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너 공부잘하니? 아저씨는 이런 질문 왜 했을까

기자
이한세 사진 이한세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24)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덕담도 있지만 어른들의 도가 지나친 질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연합뉴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덕담도 있지만 어른들의 도가 지나친 질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연합뉴스]

 
추석 같은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이면 이런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모처럼 보게 되는 조카나 부쩍 커진 손주들이 대견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걱정과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덕담도 있지만 “무엇 무엇을 하라”는 조언이나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등의 질문이 도가 지나쳐 오지랖으로 넓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음은 지나치게 사적인 것을 묻거나 경쟁심을 유발하는 질문 중에 연령대별로 듣기 싫은 이야기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한다.


■ 어린이: 공부 잘하니? 노래 좀 해 봐. 너희 둘 중에 키가 누가 더 크니?
■ 10대: 반에서 몇 등 하니? 내 친구 아들은 외고 갔는데 그렇게 공부를 잘한대. 너도 누구처럼 OO 대학 가야지.
■ 20~30대: 남자(여자) 친구는 있니? 너는 직장 어디 다녀? 아직도 백수야? 연봉은 얼마나 돼? 결혼은 안 해? 아이는 언제 가질 건데? 살이 많이 쪘다.
■ 40~50대: OO는 이번에 임원이 되었다던데. 집 장만은 했어? OO는 집값이 몇억 원이 올랐대. 아이들 대학 어디 갔어? 애미 애비야 우리 손주가 왜 이리 말랐어. 안 걷어 먹이냐?
 
젊은 세대들이 듣기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직계가족뿐만 아니라 명절 때 가끔 얼굴을 보는 친척까지도 초대받지 않은 걱정에 동참하곤 한다. 이렇게 걱정을 넘어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늘고 더 나아가 오지랖도 넓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일까?
 
지난 추석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명절 잔소리메뉴판. 해당 잔소리를 하려면 구입 후 해야 한다. [사진 인터넷 캡처]

지난 추석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명절 잔소리메뉴판. 해당 잔소리를 하려면 구입 후 해야 한다. [사진 인터넷 캡처]

 
그 비밀은 인간이 진화해 오면서 터득한 생존전략에 있다. 구석기시대를 비롯하여 근대화가 시작되기 백여 년 전까지 수십만 년 동안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류에게는 자손 번식, 식량 확보, 적을 제압할 경쟁력, 기근대비를 위한 예비 식량의 준비가 절대적이었다. 명절 때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재배열해 보면 과거 생존전략의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 자손 번식: 남자(여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안 해? 아이는 언제 가질 건데? 애미 애비야 우리 손주가 왜 이리 말랐어, 안 걷어 먹이냐?
■ 식량 확보: 직장 어디 다녀? 아직도 백수야? 연봉은 얼마나 돼?
■ 적을 제압할 경쟁력: 공부 잘하니? 너희 둘 중에 키가 누가 더 크니? 반에서 몇 등 하니? 내 친구 아들은 외고 갔는데 그렇게 공부를 잘한대. 너도 누구처럼 OO 대학 가야지. OO는 이번에 임원이 되었다던데.
■ 기근대비 예비 식량 준비: OO는 집값이 몇억 원이 올랐대.
 
결국 어르신의 조언은 생존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의도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어르신 말씀은 듣는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곤 한다. 물론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상대의 반응 때문에 어르신도 섭섭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몸속 유전자에 뛰어난 생존전략이 입력되어 있다. 이러한 생존전략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십만 년 동안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터득해온 지혜가 후손에게 유전적으로 전달된 것이다. 유전적으로 전달이 잘 안 되었거나, 살아가면서 생존전략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진 사람이나 집단은 적자생존을 거듭하면서 모두 도태되었다.
 
