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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1세기처럼 살 수 있다면

석영중의 맵핑 도스토옙스키 <37> 피렌체: 유한한 삶, 행복한 삶
소비에트 시대를 풍미했던 그래픽 아티스트 안드레이 우신(1927~2005)은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소재로 여러 편의 리놀륨 판화를 제작했다. 201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 기념관 특별전 ‘도스토옙스키의 이미지들’에 전시된 작품. 생사의 갈림길에 선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비에트 시대를 풍미했던 그래픽 아티스트 안드레이 우신(1927~2005)은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소재로 여러 편의 리놀륨 판화를 제작했다. 201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 기념관 특별전 ‘도스토옙스키의 이미지들’에 전시된 작품. 생사의 갈림길에 선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1869년 1월, 길고 긴 소설 『백치』가 피렌체에서 완성되었다. “마침내 끝났다! 끔찍한 고뇌와 절망 속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지막 장을 썼다.”  
 
이로부터 83년 뒤인 1952년, 피렌체 시는 작가가 살았던 셋집에 현판을 달아 대작의 탈고를 기념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와 베키오 다리를 건너 300m 정도 남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오른편에 구글 맵으로 확인해 두었던 노란색 건물이 보였다. 이탈리아어로 “여기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백치』를 완성했다”고 쓰인 현판이 붙어있다. 이들 부부가 살았던 건물 2층에는 ‘법률 사무소’ 팻말이 걸려있다. 명랑한 이탈리아 신사가 나오더니 자기는 이 사무소에서 일하는 변호사라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하더니 총총 사라진다. 그동안 도스토옙스키의 족적을 찾아 여기까지 온 사람들한테 적잖이 시달린 눈치다.  
 
건물 1층에 입점해 있는 ‘지아니니’ 문구점은 1856년 개점한 이래 6대째 영업을 해온 유서 깊은 문구 및 제지·제본 상점이다. 도스토옙스키는 피렌체에 체류하는 동안 여기서 종이와 펜과 잉크를 사서 썼다. “러시아 관광객들이 가끔 찾아와 도스토옙스키에 관해 묻는다”고 매니저가 알려준다. 늘 궁핍했던 그가 유일하게 사치를 부린 품목이 종이와 펜이었다고 한다. 그냥 나오기가 미안해서 작은 메모장과 연필을 샀다.  
 
문구점에서 나와 트리니티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갔다. 현재 팔라초 스트로치에 있는 비유쇠(Vieusseux) 도서관은 당시 8만권의 장서, 두 종의 러시아 신문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신문, 넓고 편안한 열람실을 자랑하는 명소였다. 도스토옙스키 뿐만 아니라 스탕달·졸라·쇼펜하우어·지드·헉슬리 등 쟁쟁한 문인과 사상가들이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이 도서관 열람실을 즐겨 찾았다.  
 
당대 문화인들이 즐겨찾던 피렌체 비유쇠 도서관의 1820년대 스케치. 아래 사진은 현재 비유쇠 도서관이 들어있는 팔라초 스트로치.

당대 문화인들이 즐겨찾던 피렌체 비유쇠 도서관의 1820년대 스케치. 아래 사진은 현재 비유쇠 도서관이 들어있는 팔라초 스트로치.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딱 한 마디 “도스토옙스키”라고 했을 뿐인데, 어디선가 영어를 구사하는 사서가 나타났다. 그녀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성큼성큼 앞서가더니 아카이브 담당자인 라우라 데시데리 부인에게 나를 ‘인계’했다. 담당자가 가져다준 것은 두 권의 두꺼운 장부였다. 도스토옙스키가 거주할 당시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수도였다. 방문 외국인은 방명록 장부에 이름과 거주지 주소를 친필로 기록해야 했다. 장부에 등록된 인물들의 면면은 문화 중심지로서 피렌체의 위상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러시아 귀족 뿐 아니라 러스킨, 브라우닝, 베를리오즈, 리스트, 하이네, 심지어 나폴레옹 3세 이름까지 들어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친필을 볼 수 있는 장부는 두 권이었다. 하나는 1862년 스트라호프와 들렀을 때 남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1868년 부인과 체류할 때 남긴 것이다. 1868년 장부에는 12월 16일자로  “M. Th<00E9>odore Dostoievsky, Via Guicciardini No. 8 au second”라 적혀있다. 도스토옙스키 친필 서명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라틴 알파벳 서명이라 추정된다. 현재 구치아르디니 거리 22번지가 당시에는 8번지였다고 한다. 나는 필적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얼핏 보기에 반듯하면서도 힘찬 서체가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백치』에서 미슈킨이 하는 말이 생각났다. “그들의 서명에는 이따금씩 그들 나름대로 취향과 노력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도스토옙스키는 그림과 글씨에 조예가 깊었으며 필적이 얼굴처럼 사람의 본성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이 가장 처참한 고통”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원작으로 제작된 독일 칼 프렐리히 감독의 무성 영화 ‘방황하는 영혼들’(왼쪽 사진). 폴란드 출신의 감독 안드레이 줄랍스키가 제작한 ‘미친 사랑’은 『백치』의 주인공 미슈킨과 나스타시야, 로고진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각색한 프랑스 영화다. 소피 마르소가 출연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원작으로 제작된 독일 칼 프렐리히 감독의 무성 영화 ‘방황하는 영혼들’(왼쪽 사진). 폴란드 출신의 감독 안드레이 줄랍스키가 제작한 ‘미친 사랑’은 『백치』의 주인공 미슈킨과 나스타시야, 로고진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각색한 프랑스 영화다. 소피 마르소가 출연했다.

