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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의 퍼스펙티브] 북한은 트럼프가 호의적일 때 비핵화 나서야

비핵화 협상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4차 방북을 하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월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취소시켰던 방문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짧은 체류 시간의 대부분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예방과 오찬에 썼다. 상대역 김영철과의 회담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의 방북 성과는 비핵화 진전보다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실무 협상 추진을 합의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시적인 비핵화 성과는 향후 실무 협상 결과를 보아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이로써 교착 상태에 있던 비핵화 협상이 복원되었다.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면 향후 협상을 낙관해도 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회담이 이어지는 모양새는 좋지만 실질 내용을 중심으로 보면 꼭 그렇지 않다. 그간 남북 평양 정상회담이 있었고, 이어서 한·미 뉴욕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북·미 대화가 재개되었다. 폼페이오 장관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뉴욕에서 마주 앉았다. 이후 폼페이오의 방북이 이어졌다. 이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실무 협상이 예상된다. 모든 것이 좋은 모양새이다. 그 배경에는 한국의 역할이 있었다.
 
북·미, 종전선언 시각차 커
 
2차 북·미 정상회담 성공하려면

2차 북·미 정상회담 성공하려면

그러나 실질 내용을 중심으로 보면 폼페이오 방북 전까지 목격된 북·미 간 공방은 심상치 않았다. 그간 북한은 핵 신고를 하면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에 불응해 왔다. 이용호가 유엔총회 기간에 발신한 메시지도 일관되게 경직된 것이었다. 미국 쪽에서는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호의적인 메시지도 있었으나, 다른 한편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제재 유지를 강조하고 독자 제재를 추가하였다. 급기야 북한은 폼페이오 방북 직전 논평을 통해 종전선언이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며 비핵화 조치와 바꿀 흥정물은 더욱 아니라고 밝혔다. 종전선언 대신 핵 신고를 하라는 요구를 분명히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폼페이오 방북이니, 당장 비핵화 성과를 못 냈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북·미 간 공방의 배경에는 싱가포르 회담 결과와 그 이후 상황에 대한 상이한 인식이 존재한다. 북한은 싱가포르에서 북한의 의도대로 ‘관계 개선이 평화 번영에 기여하고 신뢰 구축이 비핵화를 증진한다’는 합의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래서 관계 개선과 신뢰 구축을 하면서 비핵화에 접근하자고 주장한다.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상황도 북한에 유리하며, 미국은 몰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제재 이행이 느슨해지는 기류가 있고, 중·러가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중·러와 북한이 3자 북핵 협의를 하는 초유의 일도 생겼다. 덧붙여 북한은 트럼프가 김정은에 대해 가진 호의도 호재로 보고 있다. 트럼프를 활용해 미국 내 강성 기류를 제어하려고 한다.
 
싱가포르 합의 놓고 트럼프와 관료 이견
 
이러한 상황 인식에 따라 북한은 자기식 비핵화 접근을 밀어붙이고 있다. 바둑으로 치면 초반 포석의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자세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혼란스럽다. 트럼프의 시각과 이를 만류하고 보완하려는 관료의 시각이 병존한다. 트럼프는 싱가포르 회담 성과를 자랑하나, 관료는 문제점을 알고, 싱가포르 합의를 미국의 이해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있다. 관료 대부분이 강성이다.
 
이처럼 미국 정부 내에 상이한 견해가 혼재하나, 큰 줄거리는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으니 이의 이행을 요구한다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제재는 견지하기로 정해졌다. 대체로 미국은 힘을 바탕으로 초반 포석의 열세를 만회하려는 자세이다.
 
이상이 협상의 배경에 작동하는 북·미 양측 동력의 실상이다. 이것이 방치되고는 협상의 장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그러니 어렵사리 협상이 복원된 이번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문제의식하에 몇 가지 유의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 관련 사항이다. 우선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 성공 이래 자기 식 접근에 대한 확신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이 성공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트럼프는 개인적 호의로 그러한 합의에 서명했겠지만, 미국이 북한식 접근에 응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으로서는 트럼프의 호의가 소진되기 전에 비핵화의 진전에 나서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래야 북한이 원하는 북·미 관계 개선과 북·미 신뢰 구축, 남북 협력도 진전된다.
 
자칫하면 모처럼의 협상 기회가 사라진다. 트럼프가 호의를 접는 순간 미국 정치권은 강경으로 선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양국 정상이 직접 해온 협상이 잘못되는 셈이니 역풍이 없을 수 없다. 이것이 톱다운 방식의 리스크다. 그러므로 북한이 자기 식 접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비핵화의 길에 나서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이 작업에 역할을 해야 한다.
 
