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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연애소설> 타고난 실력이란 뭐죠? 까칠하게 물었다

기자
심상복 사진 심상복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제3화

나는 그녀의 메일을 프린트해 내 글과 한 자 한 자 대조해 봤다. 역시 고수였다. 그녀가 다듬은 글은 깔끔했다. 반박할 곳이 없었다. 예상대로 국어 선생님이나 학원 강사, 아니면 4차원의 소설가 지망생? 혹시 이미 등단한 작가는 아닐까. 그런데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왜 작가에겐 특유의 직업적 이미지가 풍기지 않는가. 저렇게 가냘프고 우아한 여인은 30억쯤 하는 반포 재건축아파트 거실이나 현대백화점 VIP 고객인 쟈스민 회원과 더 잘 어울릴 거 같았다.
 
하여튼 일은 전혀 뜻밖으로 진행될 판이었다. '본인의 글과 비교해 보시고, 의견 있으면 듣기를 원합니다.' 매우 공식적인 말투였다. 글에 관한 토론만 환영한다는 거였다. 연애는 고사하고 어느 날 하늘에서 작문 독선생이 떨어진 것일까. 하긴 이런 식의 연애도 가능하지 말란 법은 없다. 작문과 첨삭지도가 매개체인 매우 특이한 연애 말이다. 이참에 공짜로 글이나 배워 책이나 한 권 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훗날 고민할 문제이고, 지금의 내 관심은 온통 그녀 자체였다. 궁금한 건 너무 많았지만 사적인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런 때 혹시 내 전공이 도움될지 모르겠군.
나는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던 심리학책을 꺼내 들었다.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마침 눈길을 끄는 소제목이 보였다.
<언행으로 추리하는 성격>. 약 한 달간 지켜본 것으로 그녀의 결혼 여부부터 추론해 보기로 했다.  
1. 나이는 대략 내 또래로 보인다. 저런 멋진 여자가 아직 싱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매우 작아 보인다.  
2. 글에 집착하고, 남의 글에 바로 점수를 매기고, 고친 글을 자신 있게 내놓는 거로 볼 때 이 분야 전문가다. 그냥 전문가가 아니라 병적인 수준이다. 이런 성격은 결혼을 안 했거나 못했을 수 있다.  
3.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쯤 도서관에 나타난다.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낸 뒤 간단히 집안 정리하고 오기에 적합한 시간이다. 다른 날은 요가 교실을 다니고 골프를 배우고 있을까.  
4. 도서관에 벤츠 타고 온 걸 한번 봤다. 어느 날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그녀를 몰래 따라가다 확인했다. 흔한 모델이 아니었다. 노란색 쿠페였는데 그녀와 무척 잘 어울렸다. 뚜렷한 직업도 없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저런 차를 타는 건 본래 집이 부자이거나 부잣집에 시집간 경우다. 혹시 이혼하면서 받은 차인지도 모른다. 돌싱의 가능성도 있다.
 
스스로도 심리학 전공자의 분석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싱글, 유부녀, 돌싱 세 가지 경우를 모두 언급한 것이었다. 대학 평균 학점이 3.0도 안 됐던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결혼 여부는 현재로썬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명씨는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고치고 싶어 견딜 수 없다고 했는데, 저는 무명씨의 결혼 여부가 궁금해 견딜 수 없습니다. 저는 30대 후반인데 아직 싱글입니다. 사적인 질문은 사양한다고 했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고 싶습니다."  
 
전송키를 누른 뒤 나는 잠깐 후회했다. 글에 목숨 거는 여자에게 좀 더 고민한 흔적을 보이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궁금하면 가까운 주민센터를 방문해 보세요. 직원에게 5만 원짜리 하나만 집어주면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줄 겁니다."
역시 버릇도 없고 막무가내 스타일이었다.  
 
