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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韓男)일녀(日女)수다①- 논란의 야스쿠니 신사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설명할 때, 진부하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 이상의 표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로 공감할 부분도, 갈등할 부분도 많다는 뜻이겠지요.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일본 도쿄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중앙일보 정현목 기자, 한국영화에 푹 빠져 아사히신문 기자를 그만두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나리카와 아야 칼럼니스트가 의기투합했습니다. 국적은 물론, 성별도 연령대도 다른 둘이 양국 사이의 이런저런 이슈들에 대해 허심탄회한 토크를 진행합니다. 첫회 주제는 문제적 장소인 야스쿠니 신사입니다.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오네요. 하지만 무거운 이슈만 다루진 않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일본 걸그룹 AKB 48, 소소한 일상사도 토크의 소재입니다. 한일 양국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거창한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요. 노력하겠습니다. 간바리마스(頑張ります)!          
 

  
정(정현목): 일본에 있을 때 야스쿠니 신사에 가봤어요. 물론 참배 목적은 전혀 아니고. ㅎㅎ 일본인 친구는 한국사람이 왜 그런데 가느냐며 의아해하더군요. 역시 논란의 장소에요. 매년 8월 15일(우리에겐 광복절, 일본에겐 종전기념일)이면 우익단체 행사로 떠들썩해지는 문제의 장소!  
 
야스쿠니 신사 입구.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신사다.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 입구.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신사다. [정현목 기자]

  
나(나리카와): 저도 잘 안가요. 취재 아닌 목적으로 가면, 참배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한국인 친구도 많은데 양심에 걸려요. 제가 몸담았던 아사히신문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광복절이자 일본의 종전기념일인 지난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옛일본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광복절이자 일본의 종전기념일인 지난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옛일본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정: 아베 총리는 올해 참배하지 않고, 공물료만 사비로 납부했던데요.  
 

나 : 2013년 아베 총리가 현직총리로는 7년 만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중국이 엄청 반발했어요. 그전까지는 한국과 중국이 반발해도 눈도 깜짝않던 일본이었지만, 그때는 달랐어요. 동북아 갈등을 원치않는 미국까지 반발하니까 아베 총리가 화들짝 놀라서 이후로는 참배하지 않고 있어요. 대신 공물료만 계속 내고 있죠.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는 아베 총리 [중앙포토]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는 아베 총리 [중앙포토]

 
정: 역시 아베 총리는 미국 말을 잘 듣네요. ^^  
 
나: ㅎㅎ 그럼요. 아베 총리 입장에선 엄청 참배하고 싶겠지만, 큰 형님(미국)이 언짢아하시니 참고 있는 거겠죠.    
 

정: 주변국의 반발에도 총리나 정치인들이 참배를 강행하는 건 무엇 때문인가요?
 

나: 우선 일본의 태평양전쟁 전사자 유족회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유족회가 선거 때마다 자민당에 표를 많이 주거든요. 지지기반인 보수우익 세력에 잘보이기 위한 것도 있죠.        
 

정: 일본인 지인으로부터 '일본 정치인이 한국·중국 반발을 우려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안하면, 그는 총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나: 반발 속에 참배를 강행하면 인기가 더 높아지기도 하니까요.  
 

정: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매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했었죠? 야스쿠니 신사가 어쩌다 그런 논란의 장소가 됐을까요?  
 
나: 기원을 따져보면 메이지 유신으로 거슬러올라가요.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 메이지 천황의 뜻으로 세워졌어요. 근대국가로 변해가는 변혁(메이지 유신)의 와중에 내전(보신 전쟁 1868~1869)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숨져간 이들을 위령하기 위해 세워진 신사에요. 이후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태평양 전쟁에서 숨진 군인과 민간인 246만여명의 위패가 보관돼 있죠.     
 
정: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추모하는 현충시설은 어느 나라에나 있죠.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직접 보니 현충시설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지적받는대로 우익 냄새가 나더라구요.    
 
나: 어떤 점에서요?      
 
