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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0분의 1 음 차이도 구분 … 절대음감으로 ‘화평 정치’

즉위 600년 다시 보는 세종<하>
세종은 다방면에 걸쳐 재능이 빼어났던 르네상스적 인간이었다. 음악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국악계 전문가들은 세종을 두고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작곡가였다”고 말한다. 박연을 시켜 중국에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편경을 국산화한 일은 세종의 방대한 음악 분야 업적 가운데 일부일 뿐이라는 얘기다.

편경 국산화한 박연이 시연하자
세종 “소리가 약간 높은 것 같다”

“명 음악이 다 옳겠나” 자주성 추구
고려가요·향악 활용한 신악 창제

 
한글 창제, 4군 6진 개척, 백성들의 세금 경감을 위한 공법 도입 등 지금까지 살펴본 사업만으로도 누구보다 분주했을 세종이 음악 분야에까지 손을 댈 수 있었던 바탕은 뭘까. 그의 음악적 재능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 있다. 절대음감이다.
 
세종실록 15년(1433년) 1월 1일 기사에는 마침내 편경 국산화에 성공한 박연이 세종 앞에서 막 그 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세종이 말한다.
 
"지금 소리를 들으니 또한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율(律)을 만들어 음(音)을 비교한 것은 뜻하지 아니한 데서 나왔으니,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 다만 이칙(夷則) 1매(枚)가 그 소리가 약간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박연이 문제의 경석을 살펴보고 답한다.
 
"가늠한 먹이 아직 남아 있으니 다 갈지 아니한 것입니다.”
 
종묘제례악 연주 장면. 세종은 중국에서 수입된 아악과 스타일이 다른 신악을 창제해 종묘제례악을 혁신했다. ‘ㄱ’자 모양 경석이 달린 악기가 편경이다. [중앙포토]

종묘제례악 연주 장면. 세종은 중국에서 수입된 아악과 스타일이 다른 신악을 창제해 종묘제례악을 혁신했다. ‘ㄱ’자 모양 경석이 달린 악기가 편경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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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경은 옥돌(대리석)을 ‘ㄱ’자 형태로 잘라 다듬은 16개의 경석으로 구성되는 악기다. 윗줄·아랫줄 8개씩 경석을 매다는데, ‘이칙’은 윗줄 맨 왼쪽에 있는 경석이다. ‘가늠한 먹이 남아 있다’는 얘기는 재단할 때 그었던 먹줄 두께만큼 덜 갈렸다는 뜻이다. 경석은 직감(直感)과는 반대로 두꺼우면 높은 소리, 얇으면 낮은 소리가 난다. 먹줄 두께는 0.5㎜ 정도. 측정해 보면 이 두께가 내는 음 차이는 한 음의 20분의 1 정도 된다고 한다. 세종은 이를 알아차린 것이다. 보통사람 음감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세종의 편경 국산화는 단순히 명나라의 비위를 맞춰가며 어렵사리 편경을 수입하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유교적 이상 국가 건설을 명분으로 탄생한 나라였다. 그 실천 항목으로 예(禮)와 악(樂)의 조화가 강조됐다. 음악을 중시한 이유는 정치적 교화 효과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치세의 음이 편안해서 즐거우면 그 정치는 조화를 이룬다”는  『예기』의 구절에 그런 세계관이 집약돼 있다.
 
세종은 음악을 통해 그런 유교 정치철학을 철저하게 실천하려 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주성을 추구했다. 그런 면모를 세종실록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음악이 비록 다 잘 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반드시 중국에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중국의 음악인들 어찌 다 바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종 12년 12월 7일)
 
이런 생각은 대대적인 궁중음악 정비와 혁신으로 나타난다. 송혜진 국악방송 사장은 세종의 음악 정치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아악(雅樂) 정비기, 정비한 아악 활용기, 신악(新樂) 창제기다. 아악은 중국에서 유래한 궁중 제례 음악으로 박연이 정비했다. 신악은 정대업·보태평·봉래의(여민락) 등 선왕들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인데 청산별곡 같은 고려가요의 멜로디를 활용해 만들었고, 연주할 때 거문고 같은 조선의 향악기를 포함시켰다. 이전 궁중음악에서는 볼 수 없던 요소들이다. 국립부산국악원 서인화 원장은 "우리 민족 정서를 궁중음악에 담기 위해 고려 때부터의 음악 전통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세종이 창제한 신악의 특징을 설명했다. 보태평 등이 포함된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도 중국에서 유래한 아악과 다른 조선만의 특성 때문이라는 얘기다.
 
송혜진 국악방송 사장은 "세종은 전문가를 시켜 했어도 될 일을 끝까지 직접챙겼다. 그런 태도가 놀랍다”고 평했다.
 
◆ 특별취재팀=신준봉·김호정·노진호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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