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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북의 꼼수 … “림종석에게 안부 전해주시라요”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10·4 남북정상회담 11주년 기념행사차 지난주 사흘간 북한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1980년대 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통일운동을 벌이며 북한과 연을 맺었던 586세대 의원들은 더욱 그러했다. 하이라이트는 89년 전대협이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임수경을 대표로 보냈을 당시 북측 파트너였던 인사들과의 재회였다.
 
“아이고, 송 의원님! 반갑습네다. 30년 만이네요. 지금 무얼하고 있습네까?”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장 자격으로 방북단에 참여한 송영길 의원(계양을·4선)은 낯이 설지 않은 목소리에 흠칫했다. 29년 전 평양외국어대 학생 신분으로 임수경을 맞아 안내를 도맡았던 이금철이 인사를 건넨 것이다. 당시 김책공대 총학생회장으로 임수경과 각별한 사이를 맺은 강지영의 얼굴도 보였다. 강지영은 조선종교인협의회장, 이금철은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직함을 달고 나왔다. 이금철은 송영길에게 “의원님 기세가 대단해 잘 되실 줄 알았는데 상대방 뒷심이 만만치 않더군요. 안타깝게 됐습네다”고 했다. 지난 8·25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송영길이 예선에선 2위로 선전했지만 본선에서 이해찬에게 석패한 걸 위로하는 말이었다. 남측 정세와 의원들 신상을 훤히 꿰고 있다는 과시이기도 했다.
 
이금철은 “림(임)수경씨와 림(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신동호 대통령 연설비서관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도 했다.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임종석은 89년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방북을 총지휘했고 이로 인해 3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임종석의 대학 1년 선배인 신동호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을 도맡아 써온 ‘문의 손’으로, 임수경 방북 당시 전대협 간부로 활동했다. 이금철은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청와대 참모 2명을 콕 찍어 그들과 북한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기선을 제압하려 한 것이었다. 다른 북측 인사들도 은연중 이런 의도가 깔린 발언을 하기 일쑤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국장 이창덕은 “남측 정치인들이 민족을 우선해야지 당리당략에 빠져있으니 되겠습니까? ”라고 비아냥댔다. 원내대표를 지낸 민주당 중진의원에게 “원내대표직을 그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며 면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80년대 대학생 신분으로 연을 맺은 이들이 남북에서 각각 ‘출세’해 30년 만에 만났으니 얘기꽃이 안 필 수 없었다. 안민석 의원(4선·오산)은 “노무현 정부 때도 우리 당 의원들이 북한을 찾았지만 그때는 서로 조심하고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남북 간에 훈풍이 부는데다 다들 머리가 굵어져선지 친구를 만난 듯 깊은 대화를 나눴다. 첫사랑 얘기까지 나왔다.” 안 의원에게 북측 인사들은 “최순실 비리를 파헤친 스타”라며 덕담을 쏟아내기도 했다. 안 의원은 “북측 대표 이선권을 비롯해 강지영 등 고위 인사들이 나를 보자마자 ‘수고 많았다’고 하더라. 강지영이야 10년 전 방북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그렇다 쳐도 나를 처음 보는 보위부 간부들도 얼굴을 금방 알아보고 ‘고생했다’며 인사하더라. 남한 국내 상황을 매일 들여다본 결과 아니겠나”고 했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북측의 ‘작전’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민주평화당 황주홍 의원(재선·고흥 보성 장흥 강진)은 “북측이 ‘국회’라고 내세우는 최고인민회의 사람들과 만나봤지만 1년에 한 번 모이는 허울뿐인 기구더라. 민주주의로 움직이는 우리 국회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고 했다. 이어 “평양은 2005년에 이어 13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인데 변하는 속도가 너무 더뎌 안타까웠다. 제재 탓이 있긴 하겠지만 의식의 변화가 너무 느리고 폐쇄적이었다. ‘김정은 위원장께서 연말에 서울을 찾으실 경우 안전이 심히 걱정된다. 남측 정부가 잘해야 한다’는 주문을 들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울림이 큰 방북 소감은 송영길 의원의 입에서 나왔다. “북한에 가보니 민주당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야당하고만 싸울 게 아니라 글로벌 정당으로 커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 집권당의 라이벌은 중국 공산당·일본 자민당·미국 공화당·러시아 통합당이다. 이들을 실력으로 압도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북한 노동당은 결코 한반도를 주도할 수 없다.”
 
공감이 가는 운동권 출신 의원의 토로다. 북한에 들어가 현실을 몸으로 느껴보니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거다. 한국당 의원들도 무작정 북한을 외면할 때는 지났다. 북한 권력층과 몸으로 부딪혀 논쟁하면서 실체를 파악하는 노력 없이는 민주당의 남북관계 독점 구도를 결코 깰 수 없다. 마침 연내 개최를 목표로 남북 국회회담이 추진되고 있다. 국회 주도의 초당적 행사여서 야당이 들러리로 전락할 염려가 적다. 한국당은 “평양에서 열면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이 서울 개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니 한국당도 열린 자세로 임해주길 촉구한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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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