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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등산사] 부장검사 추락사 유감…그는 산행을 끝내지 못했다

[일상등산사]
 
설악산 암벽 등반 중 위에서 뭔가 떨어졌다. 오버행 구간(90도 이상의 경사)에서 다음 등반을 기다리던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아니 그녀의 눈을 똑똑히 봤다. 남자는 “그렇게 깊은 눈동자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맞다. 암벽등반은 위험하다. 야유회 성격이 강한 램블링(rambling), 정상에 연연하지 않는 스크램블링(srambling), 정상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 좀 더 기술이 필요한 클라이밍(climbing)이든 모든 산행은 위험을 안고 있다. 집 밖에 나서는 순간, 이미 위험한 세계로의 전출이 시작된다. 그래서 ‘산 들머리에서 날머리로’가 아니라 ‘집에서 다시 집으로’일 때 산행은 완성된다. 클라이머 정승권은 “우리가 등반을 할 수 있는 건,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클라이머의 손. 클라이머들은 육체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정신 트레이닝도 병행한다. 김홍준 기자

클라이머의 손. 클라이머들은 육체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정신 트레이닝도 병행한다. 김홍준 기자

 
추락에 대한 공포는 누적된다. 우리는 산에서 씩씩하게 올라가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그렇게 용감한 건, 공포를 미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 운동장 철봉에 매달렸다가 모래바닥에 코를 박고, 비 흠뻑 젖은 흙길을 밟다가 미끄러져 구르며, 군대에서 레펠 하강 중 오금이 저리거나 회사 사옥 옥상에서 아찔한 흡연을 하며 높이에 대한 공포를 쌓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클라이머들이 아드레날린 중독에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클라이머들은 공포를 즐기지 않는다.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그 노력의 방편으로 ‘등산교육’이라는 분야가 태어났다. 등산교육은 기술은 물론 마인드를 강조한다. 여기서 마인드는 ‘헌신’이다. 산과의 암묵적 계약이다. 위험한 세계인 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산에게 헌신할 것이고 산은 나를 보살펴줘야 한다는 계약이다.
등산교육은 암벽등반에서 크로스 체킹(cross-checking)을 강조하고 있다. 익숙한 것일수록 소홀해진다. 산과의 계약이 허물어진다. 계약 불이행은 치명적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수락산 내원암장. 지난 10월 4일에도 이곳에서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김홍준 기자

수락산 내원암장. 지난 10월 4일에도 이곳에서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김홍준 기자

 
지난 4일 수락산 내원암장에서 사고가 났다. 55세의 이 여성은 두 번째 마디에서 첫 번째 마디로 하강한 뒤 걸려놓은 로프로 갈아타려고 했다. 그 와중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확보지점에서 자신의 몸을 붙들어 놓을 확보기를 걸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8일 둘러본 사고 현장엔 다급함이 묻어났다. 곳곳에 응급처치를 위한 흔적들이 있었다.

 
도봉산 선인봉 진달래길을 등반 중인 클라이머. 지난 10월 3일 이 곳 선인봉에서 전모 부장검사가 추락 사망했다. 사진 김영철

도봉산 선인봉 진달래길을 등반 중인 클라이머. 지난 10월 3일 이 곳 선인봉에서 전모 부장검사가 추락 사망했다. 사진 김영철

 
그 전날인 3일의 전모 부장검사(56) 추락사는 비교적 상세히 그 경위가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도봉산 선인봉에서 등반한 전 부장검사 일행은 나무에 하강 시스템을 구축했다. 리더 김모(49)씨는 불완전한 로프 매듭을 건네줬다. 김씨가 핸드폰 통화를 할 때 전씨는 하강을 시작했다. 로프가 풀렸다. 50m 추락했다. 응급 후송 중 사망했다.


김씨는 등반 경력 30년, 전씨는 5년이었다. 등반 경력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씨는 채 로프를 매듭짓지 못했다. 전씨는 로프 매듭을 확인하지 않았다. 

전씨는 5년 전 김씨를 만나 암벽등반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전씨의 스승이었다. 나이 많은 전씨는 ‘형’으로 불렸을 게다. 

한국의 등반 세계에서는, 대통령이 와도 ‘형’이라고 부른다. 김씨가 등반 중에 전씨를 ‘검사님’이라고 불렀을리는 없다. 사제지간이며 형제지간인 이 둘은 로프(자일) 하나로 서로의 우정을 이어갔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자일 파티’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로프가 이 둘을 갈랐다. 

전씨는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클라이밍에 헌신한 김씨는 ‘과실치사’로 불구속 입건 돼 자신을 지탱하게 만든 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있다. 전씨는, 스승이자 동생인 김씨가 무너지는 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암벽등반 중 확보지점. 이곳은 하강 시스템 구축지점으로도 쓰인다. 김홍준 기자

암벽등반 중 확보지점. 이곳은 하강 시스템 구축지점으로도 쓰인다. 김홍준 기자

일상등산사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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