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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의 별이 된 박영석, 그이는 지금도 긴 원정 중

[스포츠 다큐 - 죽은 철인의 사회] 영원한 전설로 남은 산악인 
박영석

박영석

“지금 상황은 어떤가? 어디쯤인가?”
 
“야, 이거 강행하지 않고 철수하길 잘 했다. 다 죽일 뻔했다. 그런데 좌우로 눈사태가 심하다. 저걸 어떻게 건너지…”
 
무전기를 통해 베이스캠프에 전해진 ‘저걸 어떻게 건너지’가 세상에 남긴 박영석의 마지막 말이었다.
 
박영석(1963~2011)은 히말라야산맥 안나푸르나의 별이 돼 있다.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탐험가 박영석은 2011년 10월 18일,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 도중 신동민·강기석 대원과 함께 실종됐다. 헬기가 떠서 정밀 수색을 했지만 등정에 쓴 로프만 발견했다. 시신 없는 합동영결식이 11월 3일 열렸다.
 
박영석이 달성한 산악 그랜드슬램(2005년)은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3대 극점(남극·북극·에베레스트),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자에게 주는 최상의 영예다. 박영석의 도전은 끝날 줄 몰랐다. 정상에 오르는 게 목표인 등정주의에서 벗어나 새 루트를 개척하는 등로주의로 방향을 바꿨다. 세계 3대 난코스(에베레스트 남서벽, 안나푸르나 남벽, 로체 남벽)에 코리안 루트를 내는 목표를 향해 진군하던 박영석은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품에 안겼다.
 
박영석이 오래 살았던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강을 바라보는 노을공원 입구에 박영석산악문화센터가 있다. 2016년에 짓기 시작해 외관은 완성했지만 내부는 아직 ‘공사중’이다. 그곳에서 ‘박영석의 첫사랑’ 홍경희씨를 만났다. 박영석을 보듬고 지켜온 사람, 그의 개척정신이 오래오래 기억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사고 당한 셰르파 가족 돕는 데 앞장
 
서울 마포구 상암동 노을공원 입구에 있는 박영석산악문화센터 앞에서 홍경희씨가 남편 박영석 대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센터는 외관은 완성됐지만 자금난으로 내부 공사를 못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서울 마포구 상암동 노을공원 입구에 있는 박영석산악문화센터 앞에서 홍경희씨가 남편 박영석 대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센터는 외관은 완성됐지만 자금난으로 내부 공사를 못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파주 신세계첼시 아울렛에 있는 노스페이스 매장을 운영하고요, 애들이 있는 뉴질랜드에는 1년에 한번 정도 갑니다. 오히려 네팔을 더 자주 가죠. 박대장과 함께 등반하다 사고를 당한 셰르파 가족을 찾아내 돕고 있어요. 전에는 나보다 잘사는 사람이 부럽고, 그런 생각 하면 힘들고 그랬거든요. 사고 후에는 내 주위에 좋은 사람이 정말 많고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있는 돈 탈탈 털어서 주고 오면 새 희망과 에너지를 얻어요.”
 
상암동에 짓고 있는 박영석산악문화센터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외관은 다 만들어졌는데 예산이 없어서 지난 6월 이후 공사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문체부와 마포구에서 지원받은 60억원은 건물 짓는 데 몽땅 들어갔고요. 내부 인테리어와 각종 체험공간 공사비는 박영석탐험문화재단에서 모금을 해 충당하기로 했는데 잘 안 되고 있어요.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야죠.”
 
