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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가난한 시절의 향연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아마, 저를 잘 모르실 겁니다. 하지만 아실지도 몰라요. 옛날에 유엔군총사령부(VUNC) 방송 애청자였다는 걸 선생 글을 통해서 읽었습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수소문, 수소문해서 전화번호를 알아냈어요.” 그 목소리는 나를 50여년 전으로 불러냈다.
 
1960년대, 음악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의 음향기기라고는 라디오가 전부였다. 진공관 라디오도 귀해서 당시에 개발된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보급되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이 라디오는 저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음악 방송 자체도 드물었다. 방송국이 서너 개에 불과했고 그나마 클래식을 정규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기독교 방송국의 30분짜리 프로그램 정도였다.
 
이런 형편이었으니 밤 열시부터 두 시간 동안 고전 명곡을 방송하는 VUNC의 ‘음악의 향연’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형제들의 잠에 방해가 될까 봐 작게 볼륨을 줄여 라디오를 귀에 대고 들었다. 이불을 쓰고 듣기도 했다. 다행히 바로 윗형도 음악을 좋아해서 때로 같이 들었다. 시간을 맞춰 라디오를 틀면 브람스의 교향곡 4번 3악장의 서두가 시그널로 나왔다. 음악이 깔리면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음악의 향연입니다. 오늘은…”하고 안내가 시작되었는데 전화에 들렸던 것이 바로 그 목소리였다.
 
거의 매일 그 방송을 듣다 보니 수십 일 만에 같은 음악이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문에 실망하기는커녕 형과 나는 그 음악의 순서를 노트에 적어놓고 오늘 어떤 곡이 방송된다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는 좋아하는 곡이 나오는 날 놓치지 않고 듣곤 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1번, 5번,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하챠투리안과 프로코피에프의 관현악곡, 그리고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주소를 물은 그는 얼마 후 책을 보내왔다. 일제 강점기와 6·25동란의 기억, 초창기 방송인으로서의 체험, 일본 체류, 미국 이민 등 그의 삶을 회고한 자서전이었다. 이름은 위진록. ‘음악의 향연’의 아나운서이자 선곡과 해설을 맡은 PD 겸 작가이기도 했다. 이 방송이 실은 오키나와에서 송출되었다는 사실을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그래서였던가 그 방송에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거리감이 있었다. 나의 형성기를 키운 자양분 중 하나가 그 먼 곳에서 보내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의 반가움도 ‘누군가에게 도달하리라는 믿음 하나로 허공에 뿌렸던 씨가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싹이 텄다는 것을 확인할 때의 기쁨’이었으리라.
 
그의 전화를 받은 즈음에, 후배 한 사람이 새로운 차를 구입한다면서 음향기기 얘기를 했다. “요즘 차에는 CD 플레이어를 안 단대요. 훨씬 더 비싼 차를 사야만 그것이 포함된다네요.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에요.” 음악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대니 그중에서 자신이 듣고자 하는 음악을 찾는 것조차 힘들다. 시간을 낭비할 수 없으니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골라 파일로 듣는다. CD는 거추장스럽다. 축음기-SP-LP-CD로 한 세기 이상 이어져 온 음반의 시대가 이제 끝나가는 것이다.
 
나는 아직 CD가 편하다. 디지털시대에 나의 생각과 행동의 방식은 아날로그다. 집에는 뜯지 않은 CD가 수북이 쌓여있다. 대개는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만든 음악가들의 녹음이다. 광대한 디지털의 바다에서는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미미해 흔적도 없으므로 이렇게 아날로그 방식으로나마 자취를 남기는 것이리라.
 
나는 그분에게 답장을 썼다. “나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존재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해 내가 형성되었음을 압니다. 선생님이 송출하신 그 방송도 그중 하나였지요. 가난한 시대였습니다만 제가 성장하는 데에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성장한 결과가 저라고 해야 맞겠지요. 가난했으나 대신 우리가 가진 것은 소중했습니다. 이불 속에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작은 볼륨으로 들으며 저는 행복했습니다.”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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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