정: 평소 주말에 갔었는데, 어떤 단체 사람들이 옛 일본군가를 연주하고 있었고, 욱일기와 함께 가미카제 자살특공대 사진도 걸려있었어요. 신사 내 전쟁기념관(우슈칸)에는 태평양전쟁 때 사용됐던 제로센 전투기와 대포 등이 전시돼 있었죠.    
 

야스쿠니 신사 한켠에 걸려있는 욱일기 [정현목 기자 ]

야스쿠니 신사 한켠에 걸려있는 욱일기 [정현목 기자 ]

야스쿠니 신사 한켠에 걸려있는 가미카제 자살특공대 대원들의 사진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 한켠에 걸려있는 가미카제 자살특공대 대원들의 사진 [정현목 기자]

 
나: 8월15일이 아닌 평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군요.  
 
정: 기념품 숍에선 옛 일본군모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더 놀랐던 건 판매서적들이 우익냄새가 물씬 난다는 점. 제목만 봐도 느껴져요. 기념관 옆에는 가미카제 대원 동상이 서있고.  
 

야스쿠니 신사의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 동상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의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 동상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제로센 전투기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제로센 전투기 [정현목 기자]

 
나: 저는 그런 거에 조금 거부감이 있는데, 가미카제 대원을 다룬 작품 '영원의 제로'가 히트한 걸 보면 다른 일본사람들은 그렇지 않나봐요. 야스쿠니 신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은 듯 하구요. 태평양 전쟁이 끝난 지 오래 돼서 그런지 그런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없어지고, 거리낌없이 얘기해도 괜찮은 시대가 된 것 같아요. 특히 젊은 세대는 옛 일본군복을 밀리터리 패션 정도로 여기니까요.    
 
야스쿠니 신사 전쟁기념관 숍에서 판매되고 있는 옛일본군 군모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 전쟁기념관 숍에서 판매되고 있는 옛일본군 군모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 전쟁기념관 숍에서 판매되고 있는 욱일기 실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 전쟁기념관 숍에서 판매되고 있는 욱일기 실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 전쟁기념관 숍에서 판매되고 있는 서적들 [정현목 기자]

야스쿠니 신사 전쟁기념관 숍에서 판매되고 있는 서적들 [정현목 기자]

 
정: 어떤 일본인은 '타지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영혼은 반드시 야스쿠니 신사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일본인들에게 있다'고 얘기하던데, 싸우다 죽으면 신으로 모신다는 명분 아래 사람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다는 비판도 나올 법 하네요.   
 
나: 일본의 전통신앙인 신도(神道)가 군국주의에 이용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중립적인 추모시설이라면 문제 없을텐데, 군국주의 때나 지금이나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게 문제에요.  
 
정: 정교(政敎) 분리의 문제?
 

나: 맞아요. 일본 내 야스쿠니 논란의 중심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야 한다는 거에요. 아사히신문도 그점을 비판하고 있어요. 군국주의 서슬이 퍼렇던 1932년, 조치(上智)대의 가톨릭 신자 학생 두 명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부해 큰 문제가 됐어요. 참배를 거부하는 이들은 '히코쿠민'(非國民)이란 비난을 받았던 시대였죠. 80년대에는 에히메 현이 6년간 지자체 공금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쳤는데, 이에 대해 위헌판결이 내려지기도 했어요.      
정: 신도와 군국주의가 결합한 국가신도(国家神道)의 정점에 있던 일왕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한 건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저는 천황 대신 일왕이란 표현을 쓸게요.  
 
나: ㅎㅎ 네. 히로히토 천황이 75년을 마지막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그만뒀어요. 78년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됐기 때문이죠.  
 
정: 일왕이 참배하지 않게 되면서 일부 총리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배를 하기 시작한 거죠? 고이즈미 전 총리와 아베 총리는 어떤 마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을까요?
 

