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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제3차 한류 붐, 일본 아이돌 팬 눈을 높였다

일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일본의 인기 걸그룹 AKB48이 참가해 화제를 모은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 출연자들. K팝은 일본 아이돌과 그 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TV화면 캡처]

일본의 인기 걸그룹 AKB48이 참가해 화제를 모은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 출연자들. K팝은 일본 아이돌과 그 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TV화면 캡처]

지난 추석 연휴 때 일본 오사카 집에 갔다가 K팝을 사랑하는 일본 친구와 함께 한국 걸그룹 라붐(LABOUM)의 행사를 보게 되었다. 집 근처 쇼핑몰에서 열리는 프로모션 행사였다. 오는 11월 정식으로 일본에서 데뷔하기 전에 작은 무대에서 몇 곡 들려준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 2014년 데뷔한 라붐의 노래와 춤은 완벽했고, 열광적인 팬들은 무대 바로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응원했다. 쇼핑하러 온 사람들도 “가와이(멋지다)~!”라고 외치며 발길을 멈췄다.
 
일본에선 지금 제3차 한류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 멤버들도 활약하고 있는 트와이스(TWICE)나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방탄소년단(BTS) 등이 이끄는 붐이다. 팬은 10~20대가 중심이다. 귀국할 때마다 CD숍의 K팝 코너가 넓어지는 걸 보고 붐을 실감한다. 제1차 붐은 2000년대 전반 드라마 ‘겨울연가’를 비롯한 드라마 중심이었다. 팬은 대부분 중년 여성들이었고 ‘용사마(배용준 배우)’에 꽂힌 아줌마가 속출했다. 제2차 붐은 2000년대 후반 동방신기나 카라(KARA), 소녀시대 등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을 때 있었다. 2011년에는 일본에서 최고로 인기 많은 음악 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에도 출연했다. 붐의 중심이 드라마에서 K팝으로 바뀌면서 팬층도 젊은 세대, 그리고 남성까지 확대했다.
 
 
K팝 한류, 한·일 관계에 영향 안 받아
 
흔히 역사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악화하면서 제2차 붐은 식어버렸다고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에 안 나오게 된 것뿐이지 일본에서 열리는 공연 중 관객 수 랭킹을 보면 여전히 상위권에 빅뱅(BIGBANG) 등 K팝 그룹이 많았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어서 동영상을 보고, 공연에 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프로듀스48’ 방송 기간 중에 팬들이 서울 홍대앞에 설치한 간판.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야부키 나코는 아이즈원 데뷔 멤버에 선정됐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프로듀스48’ 방송 기간 중에 팬들이 서울 홍대앞에 설치한 간판.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야부키 나코는 아이즈원 데뷔 멤버에 선정됐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일본다운 아이돌로 인기를 얻고 있는 걸그룹이 AKB48 그룹이다. AKB는 도쿄 아키하바라(東京·秋葉原)를 뜻한다. 아키하바라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좋아하는 ‘오타쿠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키하바라에 전용극장을 가진 AKB48은 2005년에 데뷔했다. 데뷔 당시 ‘오타쿠가 좋아할 만한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2005년은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데뷔한 시기이기도 하다. 제2차 한류 붐 속에서 AKB48가 전국적인 인기를 얻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2010년에 발매한 곡 ‘헤비 로테이션(Heavy Rotation)’이 히트 치면서 ‘국민적 아아돌’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 후 AKB48의 자매 그룹으로 오사카 난바(大阪·難波)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NMB48, 후쿠오카 하카타(福岡·博多)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HKT48 등이 잇따라 등장하여 현재 해외 멤버까지 포함해서 AKB48 그룹 전체로 600명이 넘는 멤버가 소속돼 있다.
 
최근 AKB48 그룹 멤버들이 한국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에 참가해서 화제가 됐다. 데뷔를 목표로 참가한 96명 중 39명이 AKB48 그룹 멤버였다. 최종적으로 아이즈원(IZ*ONE)으로 데뷔하게 된 12명 중 AKB48 그룹 멤버가 3명이었다는 것은 일본인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AKB48 노래·춤, 한국 연습생보다 못해
 
