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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서 바이스까지, 118년 노벨상 난민·이민자 우뚝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과학 강국들 국경없는 두뇌 유치
라이너 바이스 미국 MIT대 교수(왼쪽)가 지난해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바이스는 가족이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피신하면서 유아 때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했다. [AP=연합뉴스]

라이너 바이스 미국 MIT대 교수(왼쪽)가 지난해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바이스는 가족이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피신하면서 유아 때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했다. [AP=연합뉴스]

2018년 노벨상 발표가 일단락됐다. 다이너마이트 발명자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1901년 생긴 노벨상 중 생리의학·물리학·화학상은 매년 10월만 되면 전 세계 과학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국적별로는 올해까지 미국 377명, 영국 130명, 독일 108명, 프랑스 69명, 스웨덴 31명, 일본 28명 등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거의 국력 순이나 다름없다.
 
올해로 118주년을 맞은 노벨상의 역사 속에는 난민의 족적이 뚜렷하다고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보도했다. 포브스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노벨 생리의학상·물리학상·화학상 등 과학 분야에서 미국이 배출한 수상자 85명 가운데 33명은 이민자나 난민 출신이라고 전했다. 이는 수상자의 39%에 해당한다. 분야별로는 물리학상(18명 중 12명)이 40%이며 화학상(18명 중 11명)과 생리의학상(16명 가운데 10명)이 각각 38%다.
 
미국은 오랫동안 해외 두뇌를 유치해 자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거나 유지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과학기술은 물론 경제를 비롯한 민생에도 큰 도움이 돼왔다. 이민자·난민 출신이 자신들의 과학적 재능과 혁신, 그리고 에너지를 자신을 받아준 나라와 공유했기 때문이다. 미국정책재단은 “성공한 기업인이나 세상을 바꾸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과학자들에게 이미 정책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더 많은 이민자와 해외 학생· 연구자들에 대한 문호 개방을 요청한다”라고 밝혔다.
 
사실 미국의 해외 두뇌 유치는 역사가 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캐나다가 함께 참여한 핵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계획’은 줄리어스 오펜하이머(1904~1967년)를 비롯한 미국 출신 과학자와 더불어 숱한 난민 출신 과학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원폭 개발은 미국 과학자만으론 어려웠고 나치 박해로 미국으로 이주한 난민 과학자들이 가세하면서 비로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1901~1954)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38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유대인 탄압법을 만들자 유대계인 부인의 신변을 걱정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원자탄 개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원폭의 설계자’로 불렸다. 헝가리 유대인 출신으로 독일에서 연구하다 나치 압박으로 미국으로 탈출한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1908~2003)는 맨해튼 계획에서 활동한 것은 물론 수소폭탄 개발도 주장해 ‘수폭의 아버지’로 불렸다. 나치주의자와 파시스트는 인간을 차별하는 그릇된 이념 탓에 기껏 기른 과학 두뇌를 외국에 내줬다.
 
난민 신분으로 이주해 미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왼쪽 사진)과 엔리코 페르미. [중앙포토]

난민 신분으로 이주해 미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왼쪽 사진)과 엔리코 페르미. [중앙포토]

나치의 반유대주의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이나 미국으로 옮긴 과학자는 허다하다. 당시 독일이 잃은 두뇌 중 결정타는 알베르트 아이슈타인(18879~1955년)이다.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아인슈타인이 인류에 남긴 과학적 업적은 엄청나다. 유대인인 그는 1933년 1월 반유대주의를 내세운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수립됐을 당시 마침 미국에 있었다. 이 때문에 신변 위협과 수모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의 독일 집은 괴한의 습격으로 파괴됐다. 독일에서 그의 논문과 업적은 ‘유대인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공격당했고 출판이 금지됐다. 그는 잠시 유럽으로 건너가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독일 영사관에서 독일 국적을 포기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저지주 프린스턴대에 새롭게 설립된 고등연구소에 합류했다.
 
양자역학 초기 개척자인 막스 보른(1882~1970년)은 유대인 탄압법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교수 직을 잃자 영국으로 건너갔다. 에든버러대에서 연구를 계속했으며 54년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가수 올리비아 뉴턴존의 외할아버지다.
 
중고교 생물시간에 배우는 ‘크렙스 회로’를 찾아낸 독일 생화학자 한스크렙스(1900~81년)는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다는 이유로 나치의 핍박을 받았다. 영국으로 몸을 피해 옥스퍼드대에서 교수로 일했는데 세포가 에너지를 얻는 세포호흡을 연구해 5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양자물리학자인 에르빈 슈뢰딩거(1887~1961년)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1933년 나치가 집권하고 38년 오스트리아 병합, 39년 2차대전 발발을 겪으면서 각각 영국과 이탈리아로 옮겼다. 최종적으로는 중립국인 아일랜드에 망명해 정년까지 일했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또는 단독으로 나치 치하를 탈출해 영국을 거쳐 캐나다나 미국으로 이주한 어린이 난민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과학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노벨상을 탄 경우도 있다. 미국 MIT의 라이너 바이스 교수(86)는 유대인 공산주의자인 아버지와 기독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이듬해 나치가 집권하자 피신한 가족과 함께 미국에 도착했다. 1살짜리 영유아 난민이었다. 바이스 교수는 2017년 중력파 존재를 실험으로 입증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우주 탄생을 증명하는 중요한 발견이다.
 
9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월터 콘(1923~ 2016년)은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직후 유대인 어린이 구출 프로젝트인 ‘킨더트랜스포터 작전’을 통해 가족 없이 홀로 영국으로 옮겨졌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 교수로 활동했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을 발견해 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아르노 펜지어스(85)는 독일 뮌헨 출신으로 6살 때 형제가 나란히 ‘킨더트랜스포터 작전’으로 영국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부모도 탈출해 40년 미국에서 합류했다. 컬럼비아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벨 연구소에 근무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그의 발견은 빅뱅을 통해 우주가 탄생했다는 증거로 인용된다.
 
독일의 드레스덴 공대는 자국에 유입된 시리아 난민 중 수학과 과학 실력이 뛰어난 학생을 대학원생으로 받아들이거나 산하 연구소에서 고용하고 있다. 단순히 ‘양심’에 따른 난민 기회 제공 수준을 넘어선다. 한 명의 과학 두뇌가 수많은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다기 때문에 과학입국을 위해 출신을 가리지 않고 인재 확보에 나선 셈이다.
 
유네스코에서 발행하는 잡지인 ‘쿠리에’는 최근 난민들이 유럽을 비롯한 각국에서 정착이 거부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의 교훈을 현재에 가르쳐야 미래의 위기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난민이든 이민이든 출신을 가리지 않고 과학입국을 위한 과학기술 인재를 확보할 때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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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