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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전국체전…가뜩이나 열기 없는데 '대통령 불참'까지

제99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11일 주경기장인 전북 익산시 익산 종합경기장에서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 주경기장 무대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모티브로 만들었으며 전라도 정도 1000년의 해를 맞아 개막식에는 천년 전북의 역사와 정신이 함축된 공연이 펼쳐진다. [뉴스1]

제99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11일 주경기장인 전북 익산시 익산 종합경기장에서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 주경기장 무대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모티브로 만들었으며 전라도 정도 1000년의 해를 맞아 개막식에는 천년 전북의 역사와 정신이 함축된 공연이 펼쳐진다. [뉴스1]

남: "오늘이 '전국체전'이래.
여: "그래서?"

 
12일 전북 한 대학가에서 남녀 대학생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99년 역사를 가진 '국내 최대 스포츠 축제'가 이날 전북 익산에서 개막하지만 체전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를 대표하는 선수와 임원 3만 명이 일주일간 기량을 겨룰 예정이지만 일각에서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체전은 한때 '국민 화합의 장'이자 박태환·김연아 등 숱한 스포츠 스타를 배출한 산실로 통했다. 특히 15년 만에 대회가 열리는 전북은 첫 전국체전을 주최한 1963년 도민 모금 운동으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적이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초등학생 1원, 중·고등학생 3원, 직장인 50원 등 도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 3100만원(지금 돈 35억원)으로 전체 행사비(8100만원)의 37%를 충당했다. 짜장면 한 그릇이 3원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강조한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도 그가 체전이 열린 전주종합경기장 준공식을 보고 놀란 뒤 만들었다는 게 체육계의 중론이다.  

 
지난 8일 오전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광장에서 송하진(오른쪽) 전북도지사가 첫 주자인 펜싱 국가대표 김지연 선수에게 성화를 전달하고 있다. 이날 출발하는 성화는 도내 990km의 대장정을 거쳐 주개최지인 익산시에 안치될 예정이다. [뉴스1]

지난 8일 오전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광장에서 송하진(오른쪽) 전북도지사가 첫 주자인 펜싱 국가대표 김지연 선수에게 성화를 전달하고 있다. 이날 출발하는 성화는 도내 990km의 대장정을 거쳐 주개최지인 익산시에 안치될 예정이다. [뉴스1]

이처럼 대회마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서 각본 없는 '감동 드라마'를 써온 전국체전이 어쩌다 국민들이 외면하는 초라한 대회가 됐을까. 심지어 올해 대회는 같은 날 열리는 한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보다 관심을 못 받는 모양새다. 당초 개막식에 오기로 한 문재인 대통령이 불참하기로 하면서 더 서러운 처지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충북에서 열린 98회 대회 개막식엔 참석했다.

 
역대 전국체전 개막식에 대통령이 불참한 경우는 네 번(2004년, 2009년, 2010년, 2015년)뿐이다. 대부분 국외 일정 때문이었다. 11일 제주도 관함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13일 7박 9일 일정의 유럽 순방을 위해 출국하지만, 개막식 당일엔 국내에 머무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0일 충북 충주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선수단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0일 충북 충주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선수단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 때문에 전북 지역에서는 '전북 패싱'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평화당 전북도당은 11일 성명을 내고 "군산 GM 사태와 새만금 공항 추진 불투명, 기금운용본부 전북 이전 흔들기 등으로 전북 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와중에 대통령마저 전국체전 개막식에 불참하는 것은 또 하나의 '전북 패싱'"이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올해 전북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예산(896억원)이 지난해 충북 대회(1800억원)보다 1000억원가량 줄어 지역에선 "정부가 전북을 홀대한다"는 반발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전국체전 규모가 축소되고, 전국적 이슈가 되지 못하는 배경에 정치적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국체전에 관심이 쏠리면 정부가 올인하는 남북 관계 이슈가 묻힐 수 있어서다. 전국체전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체육인이 중심이 되지 않고 관이 대회를 주도하다 보니 대중의 취향과 동떨어진 '정치적 행사'로 변질됐다"는 주장이다.
 
제99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을 2일 앞둔 10일 주경기장인 전북 익산시 익산 종합경기장에서 공개 리허설이 열리고 있다. [뉴스1]

제99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을 2일 앞둔 10일 주경기장인 전북 익산시 익산 종합경기장에서 공개 리허설이 열리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시대 변화에 맞게 전국체전의 위상·규모·방식 등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북도체육회 상임고문인 이인철(91) 체육발전연구원장은 "전국체전은 지역·이념·계층 갈등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스포츠를 매개로 흩어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이 대회를 국민 대통합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북체육사(史)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이 원장은 '전북 패싱론'에 대해 "정부가 '평화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정작 평화의 전제인 내부 단합의 기회(전국체전)가 왔는데도 왜 못 살리는지 모르겠다"며 "더구나 이번 체전은 위안부 문제 등을 두고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우리 정부가 2년 뒤 일본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을 이기기 위한 준비 과정이어서 반드시 성공적으로 마쳐야 하는 대회"라고 말했다. 
익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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