오직 수만 세대를 거치면서도 단 한 번도 자녀가 없어 본 적이 없고, 적으로부터 나의 목숨을 지키고, 흉년과 기근에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 바로 우리다.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농사를 얼마나 잘 짓느냐가 생존을 결정지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했고 경험자의 조언이 필수였다. [중앙포토]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농사를 얼마나 잘 짓느냐가 생존을 결정지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했고 경험자의 조언이 필수였다. [중앙포토]

 
예전의 농경사회에서는 농사가 삶의 모든 것이었다. 자연에 의존해 경작하므로 기후의 예측이 필요했다. 농사에 필요한 농법들도 오로지 경험자만이 알 수 있었고, 그러한 경험은 농사를 오래 지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축적되어 있었다. 농사경험이 적었던 젊은이들에게 농사 및 인생 경험을 가진 어르신의 말씀은 그야말로 생존을 결정짓는 단비와 같은 것이었으며 따라잡을 수 없는 지혜였다.
 
어르신들은 후손에게 끊임없이 농사법을 알려주고, 직계가족이 다른 가족이나 부락보다 경쟁력을 갖고 식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노심초사하면서 걱정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경험을 자녀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본능이 강해지게 된다.
 
만약 농사법과 기근 시 연명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부모가 평소 자녀들에게 전혀 이야기도 없이 그저 덕담만 하고 지냈고, 그 자녀들도 부모와 같이 행동했다면 과연 그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오히려 정도 이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밑바닥까지 반복해서 들려주고, 직계가족을 넘어서 친척들에게도 농사법에 대한 이야기, 결혼에 대해 오지랖이 넓었던 가족의 후손이 생존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며 바로 우리가 그렇게 생존한 가족의 후손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농경시대처럼 자연이나 오래된 경험에만 의존하는 시대가 아니다. 젊은 세대가 스마트폰에서 온갖 정보를 다 찾을 수 있어 나이든 세대보다 정보력도 높고, 현대의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는 생존능력도 더 좋을 수 있다. 그런데도 예전의 생존전략이 유전자에 입력된 어르신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녀들이 자꾸 걱정되고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것이다.
 
과거에는 조언하고 오지랖 넓은 본능이 미덕이며 격려였고,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지만 현대는 그렇지 않다. 젊은 사람들은 부모나 친척의 오지랖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몸과 마음에 축적된 생존본능이라고 생각하면 짜증이나 화가 덜 날 수 있다. [사진 pixabay]

과거에는 조언하고 오지랖 넓은 본능이 미덕이며 격려였고,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지만 현대는 그렇지 않다. 젊은 사람들은 부모나 친척의 오지랖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몸과 마음에 축적된 생존본능이라고 생각하면 짜증이나 화가 덜 날 수 있다. [사진 pixabay]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부모처럼 나이가 들면 어떤 식으로든 조언해 주고 싶은 본능이 되살아난다. 젊은 세대라 하더라도 1~2년이라도 학교나 직장 선배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자기의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조언을 해 주려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조언하고 오지랖이 넓은 본능이 과거에는 미덕이며 격려였고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우리의 몸은 과다한 영양분을 지방으로 축적해 필요하면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생존율을 높이려는 전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오래된 전략은 요즘에 와서 오히려 비만을 유발해 의도하지 않게 생존율을 떨어트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정도가 지나친 조언이나 넓은 오지랖이 과거에는 필요했으나 현대에 와서는 자녀들이나 친척 손아랫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작용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우리 부모나 친척들이 왜 이렇게 사생활에 간섭하고 오지랖이 넓은가 짜증을 내고 원망을 하기보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저렇게 조언하는 부모들이 본인이 원해서 한다기보다 수십만 년 동안 몸과 마음에 축적된 생존전략으로 인해 일부분 어쩔 수 없이 자기도 모르게 하는 것이구나!”라고 이해한다면 짜증이나 화가 덜 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르신들도 젊은 사람들의 미래가 불안해 보여 무언가 자꾸 이야기해 주고 싶어도 “이러한 것이 내 몸속의 오지랖 본능이 되살아 나서 그러하니 나의 의지로 본능을 다독거려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만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유인경 칼럼니스트는 지혜로운 70대 시인이 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혹시 내가 뭔가 충고의 말을 하거나 그런 낌새가 보이면 즉시 ‘네, 됐습니다’라고 말해줘요. 나이가 들면 나도 모르게 지적을 하거나 충고를 하려는 지병이 생기는 것 같아요. 상대방에게는 지루하고 쓸모없는 잔소리로 들릴 텐데 말이지요.”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 Justin.lee@spireresearch.com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