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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허세를 떨거나, 짐짓 모른 척 하거나

책 속으로
낭만주의

낭만주의

낭만주의
박형서 지음
문학동네
 
N.E.W.(뉴)
김사과 지음
문학과지성사
 
여름에 출간된 소설책을 가을에 읽는다. 놓쳤던 책들이다. 뒤늦게 소개할 만큼 의미가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의미에는 재미도 포함된다. 재미있으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게 한다.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소설이라는 관습. 누군가가 골방에 혹은 카페에 웅크리고 앉아 낑낑대며 써낸 허구의 서사를 우리는 현실의 반영이겠거니 여기며 읽는다. 어떤 경우 우리는 교훈마저 얻으려고 눈에 불을 켠다. 그렇게 소설책이라는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되기 전에, 작가의 손끝을 떠난 텍스트는 일차적으로 출판사 편집자들의 감식안을 거친다. 책으로 만들만한 원고인가. 의미도 있고 시장에서 팔릴 가능성도 있나. 종이책 형태로 유통되면서 공적·사적 평가가 뒤따른다. ‘공적’은 문단 혹은 평단의 평가. 문학성이라는 잣대에 따른 값어치가 매겨진다. ‘사적’은 독자 개인의 만족도.
 
N.E.W.(뉴)

N.E.W.(뉴)

이런 소설 관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두 소설책은 낯설다. 작심한 모더니즘 실험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의 관습, 그 안에서 표준적이라고 여겨지는 평균치적인 형태에서 꽤 벗어나 있다. 거짓말이지만 참말이라고 믿는 척하고 읽어달라, 오냐 그러겠다는, 작가와 독자와의 공모 관계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깜빡 속아 넘어갈 만한 진짜 같은 가짜, 실제를 방불케 하는 모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박형서의 소설집의 경우 그런 생각을 제목에서 비친 것 같다. ‘작가의 말’을 보면 제목의 의미가 짐작된다. “두 세기 전에 유행했던 한편으론 촌스럽고 또 한편으론 신비로운 저 요란한 허세 속에 서사의 항구적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본다고 썼다. 두 세기 전 복고 취향이니 ‘낭만주의’다. 복고의 포인트는 요란한 허세. 촘촘한 사실주의가 아니라 과장을 한껏 담은 이야기들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게 작가의 본분이라고 박씨는 믿는 듯하다.
 
소설가 박형서(왼쪽)씨와 김사과씨. 현실 재현에 치중하기보다 읽히는 재미에 방점을 찍은 소설책을 출간했다. [중앙포토]

소설가 박형서(왼쪽)씨와 김사과씨. 현실 재현에 치중하기보다 읽히는 재미에 방점을 찍은 소설책을 출간했다. [중앙포토]

김사과의 장편소설도 역시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일단 새롭다(뉴)는 뜻 아닌가. 팔자 고치는 게 꿈인 여성 유튜버 이하나가 재벌가 외아들의 코를 꿰는 데 거의 성공했다가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그런 면에서 ‘리얼’하게 버려지는 얘기인데, 이런 이야기 전개 과정을 통해 소수점 이하 %의 상류층, 그들의 돈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부류들의 속물근성을 소상하게 그린다. 한데 작가의 위치가 소설 세계 안으로 들어와 있다기보다는 무성영화 변사처럼 이야기 바깥에서 중계하는 식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착실한 리얼리즘 소설은 아니다. 게다가 김사과는 한없이 무뚝뚝하다. 소설책을 낸 소감, 작가의 말 한 줄이 없다. 물론 해설도, 책 뒤표지 추천사도 없다. 뭘 그런 걸 다, 이런 식이다.
 
‘크게 두 가지’ 중 나머지 하나는, 지금까지 설명한 두 작가의 거리 두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소설에는 현실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돌아가는 꼴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사과 소설이 흥미롭다면 박형서 소설은 낄낄거리며 읽게 되는데 단편 ‘시간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닭 종자가 모두 멸종해, 어딘가 남아 있을지 모르는 닭 종자를 찾아 나선다는 설정이다. 수많은 닭들이 각종 치킨의 형태로 매일의 식탁 위에 오르는데 닭 종자가 씨가 마른다니 무슨 소리냐. 단백질을 얻기 위해 대량 사육 도축 유통되는 식탁의 닭은, 신이 창조한 자연 상태의 생물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인공 생물이라는 게 소설이 품은 희미한 메시지다. 생태 교훈을 주려는 게 소설의 목적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N. E. W.』의 소설 속 현실은 아무래도 『낭만주의』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다. 재벌 아들 정지용이 이하나와 바람을 피우는 데도 아내 최영주가 치명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도를 넘어서면 재벌가 며느리 자리를 잃게 돼서다. 한없이 매끄럽고 퇴폐적인 세계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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