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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순응의 병리|김상철<변호사>

새벽 등산로에 어디선가 날아든 붉은 색 전단들이 있었다.

「우여곡절과 수난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형 극의 나날에 마침내 사회변혁운동의 지도이념으로 맞이한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그 기 치하에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정의에 살고 애국에 불타는 모든 민중의 숭고한 책무이고 본질이다」.

「주체사상을 수용하여 반미자주화와 반 파쇼 민주화운동을 더욱 가속화하자!」이 선전문구 옆으로는 김일성 저작 집과 단파라디오가 그려져 있다.

사실 합의개헌과 대통령직선에도 불구하고 운동권은 현 체제하에서 자주통일과 민중생존권이 보장되는 진정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사회변혁운동이라는 이름아래 혁명투쟁을 기본노선으로 삼은 지 이미 오래다. 의회민주주의 입장은 한마디로「개량주의」로 매도된다.

<정치세력화 한 재야>

바로 그날 오후 80년대 재야·운동권의 지도적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국 각 부문에서 모인 1천1백 명의 대의원 등 드높은 열기와 관심 속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이로써 운동권세력이 하나의 실재, 하나의 엄연한 정치세력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결성대회장 전면에는 붉은 색으로「반미자주화 반 파쇼 민주화투쟁 만세!」라는 대형구호가 걸려 있었다.

결성선언문은 외세의 신식민주의적 지배와 군사독재가 이 땅에 집요하게 지속되고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 반 외세 자주화운동, 반 독재 민주화운동 및 조국통일운동에 매진할 것을 내외에 천명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 전민련사람들이 해 온 독재에 대한 헌신적 투쟁과 민중에 대한 열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결성 선언문에서 남한의 현상에 대해서는, 예컨대 미국이 그 군대와 자본으로 이 땅의 민중생존과 번영을 가로막고 있고 군사독재와 독점재벌은 분단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고 단정적인 비난을 가하면서, 북한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유통제와 획일주의에 따른 관료 억압과 정체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는 편파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운동을 말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가치에 대해서는 명백히 언급치 않고 있는 사실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민련의 노선에 대해, 혹 자유민주주의체제전복세력이 아닌지, 북한의 대남 전략에 동조하는 것이나 아닌지 경계와 의심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독재권력의 용공조작수법이니, 냉전 이데올로기적 발상이니 하는 반박만을 할 뿐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면 굳이 해명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당연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 한 믿어 주기 어렵게 된다. 물론 대안의 제시가 없는 비판과 비타협적 투쟁도 역사적 기능을 가지기는 한다. 그러나 편파적으로 치우침으로써 자칫 스스로의 황폐와 이웃에 대해 피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오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긴 억압시대의 소산>

이 사회에 지금 서로간의 비판과 비난, 분노와 염려는 넘친다. 그러나 스스로의 책임과 소명에 대해 고뇌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그 실천을 위해 희생적 노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우리가 기나긴 억압의 시대를 겪어 오면서 순응체질과 저항체질 어느 하나로 길들여져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균형과 조화를 되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저항체질은 야당정치권을 비롯한 독재 반대그룹에 있어 하나의 일반적 성향이 되었다. 정부·여당에 어떤 공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해진다. 반면 여당이나 다른 야당이 잘못을 저지르면「그러면 그렇지」하고 기세를 올리면서 비난을 가한다. 남의 잘못을 공격함으로써 기꺼이 상대적 우위에 선다.

정국이 표류하고 있는데도 마치 남의 살림터전으로 아는지 대책 없는 공세만 가하고 있는 야당인사들이 너무 많다.

4당 지역구조의 과점이익을 전례 없이 구가하고 있는 터 수에 간단없는 정쟁으로 지새우는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차기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리라.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생각에서이리라.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바로 저항체질 때문이 아닐까.

재야정신은 불의구조에 대한 불굴의 저항 때문에 아름답고 감동 스럽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이 눈치까지 볼 정도로 상당한 세력이 된 이상 야 성향을 강하게 띠었다고 해서 더 이상 재야는 아니다.

이제는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간에는 일종의 재야프리미엄을 누려 왔으나 이제 특권은 포기해야 한다.

<참고 기다리는 게 민주>

만일 이미 명성과 지위까지 얻은 처지에 강 경·비 타협의 투쟁을 통해 권세까지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 모습이 아름다울 수 없다. 감동을 주기는 더욱 어렵다. 이 명제를 부둥켜 안고 야당들과 전민 협을 포함한 재야와 운동권 사람들, 아니 야 성향의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돌이켜 볼 때가 됐다.

한편 억압과 순응의 체질은 더욱 고질적 병리구조에 빠져 있다. 한마디로 이기주의와 탐욕의 노예인 듯 하다. 예를 들어 자기 입으로 5공 비리를 탓하면서도 자기책임이 있다고는 결코 시인하지 않는다. 가진 것을 다소라도 내놓기는커녕 과시하려 든다. 개혁파를 자처하더라도 자기희생은 생각하지 않는다. 혁신을 미워하고 보수를 부르짖으나 지키려는 신념이나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익과 지위를 지키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는 끝내 권세와 이익 편에 서겠다는, 이를테면「재여」의 병리적 기질이라 하겠다.「재여」병은 여권의 수구세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야당지도자들에게도, 아니 우리 사회의 지도층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격동의 시대에 우리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변치 않는 가치가 아쉽다. 남의 눈치를 보며 남의 책임만을 탓하는 인물들에게 너무 식상했다.

우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옳은 체제라고 믿는다. 전체주의적 강압이나 권위주의적 억압을 원치 않으며 계급독재가 민중을 위하게 된다고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대 개혁을 원한다. 사람들의 생각과 살림이 아름답게 조화되는 공동체를 향한 끈기 있는 개혁을 원한다. 개인의 창의가 자유롭게 창달됨과 아울러 자유시장의 횡포와 가진 사람들의 오만을 막는 질서기능을 고대한다.

그러자면 저항 또는 순응이라는 과거체질에서 벗어나 긍정과 희생적 봉사의 생활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70평생을 꿋꿋하게 민주화의 길로 걸어온 광주 홍남순 변호사의 최근 대 담이 생각난다. 『욕구의 충족에도 반드시 법의 절차를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는 참고 기다리는 민족만이 성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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