그녀, 참 어렵다
 
-아, 이 일방적인 관계를 어찌할 것인가.  
그녀와의 관계에서 나에겐 밀당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전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으면 신상에 관한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내 딴에는 꽤 단호하게 나갔다. 그녀는 궁금하지 않다고 했다. 초장부터 왜 사람을 자꾸 피곤하게 만드느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라는 말도 했다. 그때 아바의 '안단테 안단테'란 노래가 떠올랐다. 영화 '맘마미아 2'의 삽입곡인데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이만큼 훌륭한 조언은 없을 듯싶은 가사와 멜로디였다. 조급하게 굴지 말라는 말은, 유부녀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까. 나는 내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먹구름이 걷히는 기분이었다.  
 
-이런 여자에겐 안단테 안단테, 슬로우 슬로우가 좋은 전략일지도 몰라.
나는 좀 더 여유를 갖고 그녀를 대하기로 했다. 메일도 뜸하게 보낼 생각이었다.  
무려 닷새나 연락(물론 이메일이다)을 참은 뒤 나는 소재를 바꿔 이런 글을 보냈다.
 
"지인이 보내온 카톡에 좋은 글이 있어 보내드립니다.  
핸드폰 번호만 알려주었으면 카피해서 붙이면 그만인데 이걸 다 자판을 두드려 입력한 수고는 인정해 주세요. ㅎ
 
사랑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친구가 있고
선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외롭지 않고
정의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함께 하는 자가 있고
진리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듣는 사람이 있으며
자비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평이 있으며
진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진실이 있으며
성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믿음이 있으며
부지런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즐거움이 있으며
겸손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목이 있으며  
거짓 속삭임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신이 있고
게으름과 태만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멸시 천대가 있고  
사리사욕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원망 불평이 있고
차별 편벽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화가 있다"
 
의외로 답이 빨리 왔다. 그런데 매우 실망스러웠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딱 넉 자였다. 그러면서 숙제까지 안겼다. 어떤 부분이 이런 소리를 듣게 하는지 그걸 찾아내 다시 보내라는 것이었다. 작은 선물 하나 들고 친구를 찾아갔는데 이것도 선물이냐며 문전박대당한 꼴이었다.
-아, 이 여자, 좋은 걸 좋은 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그저 모든 것에서 흠을 찾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 속이 꼬여도 한참 꼬여 있는 사람….
실망하면서도 오기가 발동했다. 뭐가 그리 잘못된 글인지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과유불급이라고요? 좋은 건 좀 많아도 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좋은 말들이 너무 많아 산만하다면, 그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몇 구절만 새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 꼭 그렇게 과유불급이란 한마디로 면박을 주면 속이 시원합니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이렇게 정리한 글을 보내왔다.  
 
"사랑을 가지고 가는 자는 어디서든 친구가 있고
정의를 가지고 가는 자는 함께하는 자가 있고
진리를 가지고 가는 자는 듣는 사람이 있으며
겸손을 가지고 가는 자는 화목이 있다.
거짓을 가지고 가는 자는 어디서든 불신을 사고
사욕을 가지고 가는 자는 원망이 넘치며
차별을 가지고 가는 자는 불화를 낳는다."
 
역시 깔끔했다. 지적을 받고 내가 보낸 글을 다시 읽어보니 장황하고 의미가 중첩된 문구가 많았다. 글에 관해서는 도저히 그녀를 이기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사부로 모시고 제대로 배우는 것이 온당한 처사가 아닐까. 그녀의 글재주를 인정하고 칭송하다 보면 마음도 열리지 않을까. 공짜로 글도 배우고 마음도 얻는다면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닌가. SNS 시대에 한참 뒤진 이메일 통신을 하고 있지만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깔끔하게 정리된 글, 감사합니다. 글을 어떻게 쓰는지 잘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실력은 타고난 건가요, 아니면 누구에게 배운 건가요?"
 
"타고난 실력, 그게 뭐죠? 김천 씨에게 타고난 실력은 어떤 것인가요?"
 
내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그녀는 도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타고난 실력 같은 건 믿지 않는다는 뜻 같았는데 이런 식으로 그녀는 늘 날카로웠다. 역시 어려운 여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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