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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슬픈 진화

슬픈 진화
-최승호(1954~ )
 
시아침 10/15

시아침 10/15

상아 없이 태어나
어린 코끼리는
아무 쓸모 없는 가죽나무처럼
걸어가야 한다
 
커다란 귀 너펄거리는 할머니 코끼리를 따라
 
밀렵꾼이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아프리카
긴 가뭄 속으로
 
아무 쓸모 없는 가죽나무처럼
걸어가야 한다
상아 없이 태어나
 
 

장자의 가죽나무는 목재로는 쓸모가 없어 크게 자라 오래 산다. 쓸모 없음 속에 깃든 큰 쓸모의 비유물이다. 코끼리 엄니인 상아는 터무니없이 크게 자라 인간의 표적이 된다. 상아 없는 어린 코끼리는 무용한 가죽나무처럼 오래 살아갈 것 같지만…. 그런 코끼리는 없다. 없던 엄니가 쓸모 있게, 슬프게 생겨난다. 그게 다 자라길 기다리는 총구들이 사바나의 흙먼지 속에서 번뜩일 때.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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