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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야 몇 개월” 터놓고 얘기하는 게 첫발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가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매일 겪는 상황을 그린 만화 [서울아산병원]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가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매일 겪는 상황을 그린 만화 [서울아산병원]

10년 넘게 간경화를 앓아 온 A씨(68)는 지난 3월 고열과 구토 증세로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동안 유일한 치료법인 간이식 수술을 기다렸지만 기증자를 찾지 못했고, 수술 가능 시기마저 지나버렸다. A씨는 기도에 관을 꽂아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고 혈액투석을 했다. 수액줄로 해열제·항생제 등 약물이 주입됐다. 당시 A씨는 의식이 있었지만 의사는 연명의료 중단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의사는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새 환자가 의식을 잃었다”고 말했다. A씨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았고, 열흘 넘게 연명의료를 받다 숨졌다.
 
 
불필요한 고통을 덜고 웰다잉(Well dying)하기 위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끝까지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다 숨지는 이가 여전히 많다. 환자 본인의 결정권과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자는 취지가 무색하다. 8개월간 연명의료 중단을 택한 2만742명 가운데 본인이 결정한 비율은 33.7%(6990명)에 그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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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면 별문제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의식이 있을 때 의료진이 상태를 설명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의사·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선 잘 작동하지 않는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 “의사가 환자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한다”고 지적한다. 의사 양성 과정에서 그런 교육을 거의 하지 않는다. A씨 담당 의사는 “환자를 붙들고 ‘당신은 곧 죽을 거고,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치료는 받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을 꺼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의료진이 설명하는 데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평균 2~3회 설명하고, 회당 적어도 30분 이상 걸린다. 최원호 서울대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간호사는 "미리 준비한 환자는 한 번 상담으로 끝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열흘씩 걸리기도 한다. 환자뿐 아니라 가족도 이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윤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한 현장 경험이 없거나 사전교육을 안 받은 의사도 있다. 한번에 바뀔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가족이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이명아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말기암 환자에게 ‘길어야 6개월 남았습니다’고 말하면 가족들이 화내고 병원을 옮기는 경우가 있다. 환자가 절망할까 봐 절대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선 환자에게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암 진단 때부터 ‘보호자 부르세요’라고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말기 간암 환자 B씨(63)는 평소 (연명의료 관련) 뉴스를 보다가 "나는 저런 거 절대 안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하지만 담당 의사가 B씨에게 연명의료 제도를 설명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자녀들의 반대 때문이다. B씨 딸은 "아빠가 충격을 받아서 확 나빠질까 봐 걱정됐다"고 말했다. B씨는 지난달 말 의식이 희미해졌고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웰다잉 정착을 위해 어떤 점이 달라져야 할까. 라정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팀장은 “의료진이 책임감을 갖고 환자에게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명아 교수는 “처음엔 화내던 가족이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편히 한 달 살 것을, 하면 일주일 내 사망할 수 있다’고 반복해 알리면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박소영 충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한 말하기’ 훈련을 해야 한다. 지금은 의료진·환자·가족 모두 준비가 안 돼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김대균 교수는 “의사들이 환자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에 맞는 진료 수가를 책정하고,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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