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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만에 간첩 누명 벗었지만…“빨갱이 가족 몰려 아들 투신”

고(故) 이수근(오른쪽)씨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체념한 듯 재판부를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고(故) 이수근(오른쪽)씨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체념한 듯 재판부를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1960년대 말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 고(故) 이수근씨가 49년 만에 법원에서 누명을 벗었다. 당시 이씨와 함께 간첩으로 몰려 21년간 수감 생활을 한 이씨의 처조카 배경옥씨는 “아들은 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딸과는 연락하지 않는다”며 가족의 삶이 다 망가졌다고 토로했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고문당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11일 1969년 사형이 선고된 이씨의 재심에서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씨는 1967년 3월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으나 1969년 1월 위조여권을 이용해 홍콩으로 출국한 뒤 중간 기착지인 베트남에서 당시 주 베트남 공사 등에게 체포됐다. 위장 귀순해 북한의 군사적 목적을 위해 기밀을 수집하는 등 간첩 행위를 한 뒤 한국을 탈출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이씨는 베트남 공항에서 체포된 이후 40여일간 불법 구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며 “각종 고문과 폭행 등 가혹 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이씨가 위조여권을 만드는 데 관여한 배씨는 이날 YTN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는 이모부님의 여권을 만들어줬을 뿐 간첩 행위를 한 것이 없는데 중앙정보부(중정) 요원이 바로 남산 5국으로 데려갔다”며 “고문은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고 전했다.  
 
배씨는 “거기 가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팬티도 안 입고, 한 10명이 둘러서서 구둣발로 사람을 고문하고, 의자에 묶어서 물고문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은 하기 싫다”며 “그때는 빨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검찰 조사받을 때도 중정 애들이 바깥에 서 있다가 들어와서 나쁜 짓을 한다. 그럼 받아쓰기할 수밖에 없다”며 “재판장에서도 중정 요원들이 둘러서 있어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없게끔 했다”고 덧붙였다.  
 
“온 가족이 연좌제로 고통받았다”
이씨는 체포된 지 4개월 만인 1969년 5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50여일 만에 형이 집행됐다. 배씨 역시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20년 복역 후 가석방됐다.  
 
배씨는 ‘남은 가족들이 간첩 자식, 빨갱이 아내로 힘든 삶을 사셨을 것 같다’는 질문에 “출소 후에도 여태까지 혼자 생활한다. 아들은 제가 교도소에서 나온 그다음 해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공부도 잘해서 장학생이었다. 좋아하던 학교 후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살았는데 ‘사위 될 사람의 아버지가 간첩 혐의로 20년을 살고 나왔다’고 얘기할 수 없으니까. 그때 나이가 스물다섯인가 한참 예민하니까, 무주 구천동 강에서 투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딸과도 요새 만나지 않는다. 저로 인해서 고생도 많이 했고, 또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많이 받게 되니 오히려 제가 접촉을 안 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연락을) 안 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이어 “어머님부터 저희 동생들도 다 힘들었다. 연좌제가 말로만 없지 그대로 다 고통받았다”며 “제가 출소하고서도 10년 동안이나 경찰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재판부 “국가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때”
배씨는 이씨에 앞서 2008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국가가 이럴 수는 없는 거다.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국가의 권력이 인권을 짓밟고 생명을 짓밟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낙인 찍히고 생명까지 박탈당하는 데 이르렀다”며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피고인과 유가족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때”라고 밝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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