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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본명에 숨은 뜻은

영화 ‘곰돌이푸 다시 만나 행복해’를 보러간 건 순전히 고등학생 딸 때문이다. 올들어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좀체 내려오지 않는 ‘곰돌이푸’ 열풍을 이상한 현상이라고 여기던 터라 그닥 내키진 않았지만, 딸이 어린 시절 특히나 좋아하던 푸 동화책을 매일 읽어주고 푸와 친구들 인형을 수집하던 아련한 기억에 못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영화는 크리스토퍼 로빈이 푸와 함께 놀던 100에이커 숲을 떠나게 된 날부터 시작한다. 동화의 세계를 떠나 엄격한 기숙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인생의 각종 관문을 거쳐 중년의 가장이 된 그는 명품가방 회사에서 중차대한 구조조정 임무를 떠맡고 있다. 100에이커 숲에서 언제나 푸와 친구들을 도와주는 존재였던 그답게 해고 위기의 직원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100년이 지나도 푸와 친구들을 기억하겠다’던 약속은 잊은지 오래. 일에만 매여사는 그에게 어느날 푸가 나타나 100에이커 숲으로 다시 데려간다. 삶의 문제들의 해답을 동심에서 찾는 뻔한 ‘어른이 동화’ 플롯이지만 가슴에 꽂힌 명대사도 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종종 가장 잘 한 일이 된다(Doing nothing often leads to the very best of something)”.  
 
최근 공연을 보러 유럽에 간 김에 ‘안 보면 후회한다’는 근방의 명소를 찾아 분주히 돌아다녔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같은 방대한 컬렉션의 미술관에서도 빠듯한 시간 탓에 교과서에 실린 명화들을 좌표로 찍고 뛰어다녔다. 열심히 미션을 클리어해 가며 마음 한구석 허탈한 기분도 들었다. 관람객이 구름같이 몰려있는 대작 앞에서 다음 좌표를 떠올리면서, 내가 지금 이순간을 즐기고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오히려 가장 충만한 순간은 아무 목적도 없이 찾은 소도시 델프트에서 맛봤다.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란걸 알았지만 박물관 관람에 지쳐 도자기 뮤지엄 따위는 찾지 않기로 했다. 동화 속 마을 같은 풍경을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뒤덮인 교회에서 뜻밖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 베르메르의 무덤까지 만날 수 있었다.  
 
사방에 흐르는 운하에 관광객을 빼곡 실은 보트들이 분주히 다니는 모습을 보고 뒤늦게 한 번 타볼까 물어보니 “마지막 타임이라 타는 사람이 거의 없다”던 관리인이 잠시 고민하다 훤칠한 청년 2명을 불러온다. ‘운전 왕초보’라 고백한 대학생 알바 선장의 모험에 동참하는 스릴과 함께 한 시간 동안 백조가 떠다니는 그림 같은 운하에서 훈훈한 청년들의 가이드를 받으니 안구정화, 고막청소가 한 방에 해결됐다. 같은 값을 주고 사실상 보트를 전세내고 VIP독대를 받은 셈이다. 보트를 타겠다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왔다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호사였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흐르는 강물에 모든걸 맡길때 가장 좋은 곳에 도달할 수도 있더라.  
 
크리스토퍼 로빈이 푸와의 재회에서 깨달은 것도 가방회사의 경영개선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답이란 거였다. 대단한 경영전략은 필요없었다. 사람들에게 휴가를 주면 여행을 가려고 가방을 살 게 아닌가. 크리스토퍼 로빈은 실수연발 푸를 ‘실리 올드 베어’라 부르면서도, 푸가 보이지 않으면 ‘위니 더 푸’라고 반복해 부른다. 마치 ‘위 니드 더 푸(We need the Pooh)’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위니 더 푸’ 이름의 유래도 아마 거기서 왔을게다. 생각은 작지만 마음은 넉넉한 푸. 우리에겐 푸와 함께 하는 순간이 정말 필요하다.  
 
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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