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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하필 스리랑카인이라서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스물일곱 살 스리랑카인 A씨가 한국의 터널 공사장에서 일하다 풍등을 주운 건 일요일이던 7일 오전이었다. 전날 인근 초등학교 ‘아버지 캠프’에서 날린 풍등 80개 중 2개가 하필 공사장에 떨어졌던 게다. 쉬는 시간이던 오전 10시32분, A씨는 풍등에 불을 붙였다. 풍등은 “어어”하는 사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근무 중이라 한눈팔 시간은 길지 않았을 터.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A씨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했다. 근로자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단순노무직으로 취업할 수 있는 비자다. 법무부는 스리랑카를 포함, 협약을 맺은 16개국에 인원을 할당한다. 일단 취업하면 사업장 폐업 등 극단적 경우 외엔 이직할 수 없다. 한 곳에서 꾸준히 일해야 비자 연장도 수월하다. 회사에 운명이 묶인 A씨에게 주말 근무는 당연한 일상일 거다.
 
풍등은 공명등(孔明燈)이라고도 한다. 적에게 포위된 제갈공명이 바람을 계산해 구조 요청을 쓴 풍등을 날려 곤경에서 벗어난 데서 유래했다. 오늘날엔 소원과 복을 비는 용도로 날린다. 어느 초등학생과 아버지의 소원에 A씨의 소원을 덤으로 담은 풍등은 하필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고양저유소 옆 잔디밭에 떨어졌다. 잔디밭에 옮겨붙은 불꽃이 유증기 환기구로 빨려 들어가면서 폭발한 건 10시54분. 그때까지 누구도 불이 난 걸 몰랐다. 주변엔 화재 감지 센서도 없었다. 17시간 동안 휘발유 226만3000L가 탔다. 핵미사일이나 장사정포 없이 그저 풍등 몇 개면 남한을 마비시킬 수 있으리라는 엄청난 국가 기밀이 드러났다.
 
경찰은 신속했다. 인근 CCTV를 뒤져 화재의 원인이 된 풍등과 A씨를 찾아냈다. 8일 오후 4시30분, A씨는 중실화 혐의로 영장도 없이 긴급체포됐다. 형사소송법상 긴급체포는 피의자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 인멸 혹은 도주 우려가 있을 때’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중실화 형량은 ‘3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경찰은 A씨가 정확히 ‘금고 3년’짜리 죄를 지었다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A씨가 한국인이거나 선진국 국민이었어도 같은 취급을 당했을까. 아버지 캠프가 열리던 날 풍등이 저유소가 아닌 공사장으로 날아간 건 누군가 제갈공명처럼 바람을 기막히게 계산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아서 아닌가.  
 
“범인은 스리랑카인”이라며 약소국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국가와 시스템의 더 큰 책임을 가리려 하지 말라. 우리의 허술함을 일깨워준 A씨에게 훈장을 줘도 모자랄 판에.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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