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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대학 축제 VIP 된 예순살 김연자

강주안 사회에디터

강주안 사회에디터

축제 시즌을 맞아 대학 교정에 모처럼 활기가 돈다. 20세기 대학 축제의 여흥을 민중가요가 도맡았다면 요즘엔 아이돌 그룹과 톱 가수 몫이다. 이 젊음의 경연장에서 뜻밖의 주인공으로 가수 김연자(59)씨가 뜨고 있다. 45년 경력의 트로트 여왕에게 대학의 러브 콜이 몰리는 현상이 신기해 지난주 그가 사는 서울 은평뉴타운 인근의 카페로 찾아갔다. 한 시간 남짓 얘기하는 동안 그를 청춘스타로 등극시킨 노래 ‘아모르파티’의 현란한 간주가 계속 대화를 방해했다. 동석한 기획사 대표의 휴대전화 벨소리다. 대부분 행사에 와달라는 전화였고, 그중엔 대학도 있었다. 그가 캠퍼스 VIP라는 사실은 금세 확인됐다.

 
김씨는 올봄 부산대학교 축제에서 학생들의 환호 속에 ‘아모르파티’를 부르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지진을 일으킨 이후 초대 요청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정신이 없다고 했다. 스케줄이 꽉 차 정작 대학은 몇 곳 못 간다며 미안해한다. 김씨는 2013년 발표한 이 노래가 ‘역주행’(오래전 발매한 노래가 한참 뒤 음원 차트 상위에 오르는 현상)한 이유로 자신의 가창력 대신 가사를 꼽았다. “젊은 친구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노랫말이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봄에 이어 가을 축제에 연거푸 김씨를 초청한 부산대 총학생회 측도 “가사에 담긴 위로가 학생들에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기성세대와 눈만 마주쳐도 표정이 굳는 청년들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다는 가사 내용을 뜯어봤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대학생들이 신나게 따라부르는 대목이다. 혼인을 둘러싼 온갖 모순엔 귀를 닫고서 저출산 걱정을 늘어놓는 부모 세대는 반감만 키워왔다. 가임기 여성의 숫자를 그래픽에 담아 ‘대한민국 출산지도’로 그린 지난 정부의 감수성은 또 어떤가. 고학력 여성과 저학력 남성을 맺어주면 된다는 국책연구소의 창의적 보고서는 말을 잃게 했다. 정부에 연타를 맞은 청년들이 들고나온 플래카드 문구는 이랬다. ‘정부야 네가 아무리 나대봐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랑 살지.’

 
결혼은 선택이라는 가사에 터지는 박수는 배필이 없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 받는 분위기 속에 살아가는 청춘들의 눈물겨운 환호다.

 
#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김연자는 원래 이 노래에 자신의 인생을 담고자 했다. 가제목은 ‘연자 송’이었다. 파란만장한 가수의 일생을 표현하려고 쓴 묘사가 아랫세대에 꽂혔다. 나이 노이로제는 중년 이후에 찾아오는 병이었지만 요즘 학생들은 ‘적령기’의 압박을 받고 있다. 직장을 잡는 것도, 가정을 꾸리는 일에도 적정 나이가 있다는 고정관념이 그들을 옥죈다. 올 추석 SNS에서 ‘잔소리 메뉴판’이 퍼졌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으면 15만원, 취업 얘기를 꺼내면 20만원씩 내라는 차림표가 공감을 얻었다.

 
#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영국의 디즈레일리를 비롯해 많은 사상가들이 ‘실수는 젊음의 특권’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한 번만 삐끗하면 회복할 수 없는 사회가 돼버렸다. 모든 걸 잘하는 청년조차 취업을 못한다. 온갖 스펙으로 중무장하고 출격 대기한 취업준비생에게 정부가 던져준 건 몇 개월짜리 ‘단기 알바’다. 그나마 바늘구멍이다. 일자리가 없어 의기소침한 청춘에게 현재의 암울이 그들 탓은 아니라고 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어찌 보면 이 가사는, 남북관계를 빼면 경제·사회통합·고용 어느 하나 칭찬을 못 듣는 현 정부 주역들에게 더 힐링을 선사할 것 같다.

 
‘아모르파티’ 의 성공을 말할 때 간과하기 쉬운 부분은 디테일이다. 단지 메시지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곡을 만든 사람이 ‘겨울이야기(DJ DOC)’ ‘애인 있어요(이은미)’ 같은 가요로 보증수표 대접을 받는 윤일상 작곡가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트로트에 신세대 취향의 전자댄스뮤직(EDM)을 접목해 역주행 발판을 깔았다. 노랫말은 ‘종이학(전영록)’과 ‘사랑은 아무나 하나(태진아)’로 세대를 넘나든 이건우 작사가가 썼다. 하마터면 ‘연자 송’이 될 뻔한 노래에 ‘운명을 사랑하라(독일 철학자 니체)’는 뜻의 ‘아모르파티(amor fati)’라는 제목을 달아준 사람은 신철 프로듀서다. 검증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조립한 작품이다. 그 정점에 김연자가 있다. 이건우씨는 “다른 가수가 불렀다면 이런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며 “김씨의 인생 경험과 노련한 창법이 녹아들었기에 가사의 메시지가 마음을 파고든다”고 분석한다. 20대에게 어필하겠다는 의욕만으로 달려들어선 어림없다는 얘기다.

 
청년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작정한 사람이라면, 정부든 민간이든 최소한 두 가지는 살펴보길 권한다. 그들이 하려는 일이 아모르파티에 담긴 메시지와 부합하는지, 그리고 아모르파티를 빚어낸 콜라보처럼 검증된 전문성으로 무장돼있는지. 만약 이 요건에 맞지 않는다면 그 정책은 젊은이들에게 또 하나의 상처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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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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