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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사람에게 속은 경험 담아 ‘사기백과사전’ 낼 것

[홍병기의 CEO 탐구]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
한경희 대표는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 만들어내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김경빈 기자]

한경희 대표는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 만들어내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김경빈 기자]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이사(54)는 대표적인 1세대 여성 벤처기업인으로 꼽히는 화제의 인물이다. 1999년 스팀 청소기를 개발·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됐지만 지난해 사업 확장에 따른 자금난 등으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10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하고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한 대표를 만나 그의 경영철학과 인생관을 들어봤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기업이 되기 위해 창업에 나섰다는 한 대표. 성공과 실패를 함께 경험했던 그가 과연 앞으로 재기에 성공해 고객을 위한 행복 전도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기업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가전제품의 특성상 애프터서비스가 부실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구매를 꺼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더라. 다행히도 제품을 더 구입해서라도 도움을 주겠다는 소비자들의 응원이 많았다.”
 
기업 회생을 위한 경영 목표는.
“일단 빠른 시일 내에 흑자를 내는 게 목표다. 제대로 재기에 성공해 단단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 우리 회사 브랜드는 가족과 주부에 도움이 되는 가전 아이템에 초점을 맞췄었다. 앞으로 그 외에 먹고, 입는 것과 같은 생활 아이템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 3월 기업회생절차 졸업 때 남은 100억 원대의 빚을 10년 내에 모두 상환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5년 이내로 줄이는 게 현안”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이를 위해 홈케어, 인테리어 분야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대중적인 제품 개발을 추진 중이다. 우선 연말까지 건강 유해 논란이 있는 전자 레인지를 대체할 수 있는 코일 가열방식의 전기 레인지 시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IOC·교육부 공무원 관두고 창업
 
실패를 경험해봤다. 교훈이 있다면.
“창업 초기에 너무나 어렵게 사업을 시작하다 보니 이보다 더 어려워질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기업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에 빠져보니 정말로 극복하기가 어렵더라.”
 
무엇이 가장 어렵던가.
“(잠시 생각하더니) 순진하게도 믿는 사람들에게 많이 속았다. 그동안의 경험을 담아 사기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사기백과사전’을 내려 한다. 사업을 하면 사기는 항상 같이 다니는 일이다. 거기에 쉽게 당하는 것도 문제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사기꾼들이 몰린다. 사기에는 ‘인간적인’이란 말이 소용없다. 인간답지 않은 인간도 이 세상에 많다. 그때그때의 상황 논리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원래 나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그는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길 꺼렸지만, 법정관리 개시 이후 사업 확장 당시 얽히고설킨 보증과 채무 문제로 한동안 숱하게 검찰 조사에 불려 나가며 이런 생각을 굳힌 듯했다.
 
그럼 사기에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서가 가장 중요하다. (단호하게)서명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CEO는 문제가 생길 때 남의 처분이나 선한 양심만 믿고 의사를 결정하면 안 된다. 도와주겠다는 속삭임도 쉽게 믿지 마라.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게 만드는 말이나 표현을 조심하라. 기업인은 냉정해야 한다. 객관적인 증거나 서류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누구도 믿어선 안 된다는 심정으로 철저하게 점검 또 점검해야 한다. 위험에 빠지면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봇물 터지듯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를 한창 듣노라니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선 자신의 이익을 우선 생각하고, 어떤 상황이든지 스스로 헤쳐나갈 힘을 기르라는 게 ‘사기백과사전’의 주제가 될 법 싶다. 설사 사기를 당하더라도 누구를 원망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자책하면서 성장의 계기로 삼아나가야 한다는 말도 강조했다.
 
한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사무국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에서 호텔업 등에 종사하다가 교육부의 해외 학위자 대상 사무관 특채에 선발돼 2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유별난’ 경력의 소유자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게 우선
 
경력이 화려하다. IOC 직원은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인데 왜 그만뒀나.
“전공(불문과)을 살려 통역 업무 등에서 2년간 일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 보니까 국제기구에선 변호사나 회계사가 아니면 모두 다 단순 비서 업무에 불과하더라. 그 때문에 더 나은 도전을 위해 MBA 진학을 결심했다.”
 
그 좋다는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창업한 이유도 궁금하다.
“당시 맞벌이 주부였는데 집안에서 항상 무릎을 꿇고 청소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날 스팀이 나오는 대걸레를 만들어보면 서서 청소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히트 상품이 된 스팀 청소기의 시작이었다.”
 
여성 기업인으로서 나름의 경영철학이 있을 법하다.
“기업은 끊임없이 상승하지 않으면 망한다. 1999년 창업 이후 성장이 주춤할 때마다 신제품을 내놓은 이유다. 지금까지 번 돈만으로 안주할 수도 있지만 도전을 택했다. 소비자 삶의 질을 높이는 대중적인 제품을 계속 개발해내는 게 꿈이다.”
 