사실 ‘프로듀스48’이 시작하기 전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 친구들 사이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AKB48 그룹 멤버들이 노래나 춤 실력으로 한국 연습생들을 못 따라갈 거라는 걱정이었다. 첫 방송에서 걱정이 현실이 됐다. 심사위원한테 “무대에 서기엔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우는 멤버들도 많았다. 마음이 아파서 못 볼 정도였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왜 이미 데뷔해서 활동하고 있는 AKB48 그룹 멤버들이 한국의 아직 데뷔하기 전의 연습생들보다 노래나 춤을 못 하는지 의문을 가졌을 수도 있다. 타고난 능력 차이도 있겠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잘하는 모습을 보니 일본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예전부터 일본과 한국 아이돌의 차이는 팬들의 취향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일본 팬들은 완벽함을 원하지 않는다. 미숙한 아이돌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미숙한 상태로 데뷔하는 것이다. 앞으로 성장할 거라는 가능성을 일찍부터 보고 응원하는 것이 일본 팬들이 즐기는 방식이다. 특히 AKB48은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게 특징이다. CD를 구입하면 멤버들과 악수를 할 수 있고 ‘총선거’의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다음에 발매하는 CD의 곡을 노래하는 멤버를 팬들이 투표해서 선발하는 ‘총선거’는 시청률이 20%를 넘은 적도 있을 정도로 주목받는 이벤트다. 많이 투표하고 싶으면 CD를 많이 사면 된다. 내 주변에도 CD를 몇백 장 사는 팬이 있다. 즉 팬들은 AKB48 그룹 안에서의 경쟁에 참여하면서 즐기는 것이다.
 
반면 한국 아이돌은 몇 년 동안 연습생으로 노래나 춤을 배우고 완성도 높은 상태로 데뷔한다. 그 완벽한 노래와 춤은 동영상으로 세계에 퍼진다. 전형적인 예가 방탄소년단이다. 한국어 가사의 뜻을 몰라도 그들의 퍼포먼스 매력은 전 세계에 통하는 것이다. 일본 아이돌의 판매전략이 국내만 향하고 있다면 한국은 해외로 향하고 있다. 일본 인구는 약 1억2700만 명이다. 한국 인구 5100만 명의 2.5배다. 그런데 이제 일본도 국내만 생각하면 되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
 
 
아마추어 취향 팬덤 세계 무대에선 한계
 
일본 오사카의 CD숍에 자리 잡은 K팝 코너. [사진 나리카와 아야]

일본 오사카의 CD숍에 자리 잡은 K팝 코너. [사진 나리카와 아야]

동영상이나 콘서트에서 K팝 아이돌의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보고 자란 일본의 10대나 20대들은 일본의 미숙한 아이돌의 퍼포먼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내 음악 시장에서 점점 K팝의 존재감이 커지는 어려운 상황에서 AKB48 그룹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는 ‘프로듀스48’에 참여해서 K팝의 힘을 빌리려고 한 것 아닐까.
 
그런데 일본 팬들의 아마추어 취향에도 역사가 있다. 예를 들어 창설 100주년을 넘은 ‘다카라즈카 가극단(寶塚歌劇團)’이 그렇다. 극단원이 모두 여성이며 남성 역할도 여성이 연기하는 특수한 극단인데 여성 팬들이 엄청 많다. 본거지 효고현 다카라즈카시(兵庫縣 寶塚市)와 도쿄에 전용 극장을 가지고 있으며 1년 내내 공연을 하는데 티켓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극단원은 2년제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졸업생이며 데뷔할 때는 모두 미숙한 상태이다. 팬들은 데뷔 공연부터 지켜보면서 그 성장 과정을 즐긴다. 남성 역 톱스타를 정점으로 서열이 확실하며 그 서열에 따라 배역이 정해진다. 서열은 극단원마다 있는 팬클럽의 티켓 판매 수 등 인기를 고려해서 정해진다.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극단원의 서열이 올라가서 조금이라도 좋은 역할을 맡아 무대 위에서 빛나는 순간을 보고 싶어서 열심히 티켓을 팔려고 한다. AKB48 그룹의 ‘총선거’와 비슷한 시스템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에도 시대부터 유행한 스모(相撲)나 가부키(歌舞伎)에도 그 원형을 볼 수 있다. 팬은 스폰서가 되며 자신이 좋아하는 스모 선수나 가부키 배우가 성장하며 순위(서열)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다양한 오락이 생긴 현재도 꾸준히 스모나 가부키가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좋아하는 선수나 배우가 은퇴해도 또 다른 선수나 배우가 나타나 성장 과정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프로 야구 못지않게 고등학교 야구 대회가 사랑받는 것도 아마추어 취향의 하나로 보인다.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는 일본 국민성인 것 같다.
 
아이즈원 데뷔까지의 과정을 봐도 그렇다. AKB48 그룹 멤버들이 일본에서 경험해 본 적 없는 엄격한 지도를 받아 울면서 노래와 춤을 배우며 시청자들에게 열심히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과거에 AKB48 그룹 멤버의 일부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욱일기를 붙인 의상을 입은 것 등 때문에 아키모토가 한국에서 ‘우익’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아이즈원이 앞으로 한·일 양국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데뷔 후의 성장 과정도 지켜보고 싶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과 한국(TV REPORT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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