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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채를 유지하자

김하나의 만다꼬
얼마 전 같이 사는 친구가 “요즘 살이 많이 붙은 것 같아. 나잇살인가? 나 다이어트 좀 해야겠지?”라고 하기에 대번에 이렇게 답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 나이엔 풍채를 유지해야 한다고.” 
 
요즘엔 잘 안 쓰는 말인 ‘풍채’라는 말이 튀어나온 바람에 둘 다 키득거렸다. 우리는 40대 초반 여성들이다. 30대까지는 살이 잘 찌지 않던 부위에까지 살이 조금씩 붙어 예전에 잘 입던 옷들도 요즘 입으면 태가 다르다. 나이가 드니 신진 대사율도 떨어지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어지간히 열심히 관리하지 않는 이상 살집이 붙는 것은 당연한 일 같다.  
 
이후로 나는 ‘풍채’라는 말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사전을 찾아보면 ‘풍채’란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이라는 뜻이니 ‘겉모습’ ‘외양’이란 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풍채는 주로 ‘풍채가 좋다’ ‘풍채가 당당하다’ 등으로 겉모습의 늠름하고 반듯한 기운 같은 것을 칭찬할 때 쓰인다. 풍채, 풍채라고 여러 번 되뇌다 보면 그 말 맛에 제법 기분 좋은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잘 쓰지 않고 ‘풍채 좋은 회장님’처럼 주로 나이 먹고 살집이 있는 남자의 외모를 에둘러 칭찬할 때나 쓰는 말 같다. 그래선지 일상 생활에서 그리 친숙하게 쓰이지는 않는다.  
 
신체의 외양에 대한 말 중에 요즘 우리가 친숙하게 여기는 단어들은 ‘다이어트’ ‘S라인’ ‘애플힙’ ‘식스팩’ 같은 것들이다. 이런 말들은 신체를 각각의 부위로 대하고, 저마다 지닌 현실의 몸을 이상적인 몸으로 수정해야 할 듯한 인식을 내포한다. 그에 비해 풍채라는 말은 몸의 각 부분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전체적인 인상을 아우른다. 좋은 풍채란 저마다 다르며, 거기엔 자세나 태도ㆍ기운 등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나는 이 말이 다이어트라는 말보다 더 많이 쓰인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30대 후반의 참 멋진 여성이 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몸이 탄탄하며 말수가 적다. 나풀거리는 느낌이 없고 어딘지 묵직한 대장부의 기운을 풍기는 사람으로, 원피스를 입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갈 때면 보는 내가 다 시원하다. 그런데 그 사람의 당당한 외모를 칭찬할 말이 없다. 물론 요즘은 사람의 외양을 놓고 가타부타 평가질 좀 하지 말자는 추세지만, 어떤 아름다움이나 경탄을 자아내는 모습에 속으로라도 마땅히 붙일 말이 없다는 건 답답하다. 그리고 여성의 몸이 듬직하고 멋있음을 시사하는 말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례가 되기 쉽다. 그러다 속으로 생각한다. 아, 풍채가 참 좋구나! 그래놓고 나 혼자 내적 박수를 치며 기특해 한다. 관습적으로 풍채는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말처럼 쓰이지만 나는 이 좋은 말을 보다 많은 여성들이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로 마흔이 넘었거나 마흔을 향해가는 나의 여자 친구들에게 앞으로 “풍채를 유지하자”는 말을 자주 해야겠다. 다이어트와 동안의 시대에 주적처럼 들리는 ‘나잇살’이라는 말을 대신해 쓰기에 좋은 말이다. 쓰는 말을 잘 고르면 삶의 많은 좋은 것들이 그 말에 딸려 온다. 점점 풍채가 좋아지는 나는 그렇게 믿는다.  
 
브랜드라이터.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힘 빼기의 기술』을 쓴 뒤 수필가로도 불린다. 고양이 넷, 사람 하나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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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