한 대표는 경영을 ‘세상에 도움이 되는 노력’으로 정의한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기업이 바로 성공한 기업이란 이야기다. 그는 “성공한 기업은 나쁜 기업이 아니다”라며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기업과 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회사 사훈이 ‘홍익인간’이다. 이렇게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고,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서비스와 제품을 공급하자는 꿈을 담았다.”
 
한경희 대표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 그가 직접 제작해서 친지들에게 배포한 이 책에는 일하는 여성으로서 잘 챙겨주지 못하는 두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김경빈 기자]

한경희 대표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 그가 직접 제작해서 친지들에게 배포한 이 책에는 일하는 여성으로서 잘 챙겨주지 못하는 두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김경빈 기자]

그의 명함을 보면 영문 이름은 로미(Romi)다. 70년대 명배우 로미 슈나이더에서 따온 것인데 주변에 똑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이 없어 선택했단다. 성은 ‘HAAN’으로 특이하게 표기한다. 디자인 요소를 고려한 것으로 이 회사의 모든 제품엔 그의 성을 딴 로고가 붙어있다.
 
평소 생활의 좌우명은 무엇인가.
“사업 초기엔 ‘초심을 잃지 말라’라는 말을 명심했었다. 요즘엔 ‘자기 자신을 정복하라’란 말을 되뇐다.  그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흔들리지 않았던 것도 이 말 때문이다. 인생은 마라톤이지 않나. 지금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나중에 훨씬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죽을 때 잘 살았다는 평가를 받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동안의 시련 속에서 얻어진 결실처럼 들린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처음엔 스트레스가 쌓여 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이었다. 이를 극복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요즘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너무 멀쩡한 모습이라며 다들 놀란다.”
 
 
2년 이상 영업해본 뒤 창업하라
 
존경하는 인물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다. 그는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그의 정신을 닮고 싶다. 창업 초기 기술에 문외한이어서 한동안 ‘걸어 다니는 민폐’로 불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서당개 3년’이라 웬만한 내용을 훤히 알게 됐지만 말이다. 엔지니어들이 안 된다고 할 때가 많았지만, 고객의 눈높이에서 고민하며 솔루션을 찾아보면 항상 방법이 나오더라.”
 
앞으로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
“100세 시대에 아직 반밖에 살지 않았나. 앞으로 10년 정도 더 일하고 남은 시간에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여성 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만드는 캠페인을 벌이고 싶다. (그는 현재 전 세계 74개국, 3500여명의 여성 임원들이 참여한 세계여성이사협회의 창립회원이다.)”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일이 많다 보니 잠들기 전의 시간이다. 가급적 아이들과 한 마디라도 이야기 나누는 소중한 시간으로 보내려 노력한다.”
 
주말을 어떻게 보내나.
“항상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데 고민이 많다.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 중 하루를 ‘패밀리 데이’로 정하고 식구들 모두 모여 찜질방·영화관에 가거나 외식을 한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학부모 총회가 열리면 열 일을 제쳐놓고, 연차를 내고라도 반드시 참석했다. 아이 친구들의 엄마를 직접 만나봐야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가정을 이룬 후배나 직원들에겐 ‘강남에 절대 가지 마라’란 말을 해주고 싶다. 내신 1등급은 4%밖에 없는데 강남에선 치열한 경쟁으로 등급이 떨어진다. 아이들의 자존심이 꺾여 공부에 대한 흥미를 쉽게 잃어버린다. 아이들의 기를 세워주는 노력이 우선이다.”
 
창업이나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아이디어가 10%라면 실행이 90%다. 어떤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려면 최소한 그 분야에서 2년 이상 영업을 해봐야 한다. 그런 다음 사업을 시작하라.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고객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글씨로 본 이 사람] 적극적이고 환경 적응 잘하는 성격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 한경희 씨가 적은 사인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 한경희 씨가 적은 사인

한경희 대표의 글씨(사진)는 글자 크기가 다소 크고, 글씨 쓰는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필적 분석 전문가인 구본진 변호사는 “이런 글씨를 쓰는 사람은 행동에 거침이 없고, 판단하거나 일하는 속도가 빠르다”고 분석했다. 대개 활력이 있고,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부지런하고 솔직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글자 간의 간격이 넓은 것은 자신에게 관대하거나, 새롭고 다른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한 획으로 글자 하나를 다 쓰는 연면형(連綿型) 글씨인 점도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복잡한 현상을 분석·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가로 선이 짧고 작은 것은 인내력과 열정이 약하다는 것으로 풀이됐다. 가로선을 길게 쓰고 ‘ㄴ’자의 끝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쓰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게 구 변호사의 조언이다.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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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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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