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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매달고 누워있기보다 … 며칠이라도 남 위해 살고 싶다”

두 세달만이라도 남을 위해 살 길이 없을까.
그의 마지막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목록)는 봉사다. 그는 8일 서울 강동구의 한 호스피스 병상에서 그 얘기를 또 했다. 진통제 주사를 맞은 직후라서인지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전직 폭력배이자 말기 직장암 환자 이승철(60)씨. 그는 8월 중순 연명의료 거부 서류(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했다. 취재진은 지난달 4·5·16일, 이달 8일 네 차례 인터뷰했다. 20차례 넘게 전화·문자 통화를 했다. 이씨의 관점에서 존엄사 선택 과정을 정리한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말기 암 환자 이승철씨가 지난달 5일 서울동부병원 병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장진영 기자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말기 암 환자 이승철씨가 지난달 5일 서울동부병원 병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장진영 기자

#2017년 4월  
“직장암입니다.” 
10년 전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2년 넘게 항암 치료를 받았다. 잠잠하던 암은 나를 놔두지 않았다. 2014년 직장(항문 쪽 대장)뿐 아니라 척추·신장에 암이 전이됐다는 걸 알았다. 2016년 5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년 넘게 고통 속에서 지냈다. 병원비로 있는 재산을 다 쓰고, 나중엔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며 살아갔지만 결국 기초수급자로 전락했다. 나를 돌봐줄 처자식도 없다. 이렇게 살아서 뭐할까. 지난해 4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7년 10월
“석달만 살아도 기적입니다.”
극단적 선택 후 국립중앙의료원 의사는 나를 퇴원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때마침 집에 들른 지인이 나를 발견해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앰뷸런스에 실려 국립중앙의료원에 도착한 나는 수일간 의식이 없이 지냈다. 깬 뒤에는 곧바로 수술이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직장과 신장을 자르고 소변·대변 줄을 달고 지내는 삶이 시작됐다. 지인이 10분만 나를 늦게 발견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난달 5일 서울동부병원 호스피스 완화 의료 병동에서 말기암 환자 이승철(왼쪽)·김병국씨가 존엄사 서약서인 연명의료계획서를 보여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고심 끝에 한 달 만에, 김씨는 이틀 만에 서명했다. 임종 상황이 오면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등 연명의료를 받지 않게 된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5일 서울동부병원 호스피스 완화 의료 병동에서 말기암 환자 이승철(왼쪽)·김병국씨가 존엄사 서약서인 연명의료계획서를 보여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고심 끝에 한 달 만에, 김씨는 이틀 만에 서명했다. 임종 상황이 오면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등 연명의료를 받지 않게 된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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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연명의료계획서라고 들어보셨어요?”
중앙의료원을 나와 요양병원을 전전하다 호스피스 완화 병동에 머무르는 걸 택했다. 여러 병원에 다니다 올 7월 서울동부병원에 왔다. 입원 후 의사들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쓰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게 뭔지는 알고 있었다. 이전 병원에서 같이 있던 말기암 환자가 작성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심이 서지 않았다. 전에는 스스로 죽겠다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었는데…. 호스피스 병동에 있다 보니 죽음을 더 많이 접해서일까. 환자가 갑작스레 숨지는 경우를 수없이 봤다. 오히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혹시라도 자다가 죽지 않을까 잠 못 드는 날이 반복됐다.
 
#2018년 8월
“충분히 그러실 수 있어요. 이상한 게 아닙니다.”
서울동부병원의 담당 의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의사에게 "과거 목숨을 끊으려했다"고 고백했더니 "그럴 수도 있다"는 게 아닌가. 그는 내게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환자 중에 많다”고 했다. 그는 내게 많은 배려를 했다. 지인을 만나러 잠깐 외출했을 때 허벅지에 소변줄과 대변줄을 붙여 평상복을 입을 수 있게 해줬다. 내 마음이 달라졌다. 삶이 끝나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히려 지금 살아있는 순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다가올 죽음에 대해 진지하고 편안하게 생각하게 됐다.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했다. 설명을 들은지 한 달 만이다.
 
#2018년 9월 4일
“더 잘 살고 싶어서 했어요.”
나를 찾아온 기자가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한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돌이켜보면 서명을 한 건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삶’을 위해서인 것 같다.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구가 컸다. 고통 속에 억지로 연명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자란 생각이다. 전처럼 삶에 집착했다면 다시 약물을 찾아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지난달 5일 서울동부병원 호스피스 완화 의료 병동에서 말기암 환자 이승철(왼쪽)·김병국씨가 존엄사 서약서인 연명의료계획서를 보여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5일 서울동부병원 호스피스 완화 의료 병동에서 말기암 환자 이승철(왼쪽)·김병국씨가 존엄사 서약서인 연명의료계획서를 보여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18년 9월 5일
“그 마음도 이해가 되네요.”
연명의료계획서를 쓰기까지 결심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환자에게 권유하지 못하는 가족들 마음도 알 것 같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있는 모습만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지만 조금만 고통을 겪어본 환자라면 알 것이다.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고통을 잊는 방법은 진통제뿐이다. 하루 세 번 정기적으로 맞지만 고통이 심해지면 수시로 주사를 맞는다. 주사를 놓을 혈관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환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일지 생각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온전할 때 자신의 삶을 품위 있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가족에게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18년 9월 16일
“지금도 어떻게든 움직이려 합니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쓴 후 나는 오히려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병원에 있지만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환자복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죽고 싶다는 꿈을 꾼다. 물론 실현하기 힘들다는 것도 잘 안다. 지금도 보조기구가 없으면 거동을 하기 힘들다. 그래도 몸이 굳어지지 않기 위해 병원 1층을 내려가 돌아다니면서 운동을 한다. 밥도 꼬박꼬박 먹는다. 사는 동안은 제대로 보내고 싶다.
 
#2018년 10월 8일
“잠을 깨면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부터 합니다.”
지난 2일 서울동부병원에서 나와 서울 강동구의 한 호스피스 완화 전문의원으로 옮겼다. 과거처럼 죽을까 봐 못 자는 일은 없다. 하지만 다음날 눈을 뜨면 '내가 아직도 죽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죽음은 여전히 내게 힘든 존재다. 멀쩡하던 환자가 하루만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도 오늘 아침 의식을 잃었다. 어제까진 나보다 말도 잘하고 잘 움직였는데. 
운동은 거르지 않고 있다. 내겐 사실 진짜 꿈이 있다. 조금만 기력을 회복한다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2~3개월 만이라도 남을 위한 일을 하고 죽고 싶다.
◇특별취재팀= 신성식·이에스더·이승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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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