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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이 남긴 추억, 그 어떤 명예·재산보다 소중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55)
인생이란 장거리 마라톤 경주란 말이 생각난다. 숨이 턱에 차도록 열심히 달렸어도 늘 어정쩡하던 인생살이…. 고갯길 비탈길 넘나들면서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리고 이젠 모든 걸 가볍게 하고 사방팔방 다 구경하며 쉬엄쉬엄 꼴찌로 걷고 있자니 달라고 부탁도 안 한 등수를 주기도 하는 인생이라는 친구가 얄밉다.
 
가끔 더오래 홈페이지 메인에 내 기사가 뜬다. 내 글이 이렇게 크게 실릴 때면 매번 신기하다. [사진 더오래 홈페이지 캡처]

가끔 더오래 홈페이지 메인에 내 기사가 뜬다. 내 글이 이렇게 크게 실릴 때면 매번 신기하다. [사진 더오래 홈페이지 캡처]

 
어느 날 내게 무대가 펼쳐졌다. 엉겁결에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인지라 그 무대 위에 올라가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시골 장터의 엿장수처럼 막춤 같은 글을 쓰고 있다.
 
중앙일보 더,오래에 ‘살다 보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겠더라(‘송미옥의 살다보면’)’는 이야기를 쓴지 50회가 넘었다. 언젠가는 나도 어느 유명 가수의 농담처럼 ‘그 노래가 내가 부른 노래인지 기억이 안 나요~’라는, 내가 쓴 글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너스레를 떠는 행복한 모습을 꿈꾸어 본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은 없지만 내겐 글을 쓴다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큰 수확이다.
 
내 글의 소재는 남편이 90%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나는 참 많은 교훈을 얻었다. ‘용띠 위에 개띠’라는 즐거운 연극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는 용띠와 개띠로 만났다. 어쩌면 저렇게 맞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가 너무 다른 생각과 현실 속에서 녹록지 않은 삶을 다듬어 나가며 그래도 나름 조화롭게 살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같이 살다간 남편에게 ‘참 잘 살았구나’라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더오래 기사 중 인기 많은 기사에 올라오기도 한다. 내 글이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게 신기해서 어떻게 순위를 매기는 건지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클릭수 등에 따라 자동으로 올라온다고 했다. 등수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을 때 찾아오는 순위는 얄궂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더오래 홈페이지 캡처]

더오래 기사 중 인기 많은 기사에 올라오기도 한다. 내 글이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게 신기해서 어떻게 순위를 매기는 건지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클릭수 등에 따라 자동으로 올라온다고 했다. 등수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을 때 찾아오는 순위는 얄궂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더오래 홈페이지 캡처]

 
사는 틈틈이 어느 한 가지 관점에 생각이 꽂히면 글로 쓰고 싶어져 낙서했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가족과 이웃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잘 못 한 부분이 많다. 어차피 가난하고 팍팍한 세상살이에 고개를 조금만 돌려서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소소한 이야기를 써보는 중이다.
 
내 글은 범위가 넓지 않다. 많이 배우지 못했으니 지식은 물론이고 좋은 언어도 구사하지 못한다. 그냥 옆집 사람과 하는 대화로 읽어주면 고맙겠다. 어수룩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화장 안 한 모습인 내 삶의 이야기 글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읽을 수 있게 공유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크게 성공한 인생이다.
 
나는 글쓰기의 기회가 주어지는 그 날까지 내가 가진 온갖 재산도 자랑할 것이다. 학력도 명예도 없고, 아파트도 현금도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마음 부자다. 내 글은 재벌이나 부자가 읽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보통사람이 마음 부자로 살아가는 이야기 글이다. 재테크 같은 재산을 불리려는 사람도 절대 읽지 말도록! 하하하.
 
부족하고 어설픈 글이라도 메일로 격려해주는 분들 덕분에 기가 산다. 아침에 짧은 묵상기도로 은혜를 갚을 뿐이다. [사진 송미옥]

부족하고 어설픈 글이라도 메일로 격려해주는 분들 덕분에 기가 산다. 아침에 짧은 묵상기도로 은혜를 갚을 뿐이다. [사진 송미옥]

 
살아보니 ‘그 사람 인생을 참 잘살았다’고 하는 말은 죽고 나서 얻을 수 있는 명예인 것 같다. 명예와 재산과 부를 넘치도록 축적해 살아있을 때 자기만족으로도 잘살았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종주에 가서는 여한이 없이 살다가 떠난 그 사람 이야기가 타인의 가슴에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명예와 재산보다 값진 것 같다. 그것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사람과 동물의 차이다. 종이 한장의 양면 같은.
 
어제는 이전에 살던 동네 분들이 방문해 남편과 함께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을 이야기하며 웃고 울다가 가셨다. 많은 사람의 기억보다는 내 가족, 내 주위에서만이라도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는 남편에게 성공한 삶이고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점수를 주고 싶다.
 
임꺽정의 후예라던 거친 사나이의 늠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평생 가족을 위해 마당쇠같이 살면서도 사는 동안 모자란 마누라에게 늘 백기를 흔들던 남편의 모습, 그래서 내가 늘 잘나고 이긴 줄 알았던 삶이었는데 요즘은 혼자서 날마다 백기를 들며 반성한다. “그건 이긴 게 이긴 게 아니었어”라는 노랫말처럼 말이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50회를 넘어가면서 중년이 된 우리가 함께 행복을 나눌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격려해주는 독자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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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