『백치』는 여러 면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실제 삶을 재료로 한다. 독자께서도 이미 아시다시피 도스토옙스키는 페트라셉스키 서클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처형 직전 감형을 받았다(연재 9회 참조). 『백치』는 이때의 트라우마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백치』에는 처형·사형수·처형 장면 등에 관한 얘기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데, 그 모든 처형 스토리의 핵심은 죽음의 확실성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필멸의 인간을 사형수에 비유했다. “쇠사슬에 묶인 한 무리의 사람들을 상상해 보라. 모두가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매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중 몇몇이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는 이것이 인간조건의 모습이라고 했다. 도스토옙스키도 인간의 조건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필멸에 대한 절대적인 확실성이라 지적했다. “피할 수 있는 희망이 절대로 없을 거라는 사실 속에 처참한 고통이 있는 겁니다.”  
 
이 확실성과 싸우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도스토옙스키는 미슈킨의 입을 통해 자신의 체험을 3인칭으로 풀어내면서 여기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미슈킨은 언젠가 우연히 알게 된 사형수 얘기를 예판친 장군의 가족에게 들려준다. “그 사람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사형대 위로 끌려가서 정치범으로 총살형을 받는다는 선고문을 들었답니다.”  
 
사형수는 세 번째 줄에 서 있었다. 죽음은 5분 뒤로,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게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그 5분을 무한대로 늘임으로써 죽음의 확실성을 거부한다. “그는 이 5분 동안 많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게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5분이 그에게는 무한대의 시간이고 엄청난 재산처럼 여겨졌답니다.” “우선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을 할당하고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성찰해 보는데 2분,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할당했답니다.” 믿을 수 없이 긴 5분이었다.  
 
바로 그 순간 사형수의 머릿속에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생명을 다시 찾는다면 그것이 영원 아닐까!”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된다! 그때 나는 매 순간을 1세기로 연장시켜 아무것도 잃지 않고 1분 1초라도 정확히 계산해 두어 결코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리라!”  


이때부터 이야기는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사람의 ‘무용담’에서 생에 대한 철학적 담론으로 넘어간다. 사형수의 생각은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매 순간을 1세기로 체험할 수 있다면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죽음의 확실성도 의미가 없다. 불멸도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득도’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지상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부 아닌가.  
 
소설에서 이 사형수와 가장 유사한 인물은 불치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안 남은 이폴리트다. 그는 스스로를 “사형수”라 부르며 매 분을 한 세기로 연장하는 상상을 한다. 그의 상상은 곧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전이된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가진 그 최고의 ‘재산’에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앞으로 살 날이 60년까지도 남은 사람들이 불행하다면, 그리고 사는 법을 모른다면 그건 누구 잘못인가?” 그는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데 왜 살 날이 구만리 같은 사람들이 부자가 못 되고 성공하지 못하느냐”면서 불같이 화를 낸다.  
 
시간을 초월하면 죽음도, 불멸도 무의미  
소비에트의 일러스트 작가 프세볼로드 술리모-사무일로의 『백치』삽화. 미슈킨 공작이 사형수 얘기를 하는 장면.

소비에트의 일러스트 작가 프세볼로드 술리모-사무일로의 『백치』삽화. 미슈킨 공작이 사형수 얘기를 하는 장면.

무한히 연장되는 시간이 주어지면 인간은 정말로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까? 소설 속의 사형수는 영원히 계속되는 시간에 대한 상념이 “증오스러워져서” 차라리 빨리 총살당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 1분 1초를 아껴 써서 단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오로지 비유적으로만 가능한 얘기다. 보통 사람이 일상에서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 수는 없다. 날마다 죽음의 확실성을 절감하며 살 수도 없다. 그건 어마어마한 일을 겪거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온 사람도 거의 마찬가지일 것이다.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데 성공해서 평생 그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면서 어떤 극적인 회심의 순간에, 혹은 중요한 계기에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다 해도 대개 그 때 뿐이다.  
 
미슈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알렉산드라가 묻는다. “그 사람은 이 엄청난 부를 어떻게 처리했다던가요? 매 순간 정확하게 계산하며 살았대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 말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너무나 많은 순간과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처형장에서 살아난 뒤 형에게 쓴 편지에서 소설 속의 사형수와 똑같은 말을 했다. “매 순간이 행복한 한 세기가 될 수 있을거야.” 그러나 살다 보니 그 역시 자기가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이 흐른 뒤 쓴 소설 『백치』에서 사형수가 한 말은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도스토옙스키는 1분 1초를 아껴 쓰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인간의 유한성에 대응하려 했던 것 같다.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두들 확신하리라 믿지만 콜럼버스가 행복을 느꼈던 것은 그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가 아니라 발견하려고 시도했을 때였다. 신대륙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제는 신대륙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삶에, 오로지 삶 하나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지 그 삶을 발견하는데 있는 게 아니다.”  
 
삶을 중단 없이 추구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둘 때에 죽음은 더 이상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 보통사람도 이 정도는 노력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려대 노문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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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