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함께하는 세상] “깨끗한 물 보고 좋아하던 케냐 아이들 눈 아직도 선해”

20년 넘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아동 후원을 하고 있는 최불암(78)씨가 나눔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20년 넘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아동 후원을 하고 있는 최불암(78)씨가 나눔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로 호흡을 맞춘 탤런트 최불암(78)씨와 고두심(67)씨는 15일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30년 이상 아동 후원을했다. 최씨는 현재 재단 후원회장, 고씨는 나눔대사를 맡고 있다. 창립 기념식이 열린 세종문화회관에서 두 사람을 만나 나눔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재단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최불암=드라마 전원일기 덕분이다. 에피소드 중 금동이라는 아이를 입양하는 내용이 있었다. 농약을 사러 가는 길에 약장수 손에 이끌려 노래하는 아이를 한 명 본다. 가정불화로 내쳐진 아이였다. 그 아이를 집에 데려와서 밥 먹이고 옷 입히고 결국 입양을 한다. 다른 데서 낳은 자식을 데려왔다는 소문까지 났지만 아이를 품는다. 극 중에서 김 회장이 잘한 일인데 나에게 팬레터가 쏟아졌다. 이를 계기로 ‘진짜 어린이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침 재단에서 서울시 후원회장직을 제안해 왔다.

고두심=최 선배가 후원회장이 된 후 전원일기 출연진 모두에게 후원을 권유했다. 그 인연이 30년 넘게 이어졌다.
 
후원 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은.
=2015년 아프리카 케냐에 갔다. 그곳에서 보니 아이들이 누런 흙탕물을 먹고 있더라. ‘아프리카에는 하느님이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늘이 돼주고 싶었다. 깨끗한 수돗물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 눈을 잊을 수 없다.

=아프리카에서 수로 사업을 했을 땐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온 것처럼 기뻐하더라. 2010년 동티모르도 기억에 남는다. 남편이 죽고 아이 3명과 함께 사는 엄마가 있었다. 소금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한 자루 팔아야 먹고 사는 집이었다. 재산은 닭 두 마리가 전부였다. 헤어질 때 아이 한 명이 선물이라며 닭 한 마리를 내밀더라. 눈물이 안 날 수가 없더라.
 
20년 넘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아동 후원을 하고 있는 고두심(67)씨가 나눔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20년 넘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아동 후원을 하고 있는 고두심(67)씨가 나눔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련기사
앞으로 바라는 아동 후원의 방향은
=이제 배고픈 아이만 후원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 나눔도 이뤄져야 한다. 기본적 부분을 넘어 문화 혜택을 누리고 사회에 대해 고민할 기회도 줄 수 있길 바란다.

=‘돈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아이들에게 문화를 주고 싶다. 가난한 아이들이 문화생활을 하면 사치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인간미를 찾을 기회도 줘야 한다.
 
나눔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집에 가면 후원 아동 사진이 걸려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이 먼저 ‘만나보고 싶다’ 얘기를 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잊고 있는데 “아빠 선물 샀어?”라고 묻는다. 가족과 함께 주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받은 게 더 크다. 은혜를 받지 않고 큰 어른은 없다.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 해외에서 온 구호 물품으로 밥을 먹고 옷을 입었다. 이를 돌려주고 싶다는 책임감이 크다.

=박수갈채를 받는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그걸 보답해야 한다. 나눔을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고민이 길어지면 내 삶이 팍팍해진다. 나눔이 부담스러우면 잠시 멈춰도 된다. 돈 내라고 독촉받을 일 없다. 행동하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기쁨이 분명히 있다.
 
아쉬움이 남는 후원 활동이 있다면.
=2007년 북한 아동에게 빵 급식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었다. 평양에 매일 1만 개의 빵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을 짓는 일이었다. 정치적 문제로 사업이 중단됐는데 기회가 되면 이를 다시 추진하고 싶다.

=아프리카까지 날아가는데 북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한달음에 가고 싶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