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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북제재 풀어서 비핵화 촉진” 미국과 마찰 반복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가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무부 영빈관에서 회담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가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무부 영빈관에서 회담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제재를 둘러싼 한·미 간 입장 차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이번엔 남북이 합의한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을 놓고서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철도협력 등을 포함해 남북 교류사업은 대북제재의 틀을 준수한다는 원칙하에 추진되고 있고, 미국 등과 긴밀히 협의해 왔으며 앞으로도 협의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 문제를 놓고 벌써 여러 차례, 여러 층에서 한·미 간 협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전에 긴밀하게 협의한 것치고는 국무부의 반응이 냉정했다. 국무부 대변인실은 15일(현지시간) 남북 고위급회담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제재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답을 내놨다. 특히 국무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의해 금지된 분야별 제품을 포함해’라고 굳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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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안보리 대북 결의에서 규정한 분야별 제재(sectoral ban)를 뜻한다. 분야별 제재는 특정 제품군에 대해 통째로 북한으로의 반출을 금지한 제재다. 여기엔 철도용이나 궤도용 기관차·차량 및 부품, 기계류·전기기기 등이 해당하는데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 사업에 투입될 수 있는 자재·물자들이다. 분야별 제재에는 석유·경유 등 정유 제품도 있는데 연간 50만 배럴 이상은 북한에 공급할 수 없도록 상한선을 뒀다. 국무부가 ‘분야별 제재’라고 콕 짚어 답한 것은 남북 간 철도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런 금수 물자들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착공식과 관련해선 안보리에 포괄적인 제재 면제를 신청해 제재 위반 논란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면제 신청은 남북이 착공식 일정을 발표하기에 앞서 미국과 조율이 끝났어야 하는 조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은 지난 8월 말에도 경의선 철도 공동조사를 추진하다 유엔군사령부가 경유 반출을 불허해 무산됐는데, 이번에도 유엔사와 사전에 관련 협의가 완전히 마무리된 게 아니라고 한다.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과 관련한 한국의 발표와 뒤이은 미국의 불편한 입장 노출은 최근 한·미 관계에서 반복되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달 17일 남북 군사합의서를 보고받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해 사전 조율 부족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강 장관의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리 승인 없이는 안 한다”며 거부감을 보였던 게 불과 엿새 전인 지난 10일(현지시간)이다.
 
국무부는 남북 고위급회담에 대해 ‘대북제재를 지키자’는 취지로 국제사회에 알렸는데 정부는 16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한 달을 기념해 언론 브리핑을 하며 남북 협력의 순항을 알렸다. 그런데 개성 연락사무소는 개소에 앞서 경유 등이 공급된 것을 놓고 미 행정부가 대북제재 위반을 우려했던 곳이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미국은 동맹 관리를 위해 이견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데 자꾸 밖으로 나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며 “미국과 공조해야 우리에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힘과 방법이 생기기 때문에 한·미 공조가 안 되면 한국으로선 이로울 게 전혀 없다”고 우려했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문제에서 결과적으로 ‘남·북·중·러 대 미국’의 구도로 비치는 듯한 조짐”이라며 “특히 제재 문제에서 한·미가 북한을 어르고 달래는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엇박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 [AP=연합뉴스]

트럼프. [AP=연합뉴스]

미국은 대북제재 전선의 약화를 막기 위한 행보에도 나섰다. 국무부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6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시작으로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해 실무급 회담을 하기 위해 출국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향한 노력으로 동맹국·파트너들과 만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해외를 방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무부는 비건 대표가 유럽 방문 중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등 북측 인사를 만날 계획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북·미 간 의견 차로 실무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미국은 협상력 강화를 위해 제재 단속부터 나선 셈이다.  
 
비건의 동선도 묘하다. 모스크바는 최선희 부상이 지난 9일 북·중·러 차관회담을 갖고 대북제재 완화를 논의한 곳이라 러시아에 제재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알리는 ‘맞불’ 방러 성격이 강하다. 공교롭게도 파리·브뤼셀은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지다. 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며 협력을 구했다.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자칫하면 한국 대통령이 간 길을 미국 비핵화 실무협상 대표가 밟으며 한·미 간 온도 차를 노출했다는 관측을 야기할 수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구체적 공약을 이행할 때까지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국빈 만찬 만찬사에서는 “안보리 결의를 전적으로 준수하는 기저 위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전직 외교관은 “정상회담 관련 공식 발표 내용은 부사, 형용사 하나까지 모든 디테일을 양국이 사전에 조율한다. 그런데 마크롱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문 대통령 제안에 사실상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 것은 이례적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대북제재 완화를 거론하는 데 대해 프랑스 측의 부담감이 컸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상임이사국으로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표현에는 한계가 있다. 분명한 것은 문 대통령이 전날 회담 결과에 대해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꼭 제재 일부 해제 요구라기보다는 안보리 차원에서 북한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비핵화를 돕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으니 프랑스도 함께 고민해 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유지혜·이근평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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