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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유학 직전 중국인들이 노벨물리학상 …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삶의 본보기' 김법린 원장의 충고 
나는 대학 2학년 때 부친을 여의었다. 이 때문에 20대 초반에는 가장 고마운 스승으로 모셨던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과 신태환 법대 학장 겸 행정대학원장이 자연스럽게 삶의 본보기로 자리 잡았다. 특히 김 원장은 내가 미국 유학 직전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조언을 했다. 조언은 길지 않았지만 단호했다. 거기에 담긴 사연과 의미는 참으로 깊었으며 그 여운은 평생 내 가슴에 남았다.  
 
어느 날 김 원장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원자력원 수습행정원으로 일하다 보니 어느덧 미국 유학을 떠나야 할 시간이 눈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다시 물리학 전공으로 돌아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니 마음이 들떴다. 당시 가난했던 한국에서 유학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물리학을 공부하러 가게 됐으니 자부심도 컸다. 머릿속은 뭔가 이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미국에서 입자물리학을 공동으로 연구한 끝에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수상한 중국인 리정다오(李政道·92)와 양전닝(楊振寧·96). 중일전쟁이 한창인 시절 피난 대학에서 어렵게 공부한 이들은 전후 미국 시카고대로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았다. 김법린 원자력 원장은 이들의 수상에도 중국은 여전히 과학기술이 낙후하고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음을 지적했다. [중앙포토]

미국에서 입자물리학을 공동으로 연구한 끝에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수상한 중국인 리정다오(李政道·92)와 양전닝(楊振寧·96). 중일전쟁이 한창인 시절 피난 대학에서 어렵게 공부한 이들은 전후 미국 시카고대로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았다. 김법린 원자력 원장은 이들의 수상에도 중국은 여전히 과학기술이 낙후하고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음을 지적했다. [중앙포토]

 
미국에서 연구한 중국인 노벨상의 의미  
그런 나를 앞에 앉힌 김 원장은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군!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 하겠군. 그런데 내가 깊이 부탁할 일이 있네.”  
 
이렇게 말문을 뗀 김 원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당부를 했다. 그는 중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를 언급하며 내게 질문을 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얼마 전에 중국인 과학자 두 명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지 않았는가. 그 과학자들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공부한 뒤 미국에 남아 과학 연구를 계속했다지. 그러면 그 사람들이 받은 노벨상은 중국의 것인가. 미국의 것인가?”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받은 중국인 리정다오(李政道·92)와 양전닝(楊振寧·96). 중국인이 수상한 첫 노벨상이다. 당시 리는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양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이들은 49년부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입자물리학을 공동으로 연구해왔는데 그 성과로 각각 31세와 35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과학자 개인에겐 최고의 영광이다. [중앙포토]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받은 중국인 리정다오(李政道·92)와 양전닝(楊振寧·96). 중국인이 수상한 첫 노벨상이다. 당시 리는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양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이들은 49년부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입자물리학을 공동으로 연구해왔는데 그 성과로 각각 31세와 35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과학자 개인에겐 최고의 영광이다. [중앙포토]

 
물리학자 2명, 57년 중국의 첫 노벨상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번쩍했다. 미국 유학을 떠날 내게 중국인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를 꺼낸 의미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은 중국인 리정다오(李政道·92)와 양전닝(楊振寧·96)이 공동으로 받았다. 중국인이 수상한 첫 노벨상이다. 당시 리는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양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이들은 49년부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입자물리학을 공동으로 연구해왔는데 그 성과로 각각 31세와 35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미국에 남은 유학생…문제는 두뇌 유출 
두 사람은 시카고대에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연구 여건과 대우가 좋은 미국에 남아 미국 과학계에서 일했다.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 간 내전을 거쳐 49년 본토에 들어선 공산국가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으로 옮겨간 중화민국으로 분단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런 조국으로 돌아갔다면 자신들이 해왔던 연구를 계속하지도, 노벨상을 탈 만큼 학문을 완성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

 
중국, 노벨상에도 과학기술 낙후
 
하지만 당시 중국은 여전히 과학기술 수준이 뒤처지고 가난한 나라였다. 두 명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음에도 사정은 나아질 수 없었다. 산업을 살릴 과학기술자는 유학을 떠난 뒤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중국은 부흥을 위해 과학기술 두뇌에 목마른 상황이었다. 이는 한창 6·25전쟁 전후 복구 과정에 있던 당시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김 원장은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이들의 노벨상 수상이 중국의 경제발전과 민생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를 내게 따져 물었던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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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