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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편집국장레터]성선설의 김정은, 성악설의 김정은

 “우리 허락없인 안할 거요(They won't do it without our approval)”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만나 한 얘기입니다. ‘한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데 대한 대답입니다. 말투가 퉁명스럽습니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는 ‘blunt’라는 단어를 기사에 썼습니다.
이도훈(왼쪽 둘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오른쪽 둘째)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외교부에서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도훈(왼쪽 둘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오른쪽 둘째)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외교부에서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VIP독자 여러분, 중앙SUNDAY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위태롭습니다. 한미 관계가. 영어권 외신기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허락, 승인이라는 의미를 지닌 ‘approval’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지. 모두들 “노(no)”라고 했습니다. 그런 만큼 이 단어 속에는 한국 정부를 대하는 트럼프의 부정적인 인식이 담겨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미국 내에선 발언 당사자가 트럼프다보니 크게 무게를 두진 않는다고 합니다. 걱정인 건 트럼프 발언에 담긴 한미동맹을 보는 시각이라고 했습니다. 동맹의 균열을 엿볼 수 있는 징후는 이번 주에 드러난 것만 세 번째입니다.
 지난달 평양정상회담에서 남북군사합의서가 채택되기 하루 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와 40분동안 항의를 한 게 일본 언론의 보도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남북군사합의서에 미국이 모르는 내용이 담긴 사실을 알고 화를 냈다는 겁니다. 그동안 폼페이오 장관과 강 장관은 외교 용어로 ‘케미가 잘 맞는” 사이였지만 대북관의 차이 앞에선 날 선 대화가 오갈 수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한미관계의 위태로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에게 항의 전화를 한 이튿날 미 재무부는 국내 은행 관계자들을 불러모은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거나 풀어선 안된다는 사실을 수 차례 강조했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를 못 믿으니 은행들을 상대로 직접 경고했다는 겁니다.
 
 트럼프의 신경은 지금 온통 중간선거(11월6일)에 가 있습니다. 미국 선거예측기관인 파이브서티에이트는 하원이 여소야대가 될 확률이 무려 77.8%(12일 현재)라고 전망했습니다. 중간선거 결과 여소야대가 되면 4년 임기의 후반부는 고달퍼집니다. 자칫 재선도 위험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의 북한을 보는 트럼프의 마음은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가 다릅니다. 겉으론 김정은과 협상의 끈을 놓지 않기위해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는 낯간지러운 말까지 동원합니다. 만약 협상이 깨지고 북한이 11월6일에 임박해 미사일이라도 쏘는 날이면 41.8%의 불안한 지지율을 안고있는 트럼프에겐 실패한 외교의 후과까지 닥칠 겁니다. 북미 2차정상회담 시기가 선거 이후로 미뤄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협상 밖으로 김정은을 내몰지 않아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자리합니다. 하지만 북한을 보는 트럼프의 혼네는 불신입니다. 그 불신은 지난 20여년 간 북한과 해온 협상과 회담의 경험에서 싹텄습니다. 6ㆍ12 싱가포르 회담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손에 들고있는 제재를 절대로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바탕으로 비핵화를 풀겠다며 제재 완화를 종용하는 한국 정부를 못미더워 하는 것도 그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문재인 정부가 보는 김정은의 북한이 성선설 쪽인 반면, 트럼프 정부가 보는 김정은의 북한은 성악설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김정은과 세기의 밀당을 하고 있는 트럼프로선 김정은을 역성 드는 문재인 정부가 못마땅할 수 있습니다. 중재자라기 보다는 2대1로 상대한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제재를 둘러싸고 한미 간에 잡음이 생기는 건 이런 배경에섭니다.
 
 강경화 장관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연합뉴스]

강경화 장관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연합뉴스]

 문제는 미국과 트럼프가 가진 불신을 씻어내지 못한다면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남북관계 개선은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지금의 남북관계는 유엔의 대북 제재라는 틀에 갇혀 있습니다. 유엔 제재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 제재가 느슨해져야 1,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쌓은 성과는 남북 경협이라는 3차 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려면 한미관계가 긴밀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걸 만들어내는 게 외교이고, 외교관들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외교부에서 대미통들을 솎아내는 모순적인 인사를 했습니다. 지금의 강경화 장관, 조현 1차관, 이태호 2차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통과는 거리가 먼 다자외교, 통상외교 전문가들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외교부가 ‘한미동맹부’였고, 박근혜 정부 들어와선 ‘대북제재부’가 돼버렸다”(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인식이 외교부 인사에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외교부는 한미동맹과 거리를 둔 부처가 됐습니다. 한미관계의 위태로움을 해결할, 트럼프의 불신을 씻어줄, 외교 해결사들이 절실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외교관계는 사람이 만듭니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져야 국가 관계에도 생명이 깃들 수 있습니다.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사라지자 한때 외교채널의 주역이었던 정의용 안보실장의 역할이 축소된 것도 그런 이치입니다. 독립과 자주는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선 큰 가치지만 외교에선 내세우지 않을수록 유리합니다. 우리의 국익이 중요하듯이 상대국도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게 외교입니다. 국가와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는 외교 협상에서 50.00001대 49.99999면 ‘대승’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입니다. 한국 외교부에서 한미동맹파들이 쫓겨난 걸 미국 정부라고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외교에선 동맹 대 자주, 미국 대 북한 식의 이분법이 위험하고 또 위험한 겁니다.  
 한때 한미동맹파였다가 지금은 은퇴한 어느 외교관의 말입니다.  “우리의 과거 외교가 한미동맹에 너무 편중됐다고 하지만, 한미동맹 없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지금 절감하고 있지 않나요.”
 
지난 주 중앙SUNDAY는 한글 폰트의 진화를 스페셜리포트로 다뤘습니다.
젊은 글꼴을 찾아서···‘600세 한글’ 예술이 되다
아버지, 아들을 합쳐 3대째 한국의 지질만 연구해온 이수곤 교수 스토리도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산사태 현장마다 이수곤 교수, 알고 보니 3대가 지질학 전공
 
 
 이번 주에는 미-중 무역전쟁 100일과, 학교 교육 속으로 들어간 명상 얘기를 스페셜리포트로 다룹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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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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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