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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김법린 원장, 내가 미국 유학길 오르자 ‘두뇌유출’ 우려

중국 최초 노벨상 수상자들이 중일전쟁 시기 공부했던 전시 피난대학인 서남연합대 정문. [중앙포토]

중국 최초 노벨상 수상자들이 중일전쟁 시기 공부했던 전시 피난대학인 서남연합대 정문. [중앙포토]

김법린 원자력원장이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내게 중국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를 꺼낸 가장 큰 이유는 ‘두뇌 유출’ 염려였을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 전 세계 과학 인재들을 빨아들였다. 1930~40년대 나치즘과 파시즘의 유대인 박해나 전쟁·가난 등으로 본국에서 제대로 공부하거나 연구하기가 힘들었던 과학 인재들은 줄이어 미국으로 향했다. 이념이나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자유로운 사회, 과학자·기술자를 우대하는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미국은 인재를 받아들여 자국의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삼았다. 미국식 ‘과학입국’이다.
 
5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중국인 리정다오(李政道·92)와 양전닝(楊振寧·96)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에 정착했다. 이들은 미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중일전쟁(37~45년)을 겪었다. 전란 와중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피란대학에 다니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오지인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의 전시대학인 시난(西南)연합대에서 공부했다. 시난연합대는 베이징(北京)의 국립 칭화(靑華)대·베이징(北京)대, 텐진(天津)의 사립 난카이(南開)대 등이 피란지 쿤밍에서 공동 운영한 전시 피란대학이다. 37년 7월 베이징이 일제에 점령되자 3개 대학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로 피란했다. 하지만 그해 말 상하이(上海)와 수도 난징(南京)이 함락되면서 창사도 위험해지자 쿤밍으로 다시 옮겨 이듬해 5월 4일 정식 개교했다. 일제 침략으로 온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 교육은 계속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피난대학은 이과·공학·문학·법상·사범의 5개 단과대학을 운영했다. 이과와 공학을 앞세운 데서 보듯 서양과 일본에 뒤진 과학기술 실력을 키워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전란 중의 기적’ ‘전시 중국 지성의 수도’로 불리다 개교 8년 뒤인 46년 5월 4일 문을 닫았다.
 
리는 상하이(上海) 출신으로 항저우(杭州)의 저장(浙江)대학 화학과에 다니다 44년 시난연합대에 합류해 물리학을 공부했다. 종전 뒤인 46년 미국 시카고대로 유학을 떠났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시작해 중국 전역이 어수선하던 때였다. 시카고대에서 세계적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1901~1954년)의 지도로 50년 박사학위를 받고 그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 출신인 양은 38년 시난연합대에 입학해 42년 졸업했다. 대학원을 마친 뒤 45년 시카고대로 유학을 떠나 4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근모

정근모

피란지에서 어렵사리 공부한 중국의 과학 인재들이 미국에서 맘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 날개를 폈다. 중국 입장에선 두뇌 유출이다. 김 원장은 이들이 유학에서 얻은 과학기술 지식으로 어려운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대신 미국에 남아 연구와 학문으로 개인적인 성공의 길을 택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나도 혹시 그럴까봐 우려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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