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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림자 위안’으로부터 탈주하라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

어느 날 습관적으로 커피를 하루에 다섯 잔 이상 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술이나 담배를 매일 즐기면서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내가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면. 그것은 진정한 위안이 아니라 ‘그림자 위안’일 가능성이 높다. 커피와 담배와 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향기와 맛도 음미하지 못한 채 그것들이 주는 잠깐의 쾌락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가 문제다.  
 
일 중독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고민할 새도 없이, 또는 고민 자체를 차단한 채, 차라리 일에 미쳐서 다른 고민을 잊어버리려는 마음이라면 그 일이 주는 기쁨은 그림자 위안일 수 있다. 모바일중독 또한 휴대전화로 의미있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것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 자체에 길들어버린 그림자 위안이다. 온갖 고민에 대한 주의집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마비시키는 것, 오직 습관적으로 중독적인 행위를 함으로써만 즉각적인 만족을 얻는 것. 그것이 그림자 위안의 쓸쓸한 뒷모습이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의 겉모습은 ‘쾌락’이지만, 그 본질은 ‘마비’다.
 
작가 제니퍼 루덴(Jennifer Louden)은 이렇듯 쾌락을 주면서도 실제로는 감각을 마비시키는 행동을 ‘그림자 위안(shadow comforts)’이라고 부른다. 불안감과 무력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우울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우리가 찾는 모든 중독의 대상들은 그림자 위안이다. 그림자 위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짜 문제와의 ‘대면’을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는 그 감정 자체를 피하기보다는 ‘왜 우울한가, 왜 불안한가’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 문제와 직면하는 것이 낫다.  
 
실제로는 이 ‘직면’으로 인한 힘겨운 깨달음이 ‘도피’로 인한 잠깐의 쾌락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면서도, 사람들은 손쉬운 쾌락, 그림자 위안으로 빠져들곤 한다. 취해서 그 술이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폭음을 하는 것은 그림자 위안이지만, 음주 운전은 절대로 하지 않고 가끔 ‘와인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은 행복의 작은 출구가 될 수 있다.
 
삶의 향기 10/13

삶의 향기 10/13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당신의 천복을 따라가라(Follow your bliss)”라고 말했다. 여기서 블리스는 외부의 자극이나 인정으로 인한 행복이 아니라 ‘누가 뭐래도 내가 좋은 것’을 말한다. 보수가 적거나 크나큰 인정을 받지 못해도 그저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커다란 내적 충만함을 느끼는 것, 이런 것이 블리스다.  
 
얼마 전에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계속 글을 쓰는 나를 보고 어떤 분이 ‘그렇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일을 하면 힘들지 않냐’고 걱정을 하셨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힘들지요. 그런데 흔들리는 차 안에서 글을 못 쓰면 더 힘들거든요.” 좀 더 생각하고 단어를 다듬을 틈도 없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멀미가 날 것 같은 어지러움 속에서도 글을 쓰는 것이 마냥 어처구니없이 좋은 것, 그것이 내 인생의 블리스였음을.
 
블리스는 고통을 허용하는 기쁨이다. 슬픔조차도 감수하는 희열, 죽을 것 같이 힘들다가도, 너무 고된 나머지 ‘다시는 이 짓 말아야지’라고 투덜거리다가도, 어느새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연구하고 있는 그런 일이 우리의 진정한 희열이다. 잠깐의 쾌락보다 오래가는 희열, 타인의 비판에 주눅 들지 않는 기쁨의 특징은 ‘나만의 고립된 즐거움’이 아니라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이 세상을 구성하는 작은 벽돌 하나를 쌓아 올리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힘든 순간에도 이건 ‘의미 있는 고통’이라는 믿음을 주는 고생, 그런 블리스에 우리 마음을 기쁘게 내어주자.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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