나: 아베 총리의 경우 존경하는 외할아버지가 A급 전범 용의자로 구속됐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잖아요. 기시 전 총리의 손자라는 점과 지금 행보를 보면 아베 총리가 어떤 마음으로 참배했을지 상상할 수 있겠죠. 아베 총리는 태평양 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요.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베 총리와 다르게, 태평양전쟁 전사자 유족회의 표를 의식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일본에선 자민당 총재로 선출돼야 총리가 되는데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는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선언했거든요. 결국 선거에 이겼고 총리가 된 뒤 약속을 이행했죠.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는 고이즈미 총리 [중앙포토]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는 고이즈미 총리 [중앙포토]

 
정: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들이자, 일본 정치의 아이돌인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의원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배했던데, 아버지와 같은 이유라고 보면 될까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으로 장래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으로 장래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나: 그렇지 않을까요? 총리가 되려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유력한 후보니까. 인기가 장난 아니에요.  
 

정: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참배가 이득이 되면 됐지, 손해볼 일은 아니란 얘기?  
 
나: 그렇죠. 참배한다고 해서 지지율 낮아지는 건 아니니까. 고이즈미 전총리는 매년 참배했지만 인기가 많았어요.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한국·중국이 반발해도 일본에선 크게 신경 안쓰는 분위기에요.    
 
정: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희생자 위패도 합사돼 있고, 일본 우익세력의 성지처럼 변해가는 걸 보면서 분노하는 한국인들도 꽤 있거든요. A급 전범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분리하는 방안도 있지 않나요?    
 
나: 나카소네 전 총리 같은 일부 정치인이 한국·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분리 주장을 했는데, 아직까지 별 진전이 없어요. 제 생각엔 자민당 정권에선 전범 분리 안될 것 같아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모를까. 일단 민주당은 정당 차원에선 참배를 가지 않거든요.    
 

정: 아, 논란의 야스쿠니 신사.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나: 전범 분리부터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여러번 사과했지만, 피해당사자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이거든요. 이를 해결하려면 전범 분리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봐요.      
 

정: 전범 분리도 그렇지만, 저는 가미카제 특공대원 동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 어떻게요? 혹시 철거?
 

정: 가미카제 대원들이 출격직전 남긴 유서나 편지를 보면, 그들은 결코 전쟁기계가 아니었어요. 내일이면 목숨이 사라진다는 현실 앞에서 그들은 종이 위에 통곡과도 같은 갈등과 고뇌,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을 써내려갔죠.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하고 먼저 떠나 죄송하다는 편지를 쓰던 대원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이들을 전쟁영웅처럼 미화하는 동상이 아닌,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글들을 전시해야 하는게 아닐까요.      
 
나: 맞아요. 전쟁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장소여야 하는데, 지금 일본 사회는 오히려 전쟁을 다시 할 수 있는 나라로 가자는 분위기에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죠. 일본이 우경화되고 군사대국이 되려고 꿈틀대는 이때, 일본 전체가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오우! 좋은 얘기에요. 신사에 가면 사람들이 각자의 소원을 적어놓은 작은 그림액자가 있잖아요. 일본말로 에마(絵馬)라고. 야스쿠니 신사에서 정말 의미있고 감동적인 에마를 발견했어요. 단 두 글자만 적혀있어요. 평화(平和).    
 

'평화'라고 씌여진 에마 [정현목 기자]

'평화'라고 씌여진 에마 [정현목 기자]

 
나: 와! 정말정말 좋네요. 야스쿠니 신사에 그런 마음으로 가는 일본인들도 많은 거에요. 60년대에는 전쟁에 대한 반성이라든가 전후 일본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다시는 군국주의로 가선 안된다는 공감대가 컸는데, 지금은 전쟁을 잊어버리려 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ㅠㅠ  
 

정: 여담으로 물어보는데, 나리카와상 할아버지는 혹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셨나요?  
 

나: 친할아버지가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전선에 계셨대요. 아버지 말로는 할아버지가 전쟁 때 나쁜 일을 엄청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돌아가실 때까지 전쟁에 대해 한마디도 안하셨다네요.  
 

정: 그 반대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가 아닐까요? 군국주의라는 광기의 희생자가 너무 많았잖아요. 할아버지의 일이니까 좋게 생각하세요 ^^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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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