한·미, 긴밀히 대북 협상 조율해야
 
둘째, 미국 관련 사항이다. 우선 미국은 더는 북한에 성공 카드를 쥐여주지 않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그냥 환영하기에는 일말의 우려가 있다. 다시 싱가포르식이 되면 문제는 어려워진다. 그러면 또 정상회담을 하여 동력을 주입해야 하느냐는 딜레마에 직면할 것인데, 미국이 정상회담을 마냥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2차 회담에서 비핵화의 구체적 성과를 확보해야 한다.
 
또 트럼프와 관료가 서로 다른 강온 메시지를 내놓는 일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북한이 자기 편의로 상황을 인식하게 하는 잘못된 신호가 된다. 내부적으로 조율된 일관된 정책이 나와야 하고 그것이 유연한 방향이면 더욱 좋다.
 
셋째, 한·미 관련 사항이다. 한·미는 협상 전략 논의를 더 긴밀히 하고 협상 장애 요소에 민첩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의 핵심 국익을 미국이 협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장애는 종전선언이다. 미국은 종전선언을 하려면 핵 신고를 하라 하고, 북한은 공개 거부하였다. 한국은 핵 신고 대신 영변 핵시설 폐쇄를 요구하자는 안을 내놨다. 교착 상태를 풀 우회로인 셈이다. 그러나 북한이 종전선언은 흥정물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면 일은 여전히 안 풀린다.
 
종전선언, 협상 걸림돌 되지 않게 해야
 
종전선언은 협상 소재의 하나일 뿐인데, 비핵화가 여기에 걸려 공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언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생산적 논의를 위해 먼저 그동안의 경위를 냉정하게 돌아보자.
 
북한의 입장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으나, 북한이 공개 거부를 한 데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10년 전 제기 되었을 때부터 최근까지, 북한의 조치를 전제로 하는 제안이 아니었다. 옳든 그르든 제안의 취지는 종전선언을 통해 비핵화나 협력을 진전시킬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모두에게 유익한 공공재처럼 조건 없이 제기된 것이었다. 그래서 10·4 남북정상선언이나 4·27 판문점선언에도 조건부가 아닌 표현으로 적혔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호응하면서도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미국 정치권은 내내 소극적이었고 올해 들어서도 유사하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예외였다. 그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하였다.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 이래 아주 적극적이 되었다.
 
종전선언을 달가워하지 않던 미국의 관료들은 트럼프가 긍정적으로 나오니 안 할 수는 없다고 보고, 이를 핵 신고 조건부로 변형하여 북한에 제시하였다.
 
한국은 미국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를 우려하다가 미국이 종전선언 추진으로 선회한 데 안도한 나머지, 조건부로의 변형에는 괘념치 않은 듯하다. 그때 일이 크게 휘었는데도 말이다.
 
대북 강경파 미 관료들과도 교감해야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의 접근이 무조건적인 추진 방안보다 전술적으로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무조건이었던 제안이 갑자기 조건부가 되니 반대하는 것이다. 이제 북한은 미국이 종전을 바라지 않는다면 북한도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경위가 이러니 북한이 조건부에 동의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대로 두면 협상은 거기서 정체한다. 그러므로 종전선언의 대상물을 바꾸자는 한국의 제안은 물론, 종전선언을 일단 미루고 다른 카드를 중심으로 협상을 끌고 가는 방안, 종전선언의 내용을 희석해 조건 없이 추진하는 방안까지도 고려했으면 한다.
 
넷째, 한국 관련 사항이다. 우선 한국은 앞에 제시한 유의점을 중심으로 대북·대미 협의를 하여 만류도 하고 설득도 해야 한다. 또 미국과의 조율에 더 신경을 쓰기 바란다. 특히 미국의 정책 중심이 하나가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미국에는 트럼프의 관점이 있고 관료의 관점이 있다. 우리는 트럼프에 의존해 왔다. 트럼프 이외의 정책 중심과 교감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 미국의 정책은 이 두 그룹 간의 논의를 거쳐 형성되기 때문이다. 좋은 사례가 종전선언 제안의 변형이다. 그처럼 일이 적절한 시기에 조율되지 않으면 나중에 커진다.
 
북핵 문제처럼 관련국들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있고 꼬일 대로 꼬인 현안 협상은 정상이 나서서 주도한다 해도 마냥 순탄할 순 없다. 일은 어딘가에서 반드시 틀어진다. 운명의 여신은 징조를 미리 포착하고 파국을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을 할 때 기회의 손을 내밀 것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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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