이 일에 앞장서게 된 계기는요.
“네팔에 가서 놀란 게 그분들이 박대장을 더 영웅으로 추모하고 기념탑도 만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석 달 정도 지나니까 서서히 잊히기 시작하대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시부모님 모시고 아이 둘 키우며 살림만 한 주부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마포구청장과 지역구 정청래 의원을 만나 ‘제가 아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탐험가로서 박영석이 세운 기록은 너무나 대단합니다. 뉴질랜드는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반한 힐러리경을 지폐(5달러)에도 넣는데, 마포에서 오래 산 박영석을 기리는 기념탑 하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하소연했죠. 그게 산악문화센터로까지 발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큰아들 성우는 골프선수 출신이라면서요.
“리디아 고의 선배고, 뉴질랜드에선 꽤 유망주였어요. 안타까운 건 아빠가 사고를 당한 뒤에 골프채를 놓아야 했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부담 때문에 골프채가 덜덜 떨렸대요. 뉴질랜드 시민권이 있어서 군대 안 가도 되는데 고민 끝에 군을 갔다 왔어요. 둘째 성민이는 얼굴이 동글동글해 아빠를 많이 닮았어요. ‘텐트에서 막 나온 박영석’이라고 합니다. 하하.”
박영석 대장의 두 아들이 어린 시절 그린 아빠 모습(왼쪽). 원정노트에는 아들을 생각해 무리한 도전을 포기하는 박대장의 심경이 적혀 있다. [사진 국립산악박물관]

박영석 대장의 두 아들이 어린 시절 그린 아빠 모습(왼쪽). 원정노트에는 아들을 생각해 무리한 도전을 포기하는 박대장의 심경이 적혀 있다. [사진 국립산악박물관]

 
아이들에게 박영석은 어떤 아빠였나요.
“남편으로선 빵점도 안 되는 마이너스지만 애들한테는 최고의 아빠였죠. 함께 산 시간은 길지 않지만 좋은 추억이 정말 많았고, 그게 애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이 됐어요. 애들한테 아빠는 항상 대장이고, 큰일을 하는 사람이었죠. 함께 있을 때만큼은 애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정 끝나고 돌아올 때 우리가 마중을 나간 적이 많아요. 온 가족이 진한 여행을 하는 거죠.”
 
박대장의 원정수첩을 보면 ‘경희야 성우야 보고싶다’ 같은 닭살 멘트가 많던데요.
“상암동 저희 집은 상암장여관이자 상암식당이었어요. 산악부 선후배들이 끊일 날이 없었죠. ‘성우엄마는 영원한 산악인의 형수님’이라고 했어요. 시집살이도 좀 힘들었죠. 박대장은 그걸 아니까 어떻게든 제게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함께한 좋은 추억이 늘 가슴에 살아 있어 ‘아빠는 지금도 긴 원정을 하고 있구나’ 싶어요.”
 
 
중3때 만나 10년 사귄 동갑내기 커플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고 전에 뭔가 낌새가 있었나요.
“우리집이 공항과 가까워 해외 원정 전날에는 늘 북적대고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지만 아침밥을 먹고 떠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근데 그때는 출발 전날 아빠가 ‘김치찜에다 된장찌개도 끓여서 저녁을 준비하라’고 전화를 했어요. 식구들끼리 저녁을 맛있게 먹고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쓰러져 자더라고요. 아침에도 밥상을 차리라고 하고, 후배 밥이 부족하다며 ‘왜 이리 밥을 적게 했냐’고 화를 냈어요. 사고 전전날이 음력 생일이어서 후발대 편에 생일상을 푸짐하게 차려 보냈죠. 집밥까지 잘 먹고 가 놓고 안 들어오네요. 그 뒤로 우리 애들이 먼 여행 간다고 하면 절대 집밥 안 차려줘요.”
 
가장 기억나는 박대장의 모습은요.
“엄청 장난 잘 치고, 순수한 개구쟁이였어요. 우리는 중학교 졸업할 무렵 설악산에서 만나서 10년 사귄 동갑내기 커플입니다. 사고 뒤에 성우아빠가 두 번 (꿈에) 찾아왔어요. 두번 다 너무나 앳되고 환한 모습이었어요.”
 
박영석 대장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홍경희씨는 “도전정신”이라고 말했다. “성우아빠 말 중에서 ‘1%의 가능성만 있어도 꿈을 꿔야 한다’는 게 가슴에 와 닿아요. 기념관을 추진하면서 그 말이 더 새겨집니다. 제 꿈은 박영석기념관 건립, 박영석의 정신과 업적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 대한민국 지폐에 박영석이 담기는 겁니다. 꿈으로 끝날지언정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조신하고 순종적이던 ‘박영석의 사람’은 단단하고 강해져 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눈가에 감돌던 물기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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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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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