랑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리스본의 서점에서는 오래된 책 향기보다 관광객의 향수 냄새가 강했지만, 파두가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알파마의 언덕은 취객과 소매치기 때문에 출동한 경찰이 눈에 띄게 많았지만, 그래도 리스본은 내 오랜 사랑이었다.
 
에그타르트라고 부르는 나타(nata)는 포르투갈이 원조다. 옛날 계란 흰자로 수도원 수도사들의 옷 주름을 잡고 남는 노른자를 이용하려다 생겨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사진 박재희]

에그타르트라고 부르는 나타(nata)는 포르투갈이 원조다. 옛날 계란 흰자로 수도원 수도사들의 옷 주름을 잡고 남는 노른자를 이용하려다 생겨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사진 박재희]

 
리스본의 영혼이라 부르는 페소아 동상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마치 거기서 나고 자란 그 동네 주민이라도 된 듯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무례하게 에그타르트라고 부르는 나타(nata)를 하루에 몇 개씩이나 먹으며 행복했고 나타가 고스란히 내 복부에 달라붙을 것이라는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을 만큼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그 리스본을 오늘 떠나는 것이다. 햇살과 음악, 사랑과 낭만, 뜻 모를 애잔함과 순박한 사람들이 있는, 주민보다 소매치기가 더 많다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곳으로 언젠가 다시 오리라고 되뇌어봤다. 마치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 연인을 떠나면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변심을 무마하는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지만 내 오랜 사랑은 아쉬웠다. 리스본은 빛이 바랜 그리움이 되어 등 뒤에 남을 것이다. 이제 리스본을 떠난다.
 
박재희 모모인컴퍼니 대표·『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저자 jaeheec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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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