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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쳤다가 접었다가 … 한지에 비친 등잔불 느낌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89> 루미오(Lumio) 조명 램프 
2년 전의 일이다. 뉴욕에 다녀온 친구가 전리품마냥 조명등을 들고와 자랑을 늘어놨다. MoMA(The Museum of Modern Art)에 들렀다 디자인이 좋아 선뜻 샀다는 거다. 애써 관심 없는 척 했다. 그깟 램프 하나 가지고 뭘 그러냐는 틀어진 심기의 발동이었다. 그래도 아랑곳않고 친구는 신이 나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책처럼 보이는 물건을 테이블 위에 펼치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책장 사이로 은은한 불빛이 번졌고 펼쳐진 모습은 공작의 날개 같았다. 신기했다. 게다가 들고 다니며 아무데서나 펼치기만 하면 불이 켜진다. 이상했다. 전구가 들어간 물건에 흉물스런 전선이 보이지 않는다. 아하! 곧 알아챘다. LED 램프의 시대가 온 것이다. 조명등은 주렁주렁 매달린 줄을 당연하게 여겼다. 램프의 변화는 내 생각을 앞질러 이미 실물을 보여주고 있다.  
 
친구의 잘난 척과 자랑은 이어졌다. 짜증났지만 매력적인 디자인의 물건을 택한 안목은 인정해줄 만 했다. 멋진 조명등으로 한껏 분위기를 돋운 방에서 단 둘이 말의 성찬을 이어갔다. 서글픈 그림은 늦은 시간까지 바뀌지 않았다.  
 
책처럼 생겼는데 펼치면 불이 들어오네
지난 주 S매거진에 실린 북 리뷰를 기억하시는지? 신혜연이 펴낸 『언니의 아지트』다. 전국의 좋다는 곳을 직접 돌아보고 평생 쌓은 안목의 공력으로 선정한 장소들을 담았다. 재미없게 사는 아저씨들은 이 책을 꼭 봐야 한다. 삶의 풍요를 위해서, 아니면 스스로를 접대하는 마음으로 멋진 공간을 순례할 방법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난 책을 읽자마자 깨알 같은 메모를 해 뒀다. 신혜연의 선택은 맹목의 추종도 괜찮을 만큼 믿을 만하다. 좋은 것을 찾아내 세상의 유용함으로 바꾸는 일을 삼십년 동안 했던 이다.
 
첫 책을 내는 저자의 불안감과 기대를 이해한다. 제작 과정에서 몇 가지 조언과 격려를 해주었다. 내심 고마웠던 모양이다. 책이 나온 후 함께 점심을 먹었고 내개 선물 하나를 내밀었다. 작지만 묵직했다. 일부러 풀어보지 않았다. 신혜연이 고른 물건이라면 뭔가 다를 것이란 기대의 상상 때문이다. 집에서 풀어본 선물은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친구의 멋진 조명등이었다. 루미오(Lumio)란 상표가 선명했다. 마치 몰스킨 수첩만한 크기와 분위기의 미니 사이즈다. 책의 등에 해당되는 세네카는 주황색 덮개를 덮어 시각적 강조점으로 삼았다. 한 눈에 물건임을 직감했다. 램프는 펼치기만 하면 불이 들어온다.
 
책장의 종이 같은 비닐 재질에 확산된 부드러운 불빛이다. 색온도 높은 LED의 날카로운 빛은 정말 피곤하다. 루미오는 그렇지 않다. 2700K(색온도의 단위로, 숫자가 낮을수록 붉은색을 띤다) 정도로 낮춘 불빛은 한옥의 장지문을 투과한 불빛 마냥 정감 있고 따스하다.  
 
두꺼운 책 표지 같은 커버에 보이지 않는 비밀이 담겨있다. 안에 자석 처리가 되어 있어 철판에 들러붙게 했다. 집안이나 사무실엔 철제로 된 물건들이 꽤 있다. 냉장고나 세탁기, 철제 파이프 캐비넷 같은 사무용 집기도 포함된다. 이들 철판에 붙여놓으면 의외의 장소를 밝히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중간에 바를 찔러 넣어 관통시키면 줄에 매어 공중에 매달 수도 있다. 평평한 면 위에 펼치고 반쯤 열어 세워 놓아도 된다. 끝까지 펼치면 표지끼리 들러붙어 둥그런 형태가 된다. 놓는 위치와 펼쳐진 각도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신선함은 놀랍다.  
 
