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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로 뭉친 여걸 넷 “할머니 될 때까지 함께할래요”

지난해부터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하며 주목받고 있는 현악4중주단 에스메 콰르텟. 왼쪽부터 배원희(바이올린), 허예은(첼로), 김지원(비올라), 하유나(바이올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부터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하며 주목받고 있는 현악4중주단 에스메 콰르텟. 왼쪽부터 배원희(바이올린), 허예은(첼로), 김지원(비올라), 하유나(바이올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바이올린 둘, 비올라, 첼로가 만나는 현악4중주팀의 모든 멤버가 남자인 경우는 많다. 혼성인 경우는 더 많다. 하지만 여성 연주자로만 된 팀은 거의 없다. 2016년 결성한 에스메 콰르텟이 그 드문 예 중 하나다. 바이올린 배원희(31)·하유나(27), 비올라 김지원(26), 첼로 허예은(26)으로 구성된 이 팀은 창단 1년 6개월 만에 지난 4월 런던의 위그모어홀 현악4중주 콩쿠르에서 1위에 올랐다. 하겐 콰르텟, 아르카디아 콰르텟 등 세계의 쟁쟁한 현악4중주팀이 우승했던 대회다.
 
에스메 콰르텟은 지난해 노르웨이 트론헤임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른 후 런던에서까지 1위를 수상하며 세계 무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여름엔 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의 상주 쿼르텟으로 연주했고 내년엔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에 데뷔한다.
 
동양 여성 연주자들의 현악4중주단이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특히 고정관념은 언제나 어렵지 않게 맞닥뜨린다. “콩쿠르 우승 이후 매니지먼트와 첫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질문을 받았어요. ‘여성이 넷이고 다들 결혼을 할 것 같은데 가족계획은 어떻게 되느냐’고요 .”(배원희) 쉽지 않은 질문들에 대한 이들의 답은 이랬다. “가족을 만드는 일이 왜 꼭 여성 연주자에게만 난관이 돼야 하나요?”(하유나)
 
걸크러시 4중주단의 걸음은 이처럼 경쾌하다. “여자들끼리 연주 여행을 다니니 방값도 덜 들고, 고민 얘기도 잘 통하고, 다들 먹는 걸 좋아해서 너무 힘든 연주가 있으면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면서 풀어요.”(김지원)
 
에스메의 연주를 직접 보고 나면 단순하지만 즐거운 이들의 태도가 이해된다. 젊은이의 설레고 들뜬 표정으로 악기를 잡은 네 명이  숨을 고르고 활을 긋는 순간 무대 위는 살벌해진다. 고전 시대인 하이든의 작품마저도 현대적인 선명함이 살아나고 베토벤 현악4중주는 더욱 드라마틱해진다. 본인들의 말처럼 “걸그룹보다는 여장부들에 가까운” 연주다.
 
이들은 여성 콰르텟의 특성을 굳이 누르려 하거나 과장하지도 않는다. 여성성을 희석하지도, 외모에 대한 찬사를 애써 외면하지도 않는다. “유럽 청중엔 연세 많은 여성 관객들이 많은데 젊은 동양 여성들이 무대에 나와 앉으면 ‘아 예쁘다’해요. 그러다가 저희가 연주를 마치면 기에 눌린 것 같은 분위기에요.”(하유나)
 
눈길을 끄는 외모로 나와서 실력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현악4중주단인 셈이다. 곡목 선정도 관객을 놀라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콩쿠르에서 연주한 슈베르트 D.887도 청중이 다 놀라더라고요. 너무 길고 어려운 곡이어서요. 그런데 저희는 연주곡목을 짤 때도 25분짜리 두 개 정도 넣고 90~100분 정도로 길게 연주해야 직성이 풀려요.”(김지원)
 
이 콰르텟은 서울대 음대에서 시작됐다. 같은 학년이던 김지원과 허예은이 다른 멤버들과 함께 현악4중주단을 만들어 3년동안 활동했고 둘은 각각 뒤셀도르프와 쾰른으로 유학을 떠나 자연스럽게 팀이 해체됐다. “쾰른 음대에서 학점을 따느라 다시 멤버를 모았어요. 수업에서 실내악을 꼭 해야 했거든요.”(허예은) 쾰른에 와 있던 배원희가 합류를 했고 프랑스에서 머물던 하유나를 제2바이올린으로 영입했다. 각자 독주자로서 강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던 네 명은 팀을 결성한 후 학교 내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콰르텟을 지속시키기로 했다. 시험 삼아 나가본 국제 콩쿠르에서 다시 입상했고 본격적으로 현악4중주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시작은 각기 마음에 품었던 4중주에 대한 열정을 재발견한 일이기도 했다. 김지원은 “처음 비올라를 시작한 것도 드보르자크의 ‘아메리칸’ 현악4중주 오프닝을 듣고서였다”고 했고, 배원희는 “외동딸이고 긴 유학 생활도 혼자 했는데 동료들과 다니는 현악4중주가 너무 부러웠다”고 했다. 멤버들은 독주 기회를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에스메 콰르텟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연주 스타일이나 철학은 영락없이 ‘좋아서 하는 팀’, 그 자체다. 하지만 준비 과정은 치열하다. 365일 중 360일은 모여서 연습을 하고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는 하루에 10시간씩이라도 호흡을 맞춘다. 그래도 무대 위에서만큼은 음악이 그저 흘러가게 놔둔다. “팀 색깔이 뭔지에 대해 고민을 오래 했지만 무대 위에서 어느 순간 만들어지는 것의 매력이 참 좋다는 걸 알게 됐어요. 네 명이 서로 다른 게 매력이죠.”(허예은) 각자의 색이 팀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 현재 에스메 콰르텟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우리는 각자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연주했는데 공연이 끝나면 ‘한마음으로 연주하는 게 신기했다’는 청중이 꼭 있더라고요. 음악을 대하는 감성 자체는 멤버들끼리 비슷해서 그런 것 같아요.”(하유나)
 
하지만 이들은 에스메 콰르텟이 이제 2년된 신생팀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지금 유럽 무대에서 비슷하게 활동하는 팀을 보면 대부분 10년은 됐어요. 앞으로 경험을 쌓으며 이들을 따라잡거나 앞지르고 싶어요.”(허예은) 우선은 연주 곡목을 폭넓게 늘리는 것이 목표다. 에스메(esme)는 프랑스 고어(古語)로 ‘사랑받는’이라는 뜻이다. “할머니들이 될 때까지 함께 연주하겠다”는 네 명의 꿈을 담은 이름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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