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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미 시장경제 맛 봐 … 공식시장만 460개 넘었다”

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중앙포토]

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중앙포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사망 이틀 전인 2011년 12월 15일 평양 광복거리에 새로 건설된 슈퍼마켓(광복지구상업중심)을 찾았다. 생애 마지막 현지지도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시장은 점차 없애야 한다”며“이런 상업망들에 상품을 가득 쌓아놓고 인민들에게 팔아주면 시장을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마당과 같은 비공식 시장을 줄여다 한다는 취지였다.
 
7년이 지난 2018년 북한에선 오히려 시장이 확산일로다. 주민들은 시장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고, 국가는 시장을 합법화하고 있다. 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이를 “경제의 성장이 이뤄지는 동시에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금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화여대 교수(휴직)인 지냈던 조 원장은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북한경제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북한이 시장경제로 가고 있다고 보나
“북한 경제의 화두는 시장경제의 확산이다. 공식 시장만 460개가 넘는다. 소위 장마당이라 불리는 간이시장이나 메뚜기 시장까지 더하면 공식시장의 몇 배에 이른다. 국가는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영업시간을 정해 자릿세를 받는 등 아예 합법화하고 있다. 시장이 커지다 보니 ‘돈주’라 불리는 자본가가 생겼고, 주민들도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변동에 적응해가고 있다. 경제 상황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고 있고, 중앙집권적인 전통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스템은 점차 무너지고 있다.”
시장화는 사회주의와는 배치되지 않나
“굳이 따지자면 (시장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활용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통제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커지는 시장을 활용해서 국영 부분도 같이 성장하는 전략이다. 지금은 국영공장이나 기업도 원자재를 시장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생산한 상품도 시장에서 시장가격으로 팔지 않나. 이제는 시장이 저렇게 커졌고, (주민들도) 시장의 맛을 들였기 때문에 개방경제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개혁ㆍ개방으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개방을 통한 경제 성장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고 봐야 한다.”
경제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나.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경제성장은 아웃풋(outputㆍ생산량)이 늘어나는 과정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분명 아웃풋은 늘었다. 아웃풋을 늘리려면 인풋(input, 투입)을 늘리거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내부 자원이 고갈된 북한에서 현재까지는 생산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2014년)‘5ㆍ30조치’(기업ㆍ농장의 자율성 확대 정책)라 불리는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대표적이다.”
경제특구를 늘린 것도 같은 맥락인가.  
“투입을 늘리지 않고 생산성 자극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김 위원장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 20여개의 경제특구를 만들었다. 해외에서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할아버지(김일성 주석)가 1개, 아버지(김정일 위원장)가 3개의 특구를 만든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대폭 강화하면서 자본 유치가 여의치 않다.” 
대북제재의 효과가 있는가.  
“돈을 벌어야 필요한 원자재를 사오는데 북한의 주요 돈벌이인 철광석, 무연탄, 의류 가공품이 모두 수출 금지됐다. 최고지도층을 제재하는 표적 제재를 했음에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을 지속하니 봉쇄와 같은 제재를 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태가 장기화한다면 효과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않나.”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선택을 할 것으로 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지도자의 가장 커다란 관심은 어떻게 하면 내 권력을 최대한 오래, 최대한 안정적으로 가져가느냐다. 외부적으론 내 체제와 정권을 보장받고, 내부에선 정치와 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집권 직후 정치권력 다지기에 집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과제는 대외 관계 및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통한 주민들로부터의 지지 확보다. 이를 위해선 외부 자본이 들어와야 하고, 외부 자본이 들어오려면 제재 국면이 풀려야 한다. 최근 비핵화를 들고 협상에 나선 건 대북 제재를 풀고, 체제안전 보장을 받으려는 시도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식이건 베트남 식이건 북한식이건 나름의 개방과 외부 자본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 아니겠나.”  
이 시점에서 한국의 역할은.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대북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국제 사회의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남한의 자본ㆍ기술과 북한의 노동ㆍ토지ㆍ자원을 결합하면 윈-윈 할 수 있다는 전망들이 있다. 하지만 자본과 기술은 한국이 비교우위가 될 수 없다. 한국보다 많은 자본을 가진 나라들도 많다. 자본을 어디서 가져오건 북한이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그러러면 우리의 발전 경험을 전수해 줘야 한다. 한국은 역사상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있었나.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그 형식은 북한이 정할 것이다. 대신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해 우리만큼 잘 아는 나라가 있겠나. 한국의 진정한 비교우위는 자본과 기술이 아니라 개발경험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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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