레드닷 디자인상 수상 MoMA 아트숍에서도 인기  
루미오의 파격은 전선의 제약에서 벗어난 전등의 새로운 용법이다. 유명 디자이너 쳐놓고 조명 디자인을 빗겨간 이들은 많지 않다. 그만큼 조명은 매력적인 디자인의 대상으로 각광받아 왔다. 조명 디자인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전구의 개발과 큰 변화축이 일치한다. 필라멘트식 대형 전구의 시대에는 전구를 둘러싼 갓의 형태를 바꾸는 정도로 단조로웠다. 이후 할로겐 램프의 시대를 맞아 날렵해지고 직선이 강조된 모던한 디자인이 유행했다. 최근 조명기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것이 LED다. LED는 크기와 밝기, 색깔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전기를 쓰는 일반용과 충전해서 쓸 수 있는 휴대용 모두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전기줄이 달리지 않은 조명등이 어디 루미오 뿐일까. 이미 수많은 업체에서 만든 LED 조명기구들이 넘친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특출한 디자인과 정교한 마무리의 물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 조잡한 마무리의 제품들만 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루미오는 정교하고 매끈하며 깔끔하다. 공들인 물건의 기품이 느껴지는 높은 완성도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만들어지자마자 레드닷 디자인상을 거머쥐었고 콧대 높은 MoMA의 아트숍에 입성했다. 세련된 디자인과 마무리가 조화된 좋은 물건의 힘이기도 하다. 꽤 비싼 가격에도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곳을 방문했던 이들이 흥분해서 사오게 되는 물건의 대표 격이 된 이유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근거지로 운영되는 루미오는 ‘Designed by Lumio, Made in China’의 요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건축가 출신 디자이너의 미려한 공간 감각
루미오는 건축가 출신의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건축가의 관심은 공간의 활용도다. 빈 공간을 채우는 물건도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전기줄 때문에 콘센트 주위를 벗어날 수 없는 기존 조명등이다. 안전하게 고정시키기 위해선 밑면이 큰 받침대 위에 세워야 한다. 스탠드 방식이라도 기존 램프의 구조 때문에 꽤 큰 부피와 무게를 지닌다. 불 밝히기 위해서 꽤 큰 공간이 잠식되는 것이다.  
 
조명등 자체가 놓여질 공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이 생겼다. 바로 충전해 쓸 수 있는 LED방식이다. 게다가 에너지 효율이 높고 부피가 작아 얼마든지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일부러 세우거나 벽에 붙이지 않아도 된다. 작게 만들어도 밝아 실용성도 떨어지지 않는다. 기술 발전은 공간 소모가 적은 램프의 개발과 형태의 파격을 이끈 주역이다.  
 
루미오는 테이블 위에선 펼치고 더 좁은 공간에선 세워두며 둥글게 말아 공중에 매달아도 된다. 똑 같은 용도의 물건이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진다.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의 감각은 역시 달랐다. 현실 공간의 빈틈 어디에서도 쓸 수 있는 형태의 대응이 루미오의 장점이다. 실내와 실외를 넘나드는 사용 편의성이 돋보인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램프의 실용성이 의심될 것이다. 루미오는 한 번 충전으로 10시간 정도 불빛이 지속된다. 계속 켜 놓더라도 하룻밤은 충분히 버틴다. 실제 써 보니 일주일에 한 번쯤 충전하면 된다는 걸 알았다. 야외에선 휴대폰의 예비 배터리로도 쓸 수 있다. 든든한 에너지 저장 탱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우리 집에선 루미오를 침대 머리맡 라디오 위에 얹어놓고 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선율과 섞인 은은한 불빛은 부유하듯 번진다. 조명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평소 자던 방이 신선하게 바뀐 느낌이다. 기분이 매우 좋다. 눈에 피곤함을 주지 않는 색온도의 불빛과 산광되어 부드러워진 빛의 효과다. 루미오는 꿈결, 석양의 구름, 새 털, 솜사탕 같은 단어를 연상시킨다.  
 
루미오는 펼쳐진 책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공부하지 않아도 책을 쌓아둔 모습만 보면 위안이 되지 않던가. 서울의 명소로 떠오른 장소들은 하나같이 책이 꽂힌 서가를 배경으로 삼는다. 책이 주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사실 책만큼 좋은 형태의 오브제도 드물다. 루미오가 책의 느낌을 하나 더했다. 책에서 나오는 불빛과 함께한다면 지혜 한 사발 정도는 내게 더해질 것 같다는.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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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