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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저유소 근무의 추억

염태정 내셔널 팀장

염태정 내셔널 팀장

금속추가 달린 줄자, 기름이 닿으면 색이 변하는 약품 등이 담긴 측정 장비를 어깨에 메고 10m 높이의 기름탱크에 올라갔다. 기름양을 재기 위해 탱크 뚜껑을 여는 순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측정값을 적고 다시 내려와 다음 탱크로 이동한다. 그렇게 20여 개 탱크의 기름양을 재고 나면 하루가 지나갔다.
 
경기도 고양시 기름탱크 화재는 29년 전 경북 포항에서의 군대생활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했다. 지금은 없어졌는데, 당시 포항시 두호동엔 캠프 리비로 불린 미군 유류 보급 부대가 있었다. 거기서 보급병으로 일했다. 부대엔 자체 소방대도 있었는데 정기적으로 화재 대비 훈련을 했다. 저유소 내에선 라이터나 성냥 같은 건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때론 저유소 시설과 근무엔 문제가 없는지, 불필요한 화기가 있는지 본부에서 불시에 점검했다.
 
고양 저유소 화재를 두고 누군가 로또 두 번 맞을 확률이라고 했다. 스리랑카인이 호기심에 풍등을 날린다. 그게 바람을 타고 저유소 쪽으로 날아간다. 바닥에 떨어져 마른 잔디에 불이 옮겨붙는다. 그걸 아무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불길이 유증기 환기구 쪽으로 갔다. 환기구의 인화방지망은 불길을 막지 못한다. 그리고 폭발한다. 폭발로 탱크 뚜껑이 날아가면서 소화액이 나오는 방향을 엉뚱한 쪽으로 바꿔버렸다. 이후 17시간 동안 탔다. 이런 우연에 우연이 겹쳐 난 불이라니 황당할 뿐이다.
 
국가안전대진단이란 이름으로 전국 주요 시설의 안전 실태를 점검한 게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화재안전특별대책’ 발표도 있었다. 충북 제천 복합상가 화재,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같은 대형 참사가 잇따른 후였다. 하지만 안전관리는 여전히 허술하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 말 현재 화재경계지구로 지정된 전국 121개 지구 가운데 88개소(73%)는 시장 지역에 집중돼 있다. 화재에 민감한 저유소는 하나도 없다. 시설물을 안전하게 유지·관리하는 인력과 기술도 부족하다. 한국과 미국의 시설물 관리 관련 기술 격차는 2012년 4.3년에서 2017년 6.8년으로 오히려 늘었다(국회입법조사처, ‘국가 주요 시설물 안전점검 현황 및 향후 과제’, 2018).
 
이번 화재가 진짜 우연의 연속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화재 원인·확산 과정은 물론 저유소 건설 과정에 비리나 설계 잘못은 없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흙이나 시멘트, 잘게 부순 돌이 있어야 할 기름탱크 주변에 잔디가 깔린 것부터 문제다. 6명의 근무자가 연기 나는 걸 18분 동안이나 몰랐다는데, 왜 그랬는지도 세밀히 조사해야 한다. 감시한다는 비난이 나오더라도 주요 시설엔 근무점검을 위한 폐쇄회로 TV(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염태정 내셔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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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